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동산 풀 깎으면 벽화 속 늦봄이 환하게 빙긋
마당 봉사하러 갔다가 되레 선물 받고 오지요”
ⓒ장영직
2001년 봄에 몇 명의 교우들과 도봉산 자락에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교우 중 한 분이 『기린갑이와 고만녜의 꿈』 책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 책 안에 자신도 나온다고 하면서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어린 시절 문익환 목사님 옆에서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이렇게 유명한 분과 어떻게 아냐고 했더니 친척이라고 했습니다. 호기심에 그 책을 읽기 시작했고, 어느새 문익환 목사님, 그분의 아버님이신 문재린 목사님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한 가족의 역사가 근현대사의 역사를 압축해 놓은 듯, 아프고 슬프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독립운동, 민주화운동, 통일운동까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존경과 사랑이 자라났습니다. 후에 읽게 된 ‘문익환 평전’, ‘히브리 민중사’ 등의 책을 통해, 문익환 목사님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몇 년 전엔 저희 시냇물교회에서 개최하는 행사에 문영금 관장님을 초청해서 문익환 목사님에 대해 더 깊고 인간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통일의 집 뒷동산에서 마당 봉사를 하고 있는 장영직 목사.
묵묵히 봉사하는 장 목사를 벽면의 늦봄이 환하게 바라보고 있다.
후에 통일의 집에 방문해서 전시실을 관람하고 마당을 청소하면서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예초기를 들고 다니며 어르신들 정원이나 밭을 정돈해 드리곤 했는데, 마침 통일의 집 뒷동산에 풀이 무성해서 깎아드렸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벽화에 큼지막하게 그려진 문익환 목사님의 환한 얼굴이 나를 보며 항상 웃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나무도 옮겨 심고 가지치기도 하고, 지붕의 낙엽을 긁어모아 청소도 했습니다. 겨울이 되면 파초에 옷을 입혀주고 수국에 비닐 집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모든 일이 제겐 기쁨이었습니다.
저에겐 일종의 ‘부채의식’이 있습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안정과 평화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자기 십자가로 여기고 하늘의 뜻에 순종한 분입니다. 그것이 오롯이 당신의 몸과 마음에 상처로 남아 새겨져 있습니다. 그 흔적과 역사의 동산이 ‘문익환 통일의 집’입니다. 그 동산을 거닐며 기도하시고 아파하셨을 목사님을 생각하며 저 역시 동산을 거닐곤 합니다. 그곳에 자라는 풀과 나무, 새와 벌레들, 그곳의 흙내음 풋내음이 풀을 깎으며 땀을 흘리는 저에게 선물이 됩니다. 봉사 활동 하러 갔다가 되레 선물만 받고 오네요. 통일의 집,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이 참으로 정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