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과거에서 온 편지>

1992~1998년 청년 학생들이 문익환 목사에게 (2023년 12월호)

“목사님 처럼 늘 푸른 청년이고 싶습니다”

 
 
12월의 편지는 젊은 청년 학생들이 늦봄에게 쓴 쪽지들을 모아 소개합니다. 아카이브가 미정리 상태일 때 여러 상자들을 오가며 학생들이 남긴 흔적들 발견했을 때가 떠오릅니다. 짤막한 사연으로도 충분히 그 느낌이 전해져서 “아, 늦봄은 이 청년들에게 이런 분이셨구나” 새삼 느낄 수 있었는데 작은 흔적이나마 아카이브에 남아 있어 기쁜 마음입니다. 이 어렸던 학생들은 그 후로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들이 기댔던 늦봄은 이 세상엔 없지만, 아마도 여전히 늦봄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요?

 

“교도대가 우릴 막아서지만 목사님의 숨결을 느낍니다” 

▲Part 1. 1992년 : 안동교도소 앞, 학생들의 이야기
문익환 목사님, 사랑합니다. 몸 건강하세요.
-통일 진군 48년 부산에서-

문익환 목사님!
그동안 몸 건강히 잘 지내셨는지요. 저희들은 국토순례 대행진 중인 통선대원들입니다.
안동을 지나게 된 저희들이 문 목사님을 만나뵙기 위해 이렇게 안동교도소 앞에 모였읍니다.
결사대를 만들어 담을 뛰어넘는 등 여러 가지 투쟁을 전개하였읍니다. 저희는 조국의 통일과 민족해방을 너무나 갈망하기에 청년학도의 아버님인 문 목사님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여기에 이렇게 왔읍니다. 비록 교도대와 전경이 저희의 갈길을 막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문 목사님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우리 민중 앞에서 정정하신 모습으로 통일을 이야기하고 민족해방을 이야기하시던 날들이 생각납니다. 저희 청년학생들은 조국이 통일되고 미국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참세상을 만들때까지 열심히 투쟁하겠읍니다.
-통일진군 48년 9월 구국 명지 통선대원 이정근 올림

문익환 할아버지
저는 괜히 ‘할아버지’라 부르고 싶군요. 조국 통일될 때까지 건강하셔야 할텐데.. 여기는 지금 할아버지가 계신 안동교도소 앞입니다. 여기오니 조국의 하늘 아래 둘로 갈라진 교도대와 우리들이 정말 서글퍼 눈물 날려합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대구 경북지역 통일 선봉대원

문익환 목사님
저는 범청학련 국.보.철. 통일선봉대 부경총련의 한 학우입니다.
5일 동안을 전국에 통일의 불바람을 일으키고 오늘은 선생님을 만나뵙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만 우리 앞을 막아선 적들에 의해 들어가지는 못하고 이렇게 구치소 앞에서 몇 자 적습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더욱 커지는 것이라지요. 선생님이 보여주신 조국통일의 열정을 가슴에 안고 반드시 범민족대회를 사수하고 이후에도 당당하게 조국통일의 길에 함께 할 것입니다. 더우신 데 건강 유의하십시요. 사랑합니다.

통선대 참가한 부산대생입니다.
몸은 불편한 데가 없으신지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제 자신이 부끄러워질 때가 많은 겁 많고 의지력 약한 제 모습이 말입니다. 조금 후엔 백골단에 의해 우리들이 많이 상처를 입고 머리가 깨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극복할 겁니다. 건강 조심하십시오.

92통선대에 참가한 부산대학교 92학번입니다. 매일 매일 투쟁하다 보니 너무 힘듭니다. 여기 안동은 7일째 되는 날입니다. 문익환 목사님. 우리가 하고 있는 통일 운동들이 반드시 옳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강철같은 의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존경스럽습니다. 목사님 같은 분이 계셔야 우리들이 조금 더 힘차게 싸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목사님을 외칠 때 목이 메여 옵니다. 보고 싶습니다. 목사님 말한 것처럼 통일을 위해 미친 듯이 살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문익환 목사님
몸과 마음으로 정말로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조국을 사랑하는 홍익 학우가

오늘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세상이 된 게 문 목사님 같은 분들이 목숨을 바쳐 이루어 낸 것이라 생각합니다. 끝까지 조국통일 그날까지 전진 합시다. 
-부산대 사마구

안녕하세요.
기분이 찜찜하네요. 목사님께 이렇게 저희들의 목소리밖에 들려드릴 수 없는 현실이 무척이나 속상합니다. 92-3년에 민주정부를 수립하고 통일의 원년인 95년에는 이곳에서 문 목사님과 손 맞잡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거리로 나갈 수 있겠지요. 비록 철저한 이념이나 조직력을 없지만 통일해야 한다는 깡다구 하나만으로 열심히 싸우렵니다. 목사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웃음 지을 수 있는 날까지 단무지(단순무식과격) 처럼 투쟁하겠습니다. 몸조심 하시구요 배고파도 강구는 잡아먹지 마세요.

목사님 뵙고 싶습니다.
교도소를 오가는 길가는 논밭으로 싱싱하기만 한데 목사님은 철창 안에 갇혀 딱딱한 바닥에 한 몸 의지하고 계시지요. 저희들 열심히 투쟁하여 하루 속히 목사님을 저희 곁에서 모시도록 할께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건강하세요. 
-한청협 통일 선봉대 신경숙 드림
 
 
◇ 통일선봉대원 학생들, 1992. 국토순례대행진 중이었던 학생들이 문익환 목사가 수감되어 있던 안동교도소 앞에서 쓴 롤링페이퍼 
 
 

“힘들어서 목사님 힘 받으려고 왔어요”

▲Part 2. 1998년 : 문익환 목사를 추모하는 말들
목사님 몸 담으셨던 학교에 다니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다짐하고자 합니다. 비겁하게 살지 않고 이 시대를 비출 수 있는
조그마한 횃불이 되고자 합니다.
1998. 1. 31.

문 목사님
다음에는 힘들다 싶을 때 그냥 뵙고 싶을 때 와도 되겠지요.
4.25 정혜

목사님
힘들어서 목사님 뵙고 힘 받으러 왔습니다. 다시 결의 세우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조국의 통일을 위해 한 평생 싸우신 목사님 뜻 가슴 깊이 묻고 갑니다. 다시 오겠습니다.
해방광운 한누리人

햇빛이 따습니다. 겨우내 춥지는 않으셨는지요
자리가 좀 떨어져있는 감이 있는데 겨우내 찬바람에 외롭지는 않으셨는지요
이제야 찾아뵙고서는 약하게도 또 힘을 보태달라는 부탁 말씀밖에 못드리는 저를 용서하세요
98. 3. 1 안양에서 온..

봄 목사님의 가슴처럼 따사로운 계절입니다.
열심히 한 해를 살겠습니다. 목사님의 그 마음 이제서야 조금씩 깨닫고 있는
어린 학생이

목사님을 뵈려 처음 와 보았습니다.
사는 것이 힘들고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지만 선생님을 생각하며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
1.18

청년의 심장에 계속 고동칠 
늦봄 문익환 목사님께

목사님처럼 늘 푸른 청년이고 싶습니다.
자주 성신 13대 법학과 학생
1998. 4. 5


멋지게 살아보러 왔습니다.
목사님 내려가서 잘 살겠습니다.
해방 광운

하늘나라에서도 한글공부 통일연구 많이 하시리라 믿습니다.
언제나 그렇게 저희들 가슴 속에 청춘으로 계십시오. 다음에는 좀 더 당당한 모습으로 오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98. 4. 22 김윤신
 
 
◇박용길, 1986~1998, 박용길이 쓰고 정리한 85쪽짜리 노트로 문익환 목사 면회기록 사본과 각종 메모, 별세 후 각종 방명록 등에서 옮겨 적은 문익환 목사 추모 글이 담겨 있다.

 
<글: 아키비스트 지노>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의 삼 년 묵은 아키비스트로 늦봄과 봄길의 기록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하는 아카이브하는 사람이다
.

월간 문익환_<과거에서 온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