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월간 문익환이 만난 사람>

헌정음반 작곡가 류형선 예술감독(2) (2023년 11월호)

[→ (1)에서 이어짐] 

 

 “가능성 앞에 자신을 노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온통 가능성일 뿐이다.”

  
문익환과 더불어 작품을 쓰고, 그의 시를 가슴에 담아 부르고, 그 노래의 결을 따라 악기를 타고 채워내는 이 모든 과정이 실은 감동 없는 삶에 익숙한 (이 음반에 참여한) 음악인 자신을 치유하고 북돋고 일깨우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우리 자신이 이렇게 기특하고 대견스러웠던 적이 또 언제였을까? 
- 류형선, <뜨거운 마음>(2011) 연출의 글에서
 
◇ 문익환 목사를 기억하며 미소짓는 류형선 감독 
 
 
 
 

 ▲내 삶 속의 문익환 

‘삶이 곧 시’였던 분

▶ 문익환의 시에 대한 감상은?  
솔직히 시인 문익환은 그다지 기술적으로 뛰어난 시인이 아닌 것 같아요. 별로 재미가 없어요. 왜 시는 그다지 그분의 삶만큼이나 감동을 주지 못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그때부터 비로소 다시 시를 죽 훑어봤어요. 그랬더니 이분은 생각이 앞서가는 게 아니라 삶이 앞서간 것이라는 걸 알겠더라고요. 예를 들어 불에 탄 노동자나, 막 피투성이 돼서 누워있는 목동 철거민같이 당장 가서 옆에 있어줘야 될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죠. 그러다가 혼자 있는 사유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토해내듯이 순식간에 시를 쓴 것이 틀림없을 거예요. 시를 쓰기 위해서 앉아 있을 시간도 없고, 이미 삶이 시를 다 쓴 거예요. 여러분도 이런 관점에서 시를 읽어보시면 아마 조금 다르게 이해될 것 같아요. 
 
  

늦봄 앞에서 노래부르자 손 꼭 잡아주셔

▶ 문익환 목사는 류 작곡가를 알고 계셨나요?
전 수줍어서 잘 찾아뵙지는 못했는데 길에서 뵈면 손 인사 해주시고, ‘그대 오르는 언덕’ 써준 걸 무척 고마워하셨죠. 이런 일이 있었어요. 유가족협의회(유가협) 있죠, 문익환 목사님이 유가족후원회 회장이셨어요. 1991년 4월 27일 연세대에서 유가협 행사를 주현신 여기 과천교회 목사하고 같이 준비했는데 관객이 안 오는 거예요. 알고 보니 그 전날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강경대 군이 사망했는데 사람들이 규탄시위 마치고 들어올 때까지 시간을 때워야 되는 상황인거죠. 유가협 회원 하나가 또 늘어난 거니까 굉장히 비통한 분위기였고요. 그때 사회보던 주현신 목사가 나보고 ‘그대 오르는 언덕’을 부르래요. 문 목사님 앞에 계신 데서. 꼭 새색시가 신랑 만난 심정 비슷하게 목사님 눈도 못 마주치겠고 왠지 목사님 저를 바라보는 표정이 약간 한심하다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노래하면서도 너무 쪽팔린 거예요. 제가 노래를 하는 사람도 아니고. 노래가 끝나고 사람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쳐 주고, 문 목사님이 무대에 올라와서 제 손을 딱… (울음이 터져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손을 잡고 좀 긴 시를 읊어 주시는데 한 구절은 지금도 잊지 못해요. “가능성 앞에 자신을 노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온통 가능성일 뿐이다.” 저도 제자들이 많이 있는데 살아오면서 늘 해주는 말이에요. 저랑 가까운 제자들은 이 말을 다 소중하게 마음에 품고 있어요. 
 
◇늦봄과의 일화를 얘기하다 복받쳐올라 눈물을 훔치는 류형선 감독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어머니의 노래> 행사에서 연설하는 문익환 유가족후원회장(1991. 4. 27) 
 
 
▶ 문 목사님의 어록을 삶에서 잘 실천하시는 것 같아요. 
주위에서 저를 ‘삶의 한복판을 꽉 꿰뚫어내는 아포리즘(격언)을 써주는 선생님’이라고 대접해주고 있는데 문익환 목사님에게서 와서 제 것으로 자리 잡은 것들이죠. 목사님이 하신 말씀에 대해서 내 딴에 뭐가 응답을 해요. 말씀에 대한 대답을 붙여 가는 거죠. 예를 들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눈길을 두어야 세상의 모든 것이 보입니다”라는 목사님 말씀이 있어요. 그러면 저는 “가장 작은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 작은 소리를 알맹이 있게 낼 수 있어야 세상의 모든 소리를 연주할 수 있는 좋은 연주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응답을 하는거죠. 국악방송 진행할 때 한 이야기예요. 

 

5.18 음악극 <봄날> 대표 브랜드

▶ 전남도립국악원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는지?
제 예술적 좌표는 안 변해요. 예술감독으로 가자마자 한 게 5.18 40주년 음악극 <봄날>, 지금도 전남도립국악단의 대표 브랜드예요. 그 다음에 여순사건법이 제정돼서 여순 가무악희 <또 다른 숲을 시작하세요> 공연을 했죠. 마지막 노래 때 제가 독창하기로 했는데 노래 전에 한마디 했어요. “타인의 아픔이 나의 통증이 되고, 통증 때문에 노래하지 않고 견딜 수 없고, 그 노래가 나의 삶을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어 가는 것, 우리는 예술을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객분들이 인상적이었다고 해주시더라고요.

요즘은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토요 상설공연을 ‘그린 국악’이라는 이름으로 하고 있고요. 전국에서 제일 바쁜 국악단이에요. 공자의 『논어』에 나온 ‘지호락(知好樂)’이란 말처럼 단원들이 즐기면 성장하고, 그러면 바빠도 재미있게 할 수 있으니까 그러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글: 박에바>
 보는 것보다는 듣는 것을, 쓰는 것 보다는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수동적 내향인, ISTP.


[참고 문헌]
류형선 (2019-2020). 🔗「문익환 목사 헌정음반 <뜨거운 마음>을 기록하다 1~12」 『기독교 사상』. 대한기독교서회.
 
 
※류형선 작곡가는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한양대에서 작곡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국악을 공부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울대 음대에서 강사,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감독을 역임했고 2020년부터 전남도립국악단에서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음악극, 국악 동요, 주제가 등 400여 작품을 만들었고 기독문화대상(1995), KBS국악대상(2008)을 수상했다. 대표곡으로 ‘모두 다 꽃이야’, ‘나무가 있는 언덕’, ‘비에 젖은 해금강’이 있으며 문익환 목사 헌정음반 <뜨거운 마음>(2000·2011), 다큐멘터리 영화 OST <북간도의 십자가>(2019)를 발간했다. 전남도립국악단이 있는 무안 남악리를 오가며 ‘5촌 2도’ 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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