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이달의 사건>
1993년 범민련 남측 본부 준비위원장직 사의 표명 (2023년 11월호)
범민련 뛰어넘어 합법적 운동조직 ‘통일맞이’로
◇ ‘통일맞이’ 토론회에서 말씀 중인 문익환 목사
문익환 목사는 여섯 번째 수감생활을 끝내고 1993년 3월 석방되었다. 곧바로 4월에 ‘통일맞이 칠천만 겨레 모임’ 운동을 제창하게 된다. 이것은 새로운 통일운동체를 만들기 위한 행보였다.
당시에는 1990년 말부터 약 2년 동안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 남북한과 해외를 망라한 거대 단일 조직체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문 목사도 1991년 1월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 준비위원회’의 준비위원장을 맡았는데, 수감으로 인해 깊이 관여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남북 상황을 무시하고 정부를 배제하는 범민련의 활동은 정부의 반대에 부딪치고 여러 문제를 노출하며 시작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따라 새로운 통일운동체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청되었다. 늦봄은 새로 출범한 문민정부 아래에서 합법적으로 대중적인 통일 운동을 펼쳐 나가려는 생각을 구체화하여 ‘통일맞이 칠천만 겨레 모임’ 운동을 제창했던 것이다. 곧이어 범민련 조직에서도 벗어나고자 사의를 표명했고 12월에 수용되었다.
민과 관이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가운데 통일운동을 대중화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는 늦봄의 생각은 누구도 생각 못 한 앞선 식견이고 정확한 통찰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생각은 범민련과 동지들로부터 큰 오해를 받으며 수용되지 못했으니, 당시 문 목사는 답답하고 비통한 마음을 가눌 길 없었을 것이다.
◇ ‘통일맞이 칠천만 겨레모임’에서 문익환 목사 묘소 뒤에 내 건 현수막
월간 문익환_<이달의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