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시 속의 인물>
통일의 어머니 김신묵 권사 (2023년 9월호)
[늦봄과 이 사람] 시 속의 등장인물로 살펴본 인물 현대사
“통일 보고 가셔야죠” 물음에 “통일은 다 됐어!”
◇‘내아들 문목사를 석방하라’는 글을 목에 걸고 시위하고 있는 김신묵 권사
1990년 9월 18일에 소천
1991년 1월 1일 한겨레신문 17면에 늦봄이 쓴 신년 축시가 실렸다. 시의 제목은 ‘통일은 다 됐어’.
이 제목은 늦봄의 어머니 김신묵 권사가 별세 3일 전에 한 말이었다. 김신묵 권사는 1990년 9월 18일에 소천했고, 수감 중 일시 귀가하여 어머니 장례식을 치른 늦봄은 1달 만인 10월 20일 가석방되었다. 어머니를 기리는 시를 이미 4편 쓴 늦봄은 신년 축시에서 통일을 자신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담아내었다.
1991년 새해 아침은 대다수 국민들이 평화와 통일에 대한 기대를 안고 출발하는 분위기였다. 직전 1년 동안, 남북 총리 회담이 3차까지 진행되었고 남북 정상회담의 빠른 성사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등 화해의 발걸음이 크게 진전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체육 부문에서 남북한 축구대표팀의 평양-서울 순회 경기가 열려 한 번씩 승패를 주고받으며 형제애와 같은 감동을 보여줬고, 베이징아시안게임과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 등 국제 무대에서 남북한 선수들이 상호 배려와 존중의 모습을 연출해 내고 있었다.
“겨레의 마음속 문은 이미 활짝 열렸다”
어머니 김신묵은 90 중반의 나이였지만 매일 신문을 정독하며 세상의 흐름을 똑똑히 파악하고 있었다. 문병 온 박형규 목사의 “통일은 보고 가셔야죠”라는 말에 “통일은 다 됐어”라고 또렷하게 반응하신 어머니. 그가 자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한 이유는 ‘겨레의 마음속 닫혔던 문이 활짝 열린 것’을 분명하게 보았기 때문이었다. 남과 북의 권투 선수가 대결이 끝난 후 서로에게 축하와 미안함을 전하는 아름다운 모습은 분단 장벽이 무너지는 것이었고, 임수경을 ‘껴안고 뒹구는 북쪽 겨레의 몸부림’하는 모습에서 서로에 대한 미움이 녹아내리고 있음을 어머니는 온몸으로 느꼈다. (시 ‘통일은 다 됐어’)
더 근본적으로, 우리 겨레는 끊어지거나 갈라져 있지 않았다는 것이 어머니의 신념이었다.
‘한겨레라는 것이 그렇게도 소중했던 거야 / 백두산이 언제 한라산을 미워한 일이 있었니 / 한라산이 언제 백두산을 향해 총을 겨눈 적이 있었니 / …. / 태백산 줄기 억센 허리 언제 끊어진 일이 있었니’ (시 ‘통일은 다 됐어’)
“온 식구가 민족의 제단에 바쳐진 것 감사”
어머니의 마음은 광복 이후 45년을 겨레의 분단이라 인정할 수 없었다. 잠시 멀어졌던 겨레는 한마음으로 회복될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또 하나 되기 위해 사랑으로 서로를 감싸 안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행동했다. 늦봄이 방북으로 구속되어 재판정에 섰을 때 ‘염통에 불이 나서’ 소리쳤던 어머니의 기개가 그것을 증명해 준다.
익환아! 목사인 네가 사랑과 화해의 정신으로 공산주의자 김일성 주석을 껴안아 녹이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 너는 네 십자가를 지고 흔들림 없이 네 길을 가야 한다” (이우정, 1991)
어머니는 임종에 앞서 이렇게 기도하셨다고 한다.
“통일도 되어가고 내 아들도 석방되고 온 식구가 하나같이 민족의 제단에 바쳐졌으니 감사합니다. … 이 민족을 불쌍히 여기소서. 자주적인 민족으로 제 힘을 기르지 못하고 단결하지 못한, 이 민족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제 나라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주시고 하루속히 이 민족의 통일을 이루어 주소서” (박영숙, 1991)
숭고한 마음이 아닐 수 없다. 장례식에서 모두가 호칭한 그대로 어머니는 분명 ‘통일의 어머니’ ‘민족의 어머니’였다. 다섯 번 투옥된 큰아들과 두 번 투옥된 작은아들의 옥바라지를 꿋꿋하고 의연하게 해내시면서 민주 통일 진영의 사람들 모두에게 의지가 되고 희망이 된 분이었다. (이기형, 1991)
교회 통해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 실천
어머니의 교회 활동은 민주화 운동이기도 했다. “고난받는 이들이 모이는 갈릴리 교회에는 빠짐없이 참석하셨고, 1983년부터 양심수 가족들을 위한 교회가 되었을 때 언제나 오셔서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고 때로는 설교를 해 주셨어요”라는 며느리 박용길 장로의 회고를 통해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혹여 다쳐서 출옥한 청년 학생들의 상처에는 깊이 간직해 두었던 웅담을 발라 주며 격려를 해 주는 사랑과 따뜻함도 실천했다. (이기형, 1991)
민주화와 통일 운동 과정에서 보인 어머니의 자세와 활동은 이미 광복 이전의 삶에서 체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명동여학교 졸업 후에 7인으로 된 명동의 여자비밀결사대에 들었고, 1919년 용정 3.13만세시위에 참여했다. 학교 졸업 후 명동촌에서 여전도회장을 맡은 데 이어 용정에서 만주 기독교 평생여전도회장을 광복 전까지 재임하면서, 기독교운동을 통해 만주 조선인들의 민족의식을 높이고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데 헌신적인 노력을 다했다.
위대한 어머니, 마지막 소원은 통일
어머니는 손님도 많고 가족 대소사도 많았던 문 씨 집안을 지탱하는 든든한 기둥이었다. 광복 전후에는 남편 문재린이 세 번에 걸쳐 약 7개월 동안 일본군과 러시아군에 구금되었는데, 어머니는 남편을 찾아 북간도를 뒤지고 함경도 성진까지 가는 등 백척간두와 같은 고난의 시기를 이겨냈다. 한국전쟁 와중에서 가족의 안위를 지켜냈고 이후 창립한 한빛교회를 굳건하게 만드는 등 안주인으로서 막중한 역할을 다했으니, 그의 삶을 알면 알수록 여성의 위대함이 어머니 김신묵에게서 더욱 빛나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990년 9월 18일 운명하기까지 100년 가까이 사신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은 통일이었다. 한겨레가 원래대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고 “통일은 다 됐어”라고 외치셨건만, 30년 지난 아직도 그 희망을 실현해 보이지 못하고 있는 우리는 너무나 죄송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글: 조만석>
언제든, 누구와 함께든, 사람과 역사를 볼 수 있는 곳 어디든, 걷기를 즐겨 합니다.
[참고문헌]
이기형, 박영숙, 이우정, 박용길 외 (1991), 『그리운 어머니, 김신묵 권사 추모 문집』
문영금, 문영미 엮음 (2006) 『기린갑이와 고만녜의 꿈』. 서울:삼인
◇ 3.1민주구국선언으로 수감된 늦봄과 민주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미국 백악관 앞에서 시위 중인 김신묵과 문재린 일행
◇ 양심수를 석방하라는 머리띠를 두른 김신묵.
통일은 다 됐어
문익환
어머니
운명하시기 사흘 전이었습니다
박형규 목사가 문병 와서
통일 보고 가셔야죠 하니까
어머니는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통일은 다 됐어
3차 고위급 회담이 별 성과 없이 끝났는데도
어머니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암 말할 수 있구말구
기득권자들의 눈에는 보일 리 없지
겨레의 마음속 닫혔던 문 활짝 열린 것이
죽기 아니면 살기로 치고 맞는 권투 경기가 끝나고
남과 북 두 선수의 눈물겨운 광경 못 봤어
이긴 남쪽 선수 진 북쪽 선수를 껴안으며
미안해
진 북쪽 선수 이긴 남쪽 선수에게
형 축하해
백림 장벽이 무너지기 전에 이미
거기서 분단의 장벽이 무너졌던 거 아니겠니
어머니
그렇군요
분단의 장벽은 사람들의 마음에 있었군요
불신 반목 질시 적개심은 마음에 있는 거니까요
제가 김일성 주석을 껴안았다고 해서
욕을 얻어먹은 걸 보시면서
어머니 염통에 불이 났엇지요
그것이 결국 어머니 수명을 단축시켰던 거구요
그 때문에 내가 며칠 일찍 숨을 거두었단들
그게 뭐 대수냐
수경이를 껴안고 뒹구는 북쪽 겨레의 몸부림 속에서
나는 눈물로 온몸 녹아 내리는 걸 느꼈단다
그렇군요 어머니
북쪽의 겨레는 남쪽에 사는 우리를 원수라고 생각하지 않고
미워하지도 않게 되었군요
미워하지 않게 된 것만이 아니라
뜨겁게 뜨겁게 사랑하고 한겨레가 된 거지
한겨레가 된 것이 죽고 싶도록 행복한 거지
평양 소년궁에서 어린이 셋이 목에 매달려
엉 엉 울 때
저도 그걸 아프게 아프게 느꼈습니다
남쪽의 4천3백만 겨레도 같은 심정이라는 거 알지 않어
예 잘 알고 있습니다
분단의 장벽 흔적도 없이 폭발시켜 버리기 직전이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남북 두 축구팀이 국제 경기에서 만나면
그것은 살벌한 전쟁이었습니다
일본팀에게는 져도 북쪽팀에게는 질 수 없다며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것이 남쪽 선수들이었습니다
미국팀에게는 져도 남쪽팀에게는 질 수 없다며
북쪽 선수들은 살기등등했었습니다
그런데 금년 여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에서 세계축구사상 일찍이 없었
고 앞으로도 없을 경기가 벌어졌습니다
잘 알고 있다
나도 거기 가서 울고 있었으니까
남쪽 선수들은 북쪽 선수들이 발목을 삘세라
북쪽 선수들은 남쪽 선수들의 다리에 생채기라도 날세라
연장전까지 1백20분 경기를 반칙 한 번 없는 경기를 해냈거든
한겨레라는 것이 그렇게도 소중했던 거야
백두산이 언제 한라산을 미워한 일이 있었니
한라산이 언제 백두산을 향해 총을 겨눈 적이 있었니
압록강 금강 대동강 한강 물이 서해 바다에 가서 어울려
신나기만 한 거 아니겠니
두만강 낙동강 물도 동해 바다와 남해에서 어울려
출렁이다가
하늘로 구름이 되어 떠돌다가
남쪽 북쪽 가리지 않고
단비로 쏟아지는 거 아니겠니
태백산 줄기 억센 허리 언제 끊어진 일이 있었니
그렇군요 어머니
그렇군요 어머니
통일된 민족, 통일 대장정 만세
-「한겨레 신문」, 1991. 1. 1. |
월간 문익환_<시 속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