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에게 진 '마음의 빚'…나의 언어로 되갚기
늦봄 후원의 밤 <다시 오는 봄> 기획/연출, ‘극단 진동’ 대표 최소진
◇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사)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총회 및 후원의 밤 '다시 오는 봄'(2023. 2. 21)
2017년 ‘늦봄의 마음’ 기획공연 첫 인연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이자 기획자인 덕분에, 2017년 강북문화재단과 함께하는 ‘늦봄의 마음’이라는 기획공연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때 문익환 목사를 조명하는 짧은 뮤지컬 공연을 만들게 되었다. 당시 공연을 만들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고 책을 읽으면서 늦봄을 만났다.
◇ 한신대 예배당에서 열린 <늦봄의 마음> 공연(2017)
아주 어렴풋이 기억난다. 아주 어릴 때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데모를 했고, 눈이 매웠다. 엄마가 절대 손으로 비비면 안 된다고 해서 눈을 꼭 감았다. 어느 날 TV에 나온 할아버지가 북한에 갔다 왔다고 했다. ‘공산당이 싫어요’ 포스터를 그리고 반공교육을 열심히 받았던 나는 그 할아버지가 정말 나쁘고 잘못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할아버지는 무서운 빨갱이가 아니었다”
어릴 때 TV에서 본, 북한에 갔다왔다는 나빴던 할아버지
어른이 되어 만난 늦봄은 눈물 날 정도로 다정하고 따뜻
어릴 때의 기억으로 남았던 문익환 할아버지를, 공연을 준비하면서 다시 새롭게 만났다. 그렇게 다시 만난 늦봄은 사람들이 말하는 나쁘고 무서운 빨갱이가 아니었다. 늦봄의 옥중서신들은 눈물 날 정도로 다정했고 따뜻했다.
“우리 한열이가 등장했을 때 너무 고마웠어요”
공연을 마치고 이한열 기념관의 관장님과 짧은 만남이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 한열이... 한열이가 등장했을 때 너무 고맙고 반가웠어요.” 한열이를 부르는 따뜻함에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해야겠다” 다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희생과 애씀으로 얻은 오늘의 삶에 대한 빚진 자의 마음이었다. 정부지원사업의 보조금을 받아서 아이들을 위한 ‘통일 할아버지의 선물’이라는 공연을 제작하고, 순회공연을 시작했다. 지원사업이었기 때문에 매번 심의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심사위원들도 굉장히 호의적이었고, 나라 분위기도 통일이 될 것만 같았다. 배우들하고 평양에 가서 공연하자고 신나서 이야기했다.
몇 년 뒤 어느 해였던가, 심사위원들이 문익환 목사의 이름에 날카롭게 반응하고,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통일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지원사업의 보조금을 더 이상 받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오늘을, 역사를 살아간다.
나의 언어로 들려주는 늦봄의 이야기
늦봄을 만나면서 내가 하고 있는 일, 그리고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나의 언어로, 가치로, 의미로 정리할 수 있었다. 역사를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감사와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작고 소중한 것들, 연약하고 아픈 존재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평화를 가져온다고 믿는다.
여전히 나라는 많이 아프고 슬프다. 그래서, 늦봄의 마음으로 평화를 위한 한 걸음을 오늘도 걸어야겠다 다짐해본다.
◇ 어린이들이 통일의 집 마당에서 음악극 <할아버지의 선물>을 관람하고 있다.

※ 최소진은 ‘진실한 동무, 진실한 동작, 진한 감동’을 뜻하는 ‘극단 진동’의 대표로 청소년을 중심에 둔 전문 청소년 연극을 지향한다. (사)늦봄문익환기념사업의 이사이기도 하며 수년째 사업회 다양한 행사의 연출/총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3년 총회 및 후원의 밤 <다시 오는 봄> 공연을 기획했다.
월간 문익환_<나와 늦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