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이달의 사건>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사망 (2023년 8월호)

늦봄, “네가 하려다가 못한 일을 내가 해 주마” 결심

   
  ◇장준하 묘소 앞에서 추도하는 백기완, 계훈제, 문익환, 최장학 

1975년 8월 17일, 장준하가 포천 약사봉 등반 도중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박정희 독재에 저항하여 체포와 투옥을 거듭하던 그는, 73년 말 ‘유신헌법 개헌 청원 백만인 서명운동’을 추진, 불과 열흘 만에 40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 유신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헌법에 대한 비방이나 반대를 일절 금지하는 긴급조치 1호가 내려지고, 이를 위반했다고 1호로 체포된 사람도 장준하가 될 수밖에 없었다.

75년 1월에 ‘박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발표, 파괴된 민주 헌정의 회복과 완전한 민주헌법을 위한 개헌 발의, 긴급조치로 인한 구속 인사와 학생들의 석방 등을 요구하면서 박정희와의 대립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그는 민주와 통일의 과제를 남긴 채 안타깝게 떠나고 말았다.


장준하 장례위원장을 맡은 늦봄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유신정권을 강력히 비판했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네가 하려다가 못한 일을 내가 해 주마”라고 장준하의 뜻을 이어가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통일운동 맥 이어가리라는 걸 예감"

▶장준하를 기억한 늦봄의 옥중 편지
 
우리가 그의 집을 찾아갔던 일 기억나지요? … 그의 부인이 “문 목사님이 오신다는 말을 듣고 목욕하러 가셨어요” 그의 경건한 자세에 내가 크게 탄복했었죠 … 그가 죽기 전에 죽을 걸 알기라도 한 듯 여러 가지 준비를 하잖아요. 김구 선생, 사친 무덤에 가서 성묘하고, 임정 때 쓰던 국기를 이대 박물관에 기증하고, 부인이 미사를 받을 수 있도록 혼배성사를 하고. 그는 그렇게 마음의 눈이 밝았죠. 그렇다면 목욕재계를 하고 나를 맞았다는 건 내가 자기의 통일운동의 맥을 이어가리라는 걸 예감했던 거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아니, 그의 그 맑고 간절한 마음에 내가 씌워서 이렇게 살아온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군요. (아내에게 쓴 편지 1991. 8. 13)
 
  
◇ 장준하 선생 추모의 밤에 만세 부르는 함석헌 선생과 뒤에 서 있는 늦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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