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과거에서 온 편지>

1992년 1월 3일 자 문익환의 편지 (2024년 1월호)

“모든 일을 된다 된다 하며 새 역사를 꾸려나가는 거지”

  
 
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에 소개하는 첫 편지는 문익환 목사가 32년 전 새해에 쓴 편지입니다. 정국이 경색되었던 1991년 6월 6일 늦은 봄날, 집 앞에서 택시를 잡으려다 연행되었던 그는 추운 안동교도소에서 새로운 해를 맞았습니다. 그 임신년 새해 벽두에 썼던 편지에는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까요?
  
 
 
◇문익환, 1992년 1월 3일, 원숭이해에 쓴 첫 편지 
 
 

안동교도소에서 쓴 101번째 편지

마지막 감옥행이었던 영등포-안동 교도소 시절은 이틀에 한 번꼴로 편지를 쓸 수 있어서 21개월 동안 쓴 편지가 411통이나 되는데 1월에 소개해 드릴 편지는 그중 백한 번째 썼다는 뜻으로 ‘101신’이라 번호가 매겨져 있습니다. 여러 번 고쳐 쓴 흔적이 남아있는 이 봉함엽서의 위쪽에는 문익환의 안동교도소 수번 1338이 적혀있고 앞면에는 교무과 검열 도장이, 뒷면에는 92년 1월 11일 자 안동 우체국 소인이 찍혀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늦봄은 옥중편지를 통해 회고록을 일부 쓰기도 하고, 기세춘 선생과 편지로 “예수와 묵자”에 관한 토론도 나눴으며 『살림』 같은 잡지에 기고하거나 여러 단체와 개인들에게 보낼 편지들을 많이 썼습니다.

▲편지 본문
나의 봄길님께;

1995년까지 3년밖에 남지 않은 1992년 원숭이해 첫 새벽 동이 틀 무렵, 나의 귀엔 증조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나를 끔찍이도 사랑해 주시던 어른이셨죠. 아! 그 목소리. 만고의 어둠을 뚫고 날아와 벼락 치는 새파란 번개라고나 할까? 아니면 부벽루에서 굽어보던 신록의 환히 밝아오는 빛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로 엄마 품에 안겨 와서 웃어제끼던 난지 반년밖에 안 된 바우의 목련꽃 웃음소리라고나 할까?

“될 일도 안 된다 안 된다 하면 안 되는 거고,  안 될 일도 된다 된다 하면 되는 거니라.”

입을 우물우물하며 웅얼거리듯 하시던 그 말씀이 내게는 천지개벽하는 소리였다오.
이걸 먹어도 돼? 안 돼. 개천에 미역 감으러 가도 돼? 안 돼. 산으로 나물 캐러 가도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웃어도 안 돼. 울어도 안 돼. 노래를 불러도, 춤을 추어도 안 돼. 사랑해선 더욱 안 돼. 산등성이에 올라 푸른 하늘을 쳐다보고 시 한 수 읊조려도 안 돼. 큰 숨 들여 마시다니, 그건 역적질이야. 날고 기다니, 그건 생각할 수도 없는 일. 우리는 안 돼에 익숙해져 버렸어.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었던 거야. 사람 가운데서도 해 뜨는 쪽으로 오다 오다 끝 간 데까지 오고야 만 사람들의 피가 우리의 몸속을 뜨겁게 돌고 있는 사람들인 거야. 드디어 우리는 안 돼의 사슬을 끊어 버렸군요.
그것만은 절대로 안 된다던 일이 이제 되게 된 거야. 그것만은 되게 된 거야. 안 된다며 기세등등하던 사람들이 그것만은 된다고 열을 내고 있지 않어?
글쎄 그것만 되면 다 되는 건데, 안 될 일이 없는 건데, 그것만은 된다는 거야. 평양에 가도 된대. 평양에 가서 친지들을 만나도 된대. 옥류관에 가서 평양냉면을 사서 먹어도 된대. 목이 메어 데미사니 소리밖에 안 나오는 평양 시민들과 얼싸안고 춤을 추어도 된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목이 터지게 불러도 된대. 울어도 되고, 웃어도 된대. 사랑해도 된대. 북쪽 총각과 남쪽 처녀가 사랑해도 된대. 남쪽 총각과 북쪽 처녀가 한 살림을 차려도 된대. 북녘에 가서 죽어 묻혀도 된대. 인제 서로 미워하지 않아도 된대. 괴뢰니, 주구니 하고 서로 욕지거리를 하지 않아도 된대. 이제 서로 믿어도 된대. 서로 서로를 제 몸처럼 사랑해도 된대.
드디어 우리는 하나가 되게 된 거야. 죽어 지내던 우리가 한 겨레로 다시 살아나는 거야. 부활하는 거야. 마른 잎만 다시 살아난 줄 알아? 잘 생기고 못생긴 크고 작은 돌이란 돌들도 다 다시 살아나 살맛 나는 세상이 되었다고 수선을 떨고 있지 않아? 샘물은 졸졸 새 노래를 지어 부르고, 태백산 줄기 그 굵은 뼈마디들 우두둑 소리 내며 우뚝 일어서 싱긋이 웃고 있지 않어? 우리의 하늘도 그 넓은 가슴을 열고 푸른 마음 자랑스럽고, 우리의 바다도 그 깊은 마음 맑게 출렁이지 않아?
이제 우리는 늠름하게 당당하게 커지는 거야. 이효재도, 려연구도, 이우정도, 박순경, 수경이처럼, 승희처럼 예뻐지고 젊어지는 거야.
안 돼에 젖어 있는 우리의 살가죽을 벗겨내고 새 몸을 입어야 해. 더러워진 피를 다 씻어내고 백두산 천지의 맑은 물로 갈아 넣어야 해. 모든 걸 새로 시작하는 거야. 안 돼의 문화를 청산하고 돼 돼 돼의 새 문화를 창조해 내는 거야.
모든 일을 된다 된다 하며 새 역사를 꾸려나가는 거지. 1995년까지 기다릴 거 없지. 당장 시작해야지.
천지가 개벽하는 1992년 새해 벽두에 몽상가 문익환의 새해 꿈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난다.
1992.01.03

 
 

“전국연합” 기관지 창간호를 위하여

1992년도는 3월에 총선이 예정되어 있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변화가 예상되던 때였습니다. 1990년에 3당 합당으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이 탄생하고 이런 흐름에 대항하여 민주화 진영에서는 전국적 연대 투쟁이 이루어지면서 재야의 운동단체간들의 통합이 추진되었습니다. 그리고 1991년 12월, 새로운 재야운동 연합체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약칭 전국연합)”이 결성되었습니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 편, 2006. 『한국민주화운동사 연표』, p.581). 문익환 목사는 계훈제, 백기완, 이소선, 김진균, 강희남, 신창균 등과 함께 상임 지도위원단이 되었습니다. 1992년 새해 첫 편지의 특별한 목적은 바로 전국연합 기관지 『연대와 전진』 창간호(1992년 2월)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옥중편지는 창간호 85쪽에 ‘전국연합 동정’을 소개하는 지면에 실렸습니다. 
 
   
 
◇『연대와 전진』 창간호의 디지털 사본
 
 

“안 돼” 말고 “돼”의 마음으로 쓰는 새 역사

평소 분단 50년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던 늦봄에게 1992년은 통일 원년이 될 ‘1995년까지 3년밖에 남지 않은’ 해였습니다. 1991년 말, 정부가 추진한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되었던 점도 그로 하여금 기대를 갖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는 새로운 재야운동 연합체의 역할을 기대하며 ‘몽상가 문익환의 새해 꿈 이야기’, 통일을 바라는 마음을 편지 속에 담았습니다. 
32년이 지난 2024년의 우리는 1918년에 북간도에서 태어나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쉼 없이 겪었던 늦봄과는 다른 세상에서 또 다른 어려움을 경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들에게 “된다 된다 하면 되는 거니라”는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과거를 청산하고 꿈꾸는 새 역사를 꾸려나가려는 발걸음은 “안돼” 말고 “돼”의 마음으로 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늦봄의 옥중 편지는 통일을 바랬던 늦봄의 꿈이자 장차 어디로 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선물이 될 겁니다.
 
 “모든 일을 된다 된다 하며 새 역사를 꾸려나가는 거지. 1995년까지 기다릴 거 없지. 당장 시작해야지”
 
 ◇문익환, 1992년 1월 3일, 편지의 마지막 문장 

 
<글: 아키비스트 지노>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와 함께 걷고 있는 아키비스트. 늦봄과 봄길의 기록을 아끼고 그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


[키워드]
여섯번째 수감
안동교도소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월간 문익환_<과거에서 온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