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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년 망명객 故 정경모 선생 (2023년 7월호)
정경모 선생(1924~2021)은 문익환 목사의 1989년 방북에 동행한 통일운동가다.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으면서도 1970년부터 2021년 별세 때까지 일본에서 51년을 망명객으로 살았다.
한국전쟁 중 도쿄에서 일본인과 결혼, 늦봄이 주례
1924년 영등포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 징집을 피해 일본에 유학했고 해방 후 귀국했다가 다시 미국으로 유학했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문익환 목사와 함께 도쿄 유엔군사령부 소속으로 판문점 통역관으로 근무했다. 이때 일본 유학 시절 거주했던 하숙집의 딸과 다시 만나 결혼했다. 문 목사가 그의 결혼 결심을 도왔고 주례도 섰다. 한국전쟁 후, 미 군무원에서 해고되어 일본 집으로 돌아가게 되자 다시 한국행을 선택, 1956년부터 1970년까지 모친과 동생이 있는 한국에서 어려운 생활을 견디며 활동했다.
◇ 1950년대 초, 판문점에서 통역관으로 근무하던 시절의 정경모
◇정경모 선생과 부인 지요코의 결혼식(1951년 7월). 늦봄의 주례로, 만난 지 6년 만에 결혼했다. (사진제공: 정강헌)
독재정권 거부, 한국 국적 고수하며 일본 망명 생활
박정희 독재정권을 거부, 일본으로 돌아가 겨우 망명 지위를 얻어 살게 된 그는, <씨알의힘>을 개소하여 잡지를 발행하고 일본 언론에 글을 기고하는 방식으로 한국의 독재정권을 비판하고 민주화를 지지하는 데 노력했다. 그는 철저히 민족주의 입장에 서서 한민족과 일본, 미국 간 역사적 관계 속의 허구적 인식을 드러내고 진실을 알리고자 애썼다. 또 세계 냉전 체제의 역사적 전환과 남북 당국의 불가피한 접촉을 예견했을 뿐 아니라, 김대중 납치 사건 발생 직전에 행한 김대중과의 인터뷰를 잡지에 게재하는 등의 활동으로, 일본 언론과 지식인층의 큰 주목을 받았다. 선생은 회고록에서 문 목사가 민주화 투쟁에 뛰어든 후 문익환-윤이상-정경모 3인의 ‘반독재 삼각편대’가 투쟁의 전 세계적 확산에 기여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일본에서 <씨알의 힘> 모임에 참석한 박용길 장로와 정경모 선생
문 목사, 박 장로의 방북에 동행
선생은 문 목사의 방북을 위해 1988년에 평양을 사전 방문한 후, 이듬해 3월 문 목사와 동행하여 김일을 주석을 만나고 <4.2공동선언>을 끌어내는 데 기여했고, 1995년 김일성 주석 1주기를 맞아 박용길 장로의 평양 방문에도 함께 했다. 문 목사 별세에 충격을 받은 후 뇌경색을 앓는 등 건강이 나빠졌으나, 2006년 한겨레신문에 회고록 ‘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를 연재하였고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을 12년에 걸쳐 번역하는 등 집필 활동을 이어가다 2021년 2월 16일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베이징에서 평양으로 가는 특별기 안에서 대화하는 늦봄과 정경모 선생 (1989. 3. 25)
모란공원에 방북 3인 공동 묘역 조성
선생의 사후 국내 지인들과 유족이 유골의 일부를 한국으로 모셔 와 2021년 4월 2일 모란공원에 안장했다. 이후 이 묘역을 89년 당시 방북에 동행한 3인의 공동 묘역으로 조성, 동년 9월에 문익환 박용길 부부와 유원호 안순심 부부의 묘를 이장하여 함께 모셨다.
◇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열린 정경모 선생 추도식(2021. 4. 1) 이튿날에는 통일의 집에서 노제를 지냈다.
◇ 모란공원 통일동산에서 참배 후, 한자리에 모인 문익환, 정경모, 유원호의 세 가족들(2023. 6. 3) ⓒ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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