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그때 그곳>

종로5가 기독교회관 (2023년 11월호)

3층 복도 끝 301호실, 
수감자의 가족들이 위로받고 힘 얻었던 곳

  
◇박용길 장로의 편지에 수없이 등장하는 종로5가 기독교회관의 현재 모습.
 
 

그때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일명 ‘종로5가’, 기독교회관은 여전히 그때 그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봄길 박용길 장로의 편지에 수도 없이 등장하는 곳. 교도관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은어 ‘종로 5가’로 일컫던 편지 속 그 현장을 수십 년 만에 찾아갔다. 

기독교회관은 삼엄한 유신 독재 시절 불의한 권력에 항거하다 구속된 수감자들의 가족들이 모여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던 곳이다. 당시 2층에는 한국인권운동협의회 방이 있었으며, 3층에는 여신도회 사무실이 있었다. 기장 여신도회전국연합 인권위원이었던 박용길 장로가 쉼 없이 드나들었던 301호실은 3층 긴 복도 끝에 있었다. 복도 끝에 서면 창문 넘어 맞은편 빨간 벽돌 건물의 연동교회가 보였다.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종로5가 연지동), 당시 위치 그대로였다. 오래되어 외관은 빛이 바랬고 허름했지만 한 걸음 다가갈수록 그때가 떠올라 이내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기독교회관 3층 끝에 외치한 301호의 현재 모습

 
1980년 박용길 장로와 김석중(이문영 부인)과 함께 종로5가 기독교회관을 찾았으나 경찰들에 의해 제지를 당해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옛날 정신여고 자리에 있던 연동교회 옆 담을 넘어 주차장을 통해 들어가려다 박용길 장로가 넘어져 다치자 크게 화를 냈다. (이종옥 여사 구술 중에서)
 
 이해동 목사의 부인인 이종옥 여사의 말이 떠올라, 봄길이 넘었다는 담벼락을 찾아 보았으나 짐작으로만 가늠할 뿐 정확한 위치는 찾을 수가 없었다.

 

구속자가족협의회 만들어 석방 운동 

1973년 남산 부활절예배 사건,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많은 학생과 민주인사가 억울하게 구속되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인권위원회를 발족하여 구속자들의 석방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구속자가족협의회를 만들어 기독교회관에 모였었다. 

1976년 3.1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늦봄이 처음으로 구속된 이후 6차례에 걸쳐 10년 이상을 옥중에서 고초를 겪는 동안 봄길은 이곳에서 구속자 가족들과 함께 기도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연대해서 치열하게 싸우며 민주화 운동에 함께 했다.
 
 ◇보라색 원피스를 입은 3.1 사건 부인들 사진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십자가를 붙여 놓은 벽 앞에서
고귀순(윤반웅), 박순리(서남동), 박용길, 이희호(김대중), 이종옥(이해동), 박영숙(안병무), 김석중(이문영)
 
 
◇기독교회관 강당에서 열린 통일을 위한 사도 문익환 목사 출옥 환영 예배

 

출판기념회-칠순축하회-출옥환영회 등 열려 

기독교회관은 늦봄과 봄길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장소이다. 늦봄문익환아카이브에서 “5가”를 검색하면 무려 170 건 정도의 기록물이 나온다. 그만큼 박용길이 자주 찾았던 공간이었다. 늦봄의 시집<새삼스런 하루>와 옥중 서간집 <꿈이 오는 새벽녘> 출판기념회와 문익환 목사 칠순축하회를 가진 곳이며 석방 되어 나왔을 때에는 출옥환영회를 연 곳이기도 하다. 늦봄이 옥중에서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자 가족들이 이곳에서 45일 동안 병원치료를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늦봄과 봄길의 숨결을 깊이 느낄 수 있는 기독교회관에 와서 두 분의 뜻을 되새겨 본다.

 

 
💌 봄길의 편지속에 언급된 기독교회관 

종로5가에 와서 가족들을 만나 속마음들을 이야기하고 위로를 나눕니다.(1982. 11. 8 )
처음 당하는 어머니들은 당황해하지만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힘을 모아 어려움을 이기고 나가야겠습니다. 한 식구처럼..(1982. 2. 18)
종로5가로 충신동으로 한 바퀴 돌며 아픔을 같이 했습니다.(1991. 7. 16)
오늘 하루 가족들과 함께 지내면서 인정이 오고가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1982. 5. 20)


<글: 오남경>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여행과 사색을 위한 숲길 산책을 무척 좋아합니다


월간 문익환_<그때 그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