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과 ‘이 사람’] 시 속의 등장인물로 살펴본 인물 현대사
“그는 언제나 있어야 할 자리에 나타난다”
◇ 민통련 지도부. 왼쪽부터 김병걸 교수, 문익환 목사, 계훈제 선생, 백기완 선생
늦봄은 자신이 언제부터 그를 알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고 했다. 한빛교회에서 가끔 만나는 그는 예배가 끝나고 별다른 일이 없으면 함께 중국집에 가서 점심을 먹는 동료였다. 늦봄은 점심시간에 그가 보이지 않으면 퍽 서운하고 허전했다고 고백했다. 그도 역시 늦봄이 안 보이면 섭섭하게 느끼리라고 늦봄은 생각했다.
한빛교회 점심 동료, 문익환과 김병걸
그는 김병걸 선생이다. 1979년 1월 한빛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고, 박용길 장로는 그에게 성경을 선사했다. 아마 세례 이후부터 그와 늦봄은 자주 만났을 것이다. 늦봄은 ‘어찌 보면 물에 물 탄 것도 같은, 냉물처럼 심심하기만 한’ 그의 우정이 꽤나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1925년생인 그의 회갑(1985년)을 앞두고 기념 문집이 발간될 때 늦봄은 그의 활동 궤적과 인품을 자세히 설명하며 찬사의 글을 문집에 실었다. 두 사람 간의 ‘꾸밈도 과장도 없는 우정’이 있어서였다.
◇김병걸 선생 회갑 및 출판기념회. 뒷줄 가운데 김병걸 교수 내외와 양쪽 문익환 목사 내외.
앞줄은 왼쪽부터 유원규 목사, 이우정 장로, 양성우
1984년 8월 7일 마무리된 늦봄의 글 제목은 「쓰러질 듯 쓰러질 듯 강하고 강한 사람」이다. 이 글 마지막 부분에서 늦봄은 자신의 시 「왜 여태 몰랐을까요」를 김 선생과 그의 부인을 위해 바치고 싶다며 시 전문을 소개했다. 늦봄은 무엇을 몰랐던 것일까? 김 선생 내외를 위해 바친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답은 모두 늦봄의 글 속에 담겨 있기에 아래에 간추려 본다)
늦봄, “썩어야 흙이 된다는 걸 몰랐다”
시의 첫 소절은 이렇다.
죽기나 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걸
게 아니라 썩어야 흙이 된다는 걸
왜 여태 몰랐을까요
시의 주제는 한 마디로 ‘푹푹 잘 썩어야 흙이 된다’라 해도 될 것 같다. 늦봄은 이렇게 썼다. 손톱 발톱 머리카락까지 사그리 썩어 흙이 되어야 ‘당신’의 보드라운 살이 되고 몸이 되고 맥박이 되고, 그리하여 ‘당신’의 소원이 젖어 들어와 새싹으로 돋아 자라고 꽃피고 열매 맺는다는 걸 여태 몰랐다고. 농부들, 쬬까니(작은 사람)들, 창녀들의 오줌똥이 두엄더미에 묻혀 썩어야 ‘자주하는 겨레의 흙이 된다는 걸, 민주적인 흙이 썩 잘 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는 것이 늦봄의 고백이다.
그냥 썩을 줄밖에 모르는, 참 겸손의 전형
늦봄은 「왜 여태 몰랐을까요」를 떠올리고 이를 김병걸 선생 내외에게 바치고자 했다. 늦봄이 생각하기에 김병걸 선생 내외는 잘 썩어 흙이 되는 것에 딱 맞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바보 같은 사람들, 계산 능력이 없는 사람들, 멋지게 죽는 것도 아니고 그냥 썩을 줄밖에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자주 하는 겨레의 흙이고 민주적인 흙이 되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1963년부터 교수로 재직하며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던 김병걸 선생은 늦봄보다 먼저 민주화운동에 발을 들였다. 1974년 1월, 긴급조치 1호 발동 하루 전 61명의 문인이 발표한 ‘개헌 청원 서명운동 지지 선언’에 이름을 올린 것이 시초다. 같은 해 11월 27일 ‘민주회복국민선언대회’에 참가하였는데 이 때문에 나이 50세에 해직교수 제1호가 되었다. 곧이어 민주회복국민회의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78년 4월에는 해직교수협의회 결성에 참여하였다. 이후 서명 운동, 농성 투쟁, 성명서 작성, 시위 참여, 강연 등의 방법으로 민주화 운동을 이어 나간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필요한 행동을 하는 데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중심인물이기보다는 변두리에 서 있는 사람’
그가 겪은 최대의 고초는 1979년 11월 YMCA 위장 결혼식 사건, 즉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의 대통령 보궐 선거를 저지하려는 국민대회였다. 준비위원이었던 그는 보안사에 끌려가 1주일 동안 죽도록 매를 맞는 고문을 당했다. 자신이 벌레가 되어버렸다고 느끼던 때였다고 한다.
김병걸 선생, 그의 인품에 대해 늦봄은 ‘참 겸손의 전형’일지 모른다며 이렇게 적었다.
그는 언제나 당당히 소신을 피력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자신을 실제보다 작게 보이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언제나 있어야 할 자리에 나타난다. 그러나 늘 중심인물이기보다는 변두리에 서 있는 것을 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 이건 내가 보기에 그의 엄청난 미덕이다.
그의 민주화운동 참여 역정을 훑어본 늦봄의 평가한 그는 ‘역사 본류의 핵심에서 벗어난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핵심의 자리를 확보하고 지도력이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기득권이나 명성에 대한 애착이 없어 항상 손해만 보게 되어 있어서, 예수가 말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일 것이라고, 늦봄은 생각했다.
그는 원칙이 있고 확고한 가치관이 서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불리해도 있어야 할 자리에는 꼭 나타나는 사람이었고, 아무리 어려워도 자리를 뜨지 않는 사람이었다.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행동한 그의 이력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교수 복직 거부, 재야 남아 통일운동 지속
1984년 해직 교수들에게 복직 기회가 찾아왔다. 그러나 그는 복직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를 들은 늦봄은 그의 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한마디도 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늦봄은 놀라기도 했다. 복직이 아닌, 전혀 예상 못 한 다른 길이 있었으니. 늦봄은 그와, 만나보지 못한 그의 부인에게, 깊이 머리를 숙였다. 그냥 썩을 줄밖에 모르는 사람들, 이들에게 늦봄은 「왜 여태 몰랐을까요」를 바치고 싶었던 것이다.
복직을 거부한 김병걸 선생은 이후 한결같이 늦봄의 곁에 서서 민주와 통일의 길을 함께 걸었다. 민통련 결성에 참여했고 범민련 남측본부결성 준비위원과 고문을 거쳐 민족화합운동연합을 이끌기도 했다. 1987년 박종철 군 고문살인에 항의하는 집회에서는 자신이 당했던 생생한 고문 이야기를 증언하기도 했다.
* 김병걸 교수는 함경도 출신으로 해방 후 단신 월남,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2년 「에고에의 귀환」을 발표하며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이듬해 국립 경기공업전문대 교수가 되어 리얼리즘 비평가의 길을 걸었다. 1970-80년대 엄혹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삶 속에서 리얼리즘을 실천한 리얼리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선생은 2000년 10월, 75세에 별세했다.
<글: 조만석>
언제든, 누구와 함께든, 사람과 역사를 볼 수 있는 곳 어디든, 걷기를 즐겨 합니다.
<참고문헌>
문익환(1999) 『문익환 전집6』 수필. 사계절출판사
문익환 옥중편지
박용길 편지 <당신께>
왜 여태 몰랐을까요
문익환
죽기나 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걸
그게 아니라 썩어야 흙이 된다는 걸
왜 여태 몰랐을까요
푹푹 썩어야 흙이 된다는 걸
죽어 묻히고 싶은 흙이 된다는 걸
손톱 발톱 머리카락까지 사그리 썩어야
흔적도 없이 사그리 썩어야
사그리 흙이 된다는 걸
썩어서 당신의 보드라운 살이 된다는 걸
말없이 봄바람으로 가슴에 닿아 풀어지는
눈물겨울뿐인 마음 당신의
몸이 된다는 걸 당신의 체온 당신의 숨결
당신의 맥박이 된다는 걸
아무리 깡추위로 몰아붙여도
서너 자 밑에서는 뜨거운 피 흐르는
조국이 된다는 걸
그제야 당신의 간절한 소원 젖어 들어와
포기포기 새싹으로 돋아난다는 걸
돋아나 자란다는 걸
자라나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다는 걸
태백산 줄기줄기 울창한 숲 이루어
골골이 지줄대는 냇물들의 노래에 맞추어
얼싸안고 볼을 비비며 눈물 쏟으며
춤을 추게 된다는 걸
왜 여태 몰랐을까요
더없이 고운 흙이 된다는 걸
흙의 민주주의가 땅속으로 번져 나간다는 걸
농투사니들의 똥오줌이야
쬬까니들의 똥오줌과 섞여 최고구요
소똥 개똥이야 누가 뭐래도 당당한 거구요
임질 매독균이 득실거리는 창녀들의 오줌똥이야
우리 같은 먹물들의 똥오줌보다 훨씬
잘 썩는 거구요
귀하신 어른들의 똥오줌은 아예 섞이지도 못하는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두엄
더미들에 묻혀 더럽게 썩어야
네 똥 내 똥 하지 않는
자주하는 겨레의 흙이 된다는 걸
민주적인 흙이 썩 잘 된다는 걸
아침마다 동해 바다에서 뭐 같이 불끈 솟아오르는
역사의 힘이 된다는 걸소똥 개똥이야 누가 뭐래도 당당한 거구요
임질 매독균이 득실거리는 창녀들의 오줌똥이야
우레 같은 먹물들의 똥오줌보다 훨씬 잘 썩는 거구요
귀하신 어른들의 똥오줌은 아예 썩이지도 못하는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두엄
더미들에 묻혀 더럽게 썩어야
네 똥 내 똥 하지 않는
자주 하는 겨레의 흙이 된다는 걸
민주적인 흙이 썩 잘 된다는 걸
아침마다 동해 바다에서 뭐같이 불끈 솟아오르는
역사의 힘이 된다는 걸 |

◇1991년 서울 범민족대회 남측추진본부 출범식. 박용길 장로와 김병걸 교수, 연단의 강희남 목사
월간 문익환_<시 속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