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그때 그곳>

명동성당 (2023년 5월호)

암울했던 시대 ‘민주화의 성지’  
70-80년대 민주주의 함성이 아직도 들리는 듯


 

※편집자주=[늦봄과 이곳]은 문익환 목사의 여정을 따라가며 곳곳에 남겨진 그의 기록과 열정들을 찾아가는 코너입니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는’ 20세기 뜨거웠던 현장. 그곳을 다시 찾아 그곳에 남겨진 역사의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아카이브를 통해서 알게된 늦봄을 만나기 위해 그가 쓴 3.1 민주구국선언문이 발표됐던 “명동성당”을 찾았다.

50대 후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그동안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유신체제에 정면으로 대항한 늦봄. 그의 결기가 3.1민주구국선언문이란 이름으로 처음 표출된 곳이 바로 이곳 명동성당이다. 그 시절, 암담한 침묵의 시대를 떨치고 분연히 일어나 성명서를 작성한 늦봄의 흔적을 찾아, 반백 년 전 아마도 이우정 교수가 결연히 선언문을 낭독했을 자리에 서서 70, 80년대 치열했을 당시를 생각해본다. 늦봄과 함께 민주화, 인권, 통일 운동의 선봉에 있었던 정의구현사제단의 결기도 머릿속에 떠올려 본다.

 47년이란 시간이 흘러 성당의 외관은 그대로지만 주변의 모습들은 많이 변해 있었다. 재개발로 인해 87년 6.10 항쟁 당시 수많은 군중이 모였던 장소는 꽃길로 단장이 되어 있었고 교육관을 비롯해 새로 올린 깨끗한 건물들 그리고 지하에는 예쁜 카페와 여러 상점들로 변해 있었다. 

 격변하는 정세 속에서 늦봄이 꿈꿔왔던 민주며 통일이며 모든 것은 아직 미완이지만 그가 꿈꿔온 희망과 미래는 여전히 명동성당 곳곳에서 숨 쉬고 있는 듯하다. 변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정의를 위한 시대의 요구에는 변함이 없기를 바란다.

 
◇명동성당 앞 넓은 광장은 꽃길이 조성되어 예전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
2029년까지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70-80년대 불의에 맞선 피난처

▲역사로 보는 '민주화의 성지'
 
◇명동성당에서 전교조 노조원들이 벌이는 단식농성에 참가한 문익환 목사(1993.6.25) ⓒ 박용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명동성당은 가히 ‘민주화의 성지’라고 불리울 만하다.
1968년 4월 9일 김수환 주교(1969년 4월28일 추기경 서임)가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된 이후  1970~1980년대 민주화 운동 시기 불의와 폭력, 인권 침해에 맞서 싸우는 이들의 피난처 역할을 하여 민주주의의 상징적 장소가 되었다. 시대의 요구와 아픔, 민중의 눈물을 품기 위해 소명의식을 갖고 강압적인 정권에 당당히 맞섰다. 

1971년 김수환 추기경은 12월 24일 성탄 미사에서 만일 현재의 사회 부조리를 극복하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독재 아니면 폭력 혁명이란 양자택일의 기막힌 운명에 직면할지 모른다”며 박정희 정권을 강하게 비판하여 이후 15년 동안 성탄 자정 미사는 더 이상 생방송으로 중계되지 못하였다.

1974년 7월 6일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된 김지하에게 돈을 건넨 혐의로 구속되었으나 면담 후 석방되었다. 그러나 이후 유신헌법은 무효라는 선언을 하면서 재구속되어 15년형 실형을 받았으며 석방을 요구하는 민주화 운동이 전개되고 함세웅 신부 주도하에 전국의 사제들이 모여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결성하여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당시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시국담화문을 발표했다. 특히 80년대 초반부터 명동성당은 시위의 마지막 집결지이자, 광주민중항쟁을 널리 알리게 된 중요한 시발지였다. ‘광주민중항쟁 비디오’는 85년부터 성당 밖에 대자보를 붙여 알리기까지 하였다.

1987년 5월18일 5.18 민주화 운동 7주기 추모식에서 김승훈 신부(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는 성명서를 통해 박종철 고문 치사와 관련된 경찰의 은폐 조작을 폭로했고 이는 곧 6.10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6월 26일 국민평화대행진까지 전국적으로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시위가 매일같이 일어났으며 호헌철폐, 독재타도,직선제 쟁취를 외치며 들고 일어선 1987년 6월 항쟁의 진원지 역할을 하였다.

 

문익환 목사 민주주의 전면에 나선 계기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문 
1976년 3월 1일 저녁, 명동성당에서 3.1 혁명 57주년을 기념하는 미사?가 열렸다. 약 7백 명의 신구교 신자들이 모인 가운데 열린 기념미사는 예정대로 진행되다가 미사가 끝나갈 무렵 이우정 전 서울여대 교수가 미리 준비된 〈민주구국선언문〉을 낭독함으로써 유신체제와 재야지도자들이 정면대결하게 되는 이른바 ‘3·1민주구국선언사건’ 또는 ‘3·1명동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날 발표된 〈민주구국선언문〉의 내용은 “① 이 나라는 민주주의 기반 위에 서야 한다 ② 경제입국의 구상과 자세가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③ 민족통일은 오늘 이 겨레가 짊어진 최대의 과업이다”라고 하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선언문은 결론에서 “이때에 우리에게는 지켜야 할 마지막 선이 있다. 그것은 통일된 이 나라, 이 겨레를 위한 최선의 제도와 정책이 ‘국민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대헌장이다. 다가오고 있는 그날을 내다보면서 우리는 민주역량을 키우고 있는가, 위축시키고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구국선언문 서명자는 윤보선, 김대중, 함세웅, 이우정, 정일형, 윤반웅,, 문동환, 안병무, 이문영, 서남동, 등 정계, 종교계, 학계의 지도급 인사들이다. 선언문을 작성한 문익환 목사는 성서 번역 마무리 작업을 위해 명단에서 제외했으나 구속을 피하지는 못했다.  

1976년 12월 29일 최종 선고공판의 판결은 다음과 같다
△ 윤보선, 김대중, 함석헌, 문익환 - 징역 5년
△ 정일형, 이태영, 이우정, 이문영, 문동환, 함세웅, 신현봉, 문정현, 윤반웅 -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
△ 서남동 - 징역 2년 6개월, 자격정지 2년 6개월  
△ 안병무, 이해동, 김승훈 - 징역 2년, 자격정지 2년, 집행유예 3년
△ 장덕필 - 징역 1년,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

이후 2011년 재심을 신청하여 2013년 7월 3일 서울고법에서 전원 무죄확정판결을 내려 사면복권이 이뤄졌다.
 
75년 4월 9일은 나에게 있어서도 역사적인 날이 되었군요. 억울한 시신을 끌고 응암동성당으로 향해 가던 영구차가 도중에 경찰에게 탈취되던 응암동 큰길 이었죠. 내가 경찰과 처음 몸싸움을 한 것이 그날의 영웅은 누가 뭐래도 문정현 신부였지요. 그 뒤로 친형제 이상으로 가까워진 문 신부 김승훈 신부 함세웅 신부 등과 안면을 튼 것이 시신을 빼앗기고 응암동성당에서 허탈감에 빠져 있는 자리였군요. 정부는 신구교에 동시에 선전포고를 했죠. 박형규 목사와 지학순 주교 NCC 총무인 김관석 목사를 구속기소 한 것뿐 아니라 목요기도회를 강제로 해산시키는 폭거를 서슴없이 저지르거든요. 가톨릭은 김지하 구명 운동으로 뜨겁게 달아 올랐지요. 이 같은 숨 막히는 상황이 견딜 수 없어 젊은 목숨을 민족의 제단에 바치는 일이 벌어졌죠. 서울대 농대 김상진 군이었죠. (옥중편지 1992. 2. 13)
 

87년 이후 민주화운동 본산으로

▲1987년 6월 이후 통일운동
명동대성당이 민주화 시위의 무대가 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6월의 6․10 ‘명동농성’ 이후라고 할 수 있다. 1987년 6월부터 1989년 12월까지 2년 반 동안 130여 회의 크고 작은 시위가 숨 쉴틈 없이 이어졌다. 그중에서 13회는 철야 시위였는데, 짧게는 하루 이틀 밤에서부터 길게는 몇 달을 끌었던 농성(상계동 철거민 농성)까지 있었다.

1970년대의 인권과 민주화의 요구는 1980년대 후반에 와서는 통일로 변화되는데, 그것은 인권과 민주화의 제약은 분단체제로부터 오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정치 사회적 문제의 해결은 분단체제의 극복, 즉 통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회과학적 인식이 운동권, 그리고 천주교회 진보적 분파의 지배적 담론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명동대성당의 통일운동은 1985년부터 북한선교부의 ‘통일을 위한 미사’ 봉헌을 통해 가시화되었으며, 청년신도 조성만의 투신자살과 정의구현사제단의 문규현 신부 파북사건으로 인해 통일논의는 급격하게 정치적 쟁점화 되기도 하였다.
 
◇명동성당 수녀 교육관에서 열린 민가협 명동대회에 참석하여 연설을 하는 문익환 목사(1986.3.4)
ⓒ박용수(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제공)



<글: 오남경>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여행과 사색을 위한 숲길 산책을 무척 좋아합니다.



[참고 자료]
명동대성당 홈페이지 ‘명동대성당의 역사’🔗
서울 대교구 역사관 홈페이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월간 문익환_<그때 그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