월간 문익환_<월간 문익환이 만난 사람>
간첩 조작 사건 이철, 민향숙 부부(2) (2024년 1월호)
▲13년 만에 치른 결혼식
◇결혼식 후 진행된 이철, 민향숙 부부와 문익환 목사의 카퍼레이드(1988. 10. 28) ⓒ박용수
결혼식 두 달 앞두고 잡혀가
▶ 두 분이 어떻게 만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 아내는 자형의 이종사촌 동생이에요. 사돈처녀였지요. 그때 장모님의 오빠가 일본 규슈에 사셨는데 그분이 저희 아버지하고 아주 친했어요. 장인, 장모님이 1970 오사카 엑스포 관람차 오셨을 때 저희 집에서도 음식을 대접했고요. 그때 고등학생 딸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 후 한국에 유학 와서 아내가 숙대 1~2학년 시절에 제가 마음이 점점 생겨서 장모님한테 따님하고 결혼하고 싶다고 했더니 부모님도, 집안도 잘 아니까 믿음이 간 거죠. 부모님이 일본에서 오셔서 정식으로 청혼을 하면 허락하겠다고 하셔서 얼른 모셔 와서 학교만 마치면 결혼하기로 했죠. 그러다 결혼식을 두 달 앞두고 잡혀간 거예요.
민: 수감생활이 길어지니까 주위에서 딸을 언제까지 그렇게 혼자 놔둘 거냐고 뭐라고 했는데 어머니는 오히려 제가 고무신 거꾸로 신을까 싶어서 계속 감시하시고… 우리 어머니 정말 대단하셔요. 그리고 남편은 그 고생을 하고 나서도 연애할 때 모습처럼 똑같이 밝고,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명동성당서 김수환 추기경 집전으로 혼인미사
▶약혼 이후 13년 만에 치른 결혼식(1988년 10월 28일) 사진이 아주 인상적인데요,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이: 결혼식은 장모님 뜻에 따라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 집전으로 혼인미사를 드렸는데요, 문 목사님은 두 사람이 가톨릭이 아니었으면 내가 결혼식 주례를 서 줬을 텐데 하셨어요. 그 대신에 결혼식 후에 2부 순서로 성모마당에서 민가협이 썽풀이를 준비했지요.
민: 문 목사님이 대한민국 생긴 이래 이런 결혼식은 없을 거라고, 유일할 거라고 하셨어요.
이: 마당에 하객들이 죽 계시고 저보고 마이크 잡고 한마디 하라는데 출소한 지 3주밖에 안 됐는데 무슨 말이 나오겠어요. 또 몸은 바짝 말랐고. 그때 결혼식 사진 보면 좀 부끄럽기도 하고 마음이 이상해요.
그날 다들 식사하고 춤추고 노래하고 하는데 어떤 학생 열사 엄마가 우리 장모님 앞에 오시더니 막 땅을 치면서 “그래도 이철은 감옥에 오래 있었어도 이렇게 살아서 나오니까 결혼식도 올리지 않냐, 우리 아들은 이제 죽어서 결혼식도 못 올린다.” 하면서 막 땅을 치고 통곡하시는데…. 그때는 살아서 나오는 것도 죄스럽고 많은 사람들이 축복하는 가운데서 식 올리는 것도 열사 엄마들한테는 정말 미안했죠.
민: 아마 김성수 열사(1986년 6월 18일 서울대 총학생회 활동 중 실종됐으며 3일 후 부산 앞바다에서 시멘트 덩이를 매단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어머니였을 거예요. “너희들은 나와서 이렇게 살아서 만날 수 있지만 나는 영원히 보지도 못 한다” 그러시면서 막 우시는데 진짜 할 말이 없었어요. 너무 가슴이 아파서.
◇이철, 민향숙 결혼식 초대장(1988. 10. 28)
▲책 『장동일지』
▶일본에서 옥중수기 『장동일지』(長東日誌, 2021)를 내셨는데요, 어떤 책인가요?
이: 내용은 제가 13년간 감옥 안에서 겪었던 짤막한 이야기들을 모은 겁니다. 제 아들, 딸이 아빠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1995년에 기록을 남겼고 최근에야 그걸 책으로 엮었어요.
◇이철 저 『장동일지: 재일한국인 이철의 옥중기』(2021, 동방출판)
“아빠 책 보면 가슴 미어질 것 같아 못 읽어”
▶자녀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이: 책이 나오고 딸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울면서 읽었답니다. 근데 아들한테 ‘아빠 책 읽었냐’고 했더니 책을 펴면 가슴이 너무 미어질 것 같아서 못 읽겠다고 그러더라고요. 책은 안 봤지만 제가 한 번씩 하는 얘기를 들었으니까 어떻게 징역살이했는지는 알 겁니다. 정말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아이들이에요. 학교 다닐 때나 지금이나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은 우리 아빠, 엄마라고 해요. 남들 앞에서 그런 부끄러운 소리하면 안 된다고 나무라면 존경하는데 뭐 어떻게 다른 말하냐고 도리어 따집니다. 좀 민망해도 기분은 좋지요. (웃음)
▶한국어로도 읽어볼 수 있을까요?
이: 네, 출판사(서해문집)하고 계약을 마쳤고 2024년 3월 이후에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특별히 한국어판에는 문익환 목사님과의 에피소드를 추가해서 저희 이야기를 담은 목사님의 시 ‘억장 무너지는 기다림’, ‘사랑이 울음인 나라’도 소개하려고 합니다. 또 한국어판 서문에 이런 얘기를 썼습니다. 내가 진정한 민중을 찾아서 한국에 왔는데 안 보이던 민중이 어디 있나 했더니 다 감옥에 있었다고. 감옥에서 고생은 했지만 진정한 한국 사람으로 만들어 주어서 지금은 감사한 마음이라고. 저는 감옥살이하길 참 잘한 것 같아요.
<글: 박에바>
이철은 1948년 일본에서 태어나 재일동포의 어려움을 겪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고 한국인의 뿌리를 찾고자 1971년 고려대 대학원에 유학했다. 민향숙과 결혼을 불과 두 달 앞두고 1975년 12월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에 휘말려 구속되었다. 사형수로 복역 중 1979년 무기징역으로 감형받고 1988년 10월 석방되었다. 일본에 일시 방문 후 한국 입국이 거부되어 일본에 정착했다. 1991년 재일한국양심수동우회를 결성한 이래 양심수의 명예회복을 위해 힘쓰고 있으며, 재심청구로 2015년 무죄판결을 받았다. 역서 『くすりの手』(1999, 문익환 저 『더욱 젊게』 ), 저서 『장동일지: 재일한국인 이철의 옥중기』(2021, 동방출판)가 있다.
민향숙은 1951년 부산 출생으로 숙명여대 재학 시절 이철을 만나 약혼하였고 간첩방조죄 누명을 쓰고 1976년 구속되어 3년 6개월 형을 살았다. 석방 후 어머니 조만조와 함께 재일동포를 비롯한 양심수의 구명운동을 하며 10년간 옥바라지를 하였다. 결혼 후 일본에서 두 자녀를 낳았고 현재 오사카에서 지내고 있다.
◇일본에서 열린 양심수 서화전에서 테이프 커팅하는 민향숙, 이철, 박용길 장로(1992. 5. 8). 이철은 대전교도소 수감 시절 신영복 교수와 함께 서화반 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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