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그때 그곳>

한빛교회(1) (2023년 9월호)

역사의 어둠 짙었을 때, 세상을 품어준 ‘한 줄기 빛’
 

◇ 1985년 7월 한빛교회 전경
    

‘형사들이 진을 쳤던’ 골목길 예배당

▲한빛, 하나의 커다란 빛, 오직 한 줄기 빛
징~징~징~. 
예배 시작을 알리는 징소리가 세 번 울렸다. 강단의 십자가엔 교회의 고난을 상징하듯 가시로 된 면류관이 걸려있다. 범상치 않은 골목길의 작은 교회. 한빛교회는 그렇게 그곳에 있었다. 
 
◇ 예배당의 가시면류관을 쓴 십자가: 이인애 집사와 이종옥 사모가 1976년 고난주간에 강단을 꾸미기 위해 직접 만든 것으로 지금까지 걸려 있다. 가시면류관은 예수의 고통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예수를 따르는 것이 고난의 길임을 일깨우며 온 세상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짊어지겠다는 한빛의 신앙고백이다(문영미, 『세상을 품은 작은 교회』).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주일 오전 한빛교회를 찾았다. 하나의 커다란 빛, 오직 한 줄기 빛이라는 의미로 교인들이 직접 투표로 "한빛" 이름을 결정했다고 한다. 

형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던 그 좁은 골목길을 지나서 예배당으로 갔다. 잠시였지만 골목길을 둘러보는 동안 새로운 방문자임을 모두가 한순간에 알아보는 듯했다. “예전처럼 또 형사가 왔나?” 생각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종옥 여사가 서술한 1980년 5월 18일 당시 한빛교회 상황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당일 주일 예배는 살벌한 가운데 드려야만 했다. 교회로 들어오는 길목마다 형사들로 꽉 차 있었으며 교인들의 출입을 막으려 하였다. 박용길 장로님과 안계희 장로님 등은 현관 밖에서 형사들과 싸우며 우리 교인들을 들여 보내고 교회당 안에 있는 교인들을 끌어 내겠다고 엄포하기에 현관 앞 입구에 드러누워 나를 밟고 들어가 끌어내라고 악을 썼다. 그런 살벌함 속에서도 믿음의 길 이탈하지 않고 교회를 지켜낸 한빛교회 교인들이 참 대단했고 고마웠다."
(이종옥 회고)


오랫동안 교회를 지켜오신 이는 머리가 희끗한 연세드신 분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아쉽게도 지역민들은 별로 없다고 했다. 하긴 경찰들이 둘러싼 ‘살벌한’ 분위기에 쉽게 새 교인 등록을 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대신 옳은 길이라는 믿음 하나로, 고난을 함께하며 갖은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교회를 지켜온 분들이 예배당을 지켜왔다. 

 

봄길의 편지에 등장하는 반가운 얼굴들

봄길의 편지에 종종 등장하는 반가운 얼굴들이 많았다. 이해동 목사님과 이종옥 여사님이 함께 예배를 봤고, 이학전 장로님도 만나뵐 수 있었다. 점심 식사 후에는 유원규 목사님으로부터 손수 내린 커피와 함께 소중하고 값진 이야기를 대접 받았다. 

홍승헌 담임목사의 설교 말씀 “가서 맨끝자리에 앉아라” 도 가슴깊이 다가왔다. “갚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베풀고 그들에게 보답을 기대하지 말라”는 말씀은 한빛교회의 오랜 사명을 되새기기에 충분했다. 

 

​​고난받는 이들과 민족의 아픔 함께

▲역사의 한복판에서 진리의 편에 굳건하게
한빛교회는 1955년 문재린 목사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눌린 자를 일으킨다는 주님의 뜻대로 기성교회와는 다른 참신한 교회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중앙교회라는 이름으로 건립하였다. 

1971년 윤일주(윤동주 동생) 교수가 작은 교회의 표본으로 설계하여 지금의 위치에 교회당을 지었다. 문익환 목사가 1956년부터 설교목사로 재직하였으며 1968년 12월 성서 번역을 위해 사임하였다. 이후 1970년부터 이해동 목사가 14년 동안, 1984년부터는 유원규 목사가 32년 동안 담임목사로 사역하였다. 

한결같이 불의한 정권 아래 탄압받는 이들을 위해 역사의 한복판에서 진리의 편에 굳건하게 서서 이웃과 민족의 아픔에 함께하였다. 고난 받는 이들을 위한 목요기도회와 갈리리교회에 예배 장소를 제공하면서 늘 당국의 감시를 받았다. 4.19, 민청학련, 동아투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 YH 사건, 5.17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 등 70~80년대 민주화 운동 관련에는 대부분 한빛 가족이 있었다. 이해동 목사는 토막지식을 통해서 기독교 교인들이 왜 사회정의와 인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지를 설득하였으며, 이는 한빛 공동체가 목회자와 교인들이 괴리되지 않고 하나로 뭉처 나갈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교회에 대한 애정, 목사에 대한 신뢰, 소박한 교인들의 신앙 때문에 소용돌이 속에서도 교회가 끄떡 없이 지탱을 하게되었다."
(이해동 목사 구술 자료) 
 

통일세미나-늦봄 통일상 후원

1989년 문익환 목사의 방북 이후 “통일운동을 하는 교회”로서 통일을 위한 기도와 실천을 이어갔으며, 지금도 늦봄의 정신을 기리고자 “통일세미나"를 개최하고 “늦봄 통일상 수상금”을 매년 담당하고 있다. 
 
◇이우정, 안계희, 이학전 집사 장로 임직식과 교육관 봉헌예배 
 
◇박용길 장로가 한빛교회의 특징, 설립연도, 역대 교역자 등을 적은 원고 

<글: 오남경>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여행과 사색을 위한 숲길 산책을 무척 좋아합니다.



[참고자료/문헌]
한빛교회 홈페이지 http://hanbitc.org/
문영미(2017) 『한빛교회 60년사 : 세상을 품은 작은 교회』. 삼인
이해동 (2014) 『둘이 걸은 한 길』 대한기독교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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