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2월 <인간적인 문익환>

🈷️ 늦봄은 봄길을 정말로 귀찮게 하네~

[늦봄 옥중편지 깜짝퀴즈] 

늦봄이 봄길에게 준 미션은 모두 몇 개일까요?

  
다음은 1979년 4월 16일, 서울구치소(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 수감되어 있던 늦봄이 아내에게 보냈던 편지의 일부입니다. 이 편지에서 늦봄이 아내 봄길에게 부탁한 일은 모두 몇 개 일까요?
 

 ① 5개              ②9개             ③ 10개           ④ 15개

  
  
 
<다음>

봄길에게
가을에 피는 청초한 코스모스보다는 희망찬 봄의 신선한 길이 훨씬 좋은거 같군요. 가을이 봄이 되었으니 새로워지고 젊어진거 아니겠오? 아주 아주 좋았어. 우선 종로 함경도 순대집 가는 길. 청계천 3가에서 3.1로 쪽으로 가다가 3.1로 못 미쳐서 마지막 골목으로 종로 쪽으로 들어가면 알라스카라는 아크릴 간판이 보일거요.  어머니를 자주 모시고 가서 대접해 드리시오. 지난 토요일 아침에 당신의 10일 편지에 영금의 편지, 호근의 파리에서 두번째로 보낸 카드를 받았지요. 얼마나 기뻤는지. 

… 여기 마당에 핀 개나리가 지기 시작한 걸 보니 슬슬 봄이 중반으로 접어드나 보죠? 저번에 목욕하러 가다가 진달래가 져 가고 벚꽃이 핀 것을 보았군요. 그만하면 1979년 봄을 볼 만큼 본 셈이죠… 밖에서 금년 수난절과 부활절을 어떻게 뜻있게 지냈는지 궁금하군요. 3~4일 안으로 편지들이 들어오면 알게 되겠지요…

아버님, 어머님 사기 건은 전(택부)형에게 부탁해서 자료를 정리하고 조사 보충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거요. 그러느라면 아버님도 나오시게 될지도 모르죠. 안 되면 편지로 연락하면서 준비해야죠. 쓰기 시작하기까지 전 형이 읽고 조사할 것이 많을테니까요.
내가 연행되던 날 오전에 홍성우 변호사에게 만원을 꾼 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어제야 생각이 나지 않겠오?  그리고 보니 출판축하회에 못 오신 변호사님들에게 시집을 증정하는 것을 잊은 것도 생각이 났오. 광주, 부산에는 보내면서. 오영석, 정하은, 과천수녀원에도 보내드려야지요.

곽(노순) 군 목회하면서도 학문을 계속하면서 돌아올 날을 기다리라고 편지하시오. 곽 군이 없는 한국의 구약학계는 중요한 한 구석이 비게 될 테니까.
조갑손 집사가 복수가 차서 단단한 배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위한 나의 기도의 열도가 확 뜨거워졌오. 양같이 순한 두 분. 세상에 태어날 때 받아가지고 온 착한 성품이 별로 때묻지 않고 그대로 있는 문들. 정말 ‘누이’라고 부르고 싶은 분. 그 좋은 분들에게 그런 시련이 오다니. 하느님은 그들의 믿음을 굉장히 크게 알아주시나 보아요. 그렇지 않고야 그렇듯 무거운 시련을 주시겠오? 하느님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는 투병으로 시련을 이기시도록 나는 하루에도 몇차례씩 기도로 그의 병상을 찾아가고 있오. 잘 말씀드려 주시오.

큰이모님께도 내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기도로 병상을 찾아간다고 말씀드려 주시오. 나는 때때로 눈을 감고 가만히 명상하다 보면 이모님이 조용조용 나를 위해서 기도드리는 소리를 듣거든요. 너무 실감이 나서 와락 손을 붙잡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로. 기도의 자리야말로 모든 장벽을 넘어서 영으로 사귀는 자리라는 것을 이렇게 실감하는 거죠. 이모님도 기도하는 가운데 현 목사님의 기도, 나의 기도 소리를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이모님도 지금의 병석이 그런 자리가 되었으면 싶다고 말씀드려 주시오. 현 목사님과 같이 아들, 딸, 손자들의 이름 하나하나 부르면서 그 밖에도 동생들, 조카들, 교회 목사님, 친구들, 교회, 나라를 생각하면서 기도로 병석을 차 넘치게 하시라고. …

강(찬순) 집사는 좀 차도가 있다는 말을 듣고 하느님이 사랑의 줄을 늦추지 마시고 계속 잡아당기셔서 완전한 사람으로 일어설 날이 오도록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있어요. 인간으로서도 신앙으로서도 그런 대장부는 정말 드물다고 해야지요. ‘하느님, 강 집사는 나의 믿음의 딸입니다. 가정을 위해서도, 교회를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그를 살려주시는 것이 좋다고 확신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다가도 나의 인간, 나의 믿음이 도저히 그에게 못 미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그의 앞에 가면 마음 쓰는 것, 생각하는 것, 어려움에 대처해 나가는 일에 있어서 나는 퍽 작고 어리게 느껴지거든요. 철이 결혼식에는 내가 여기서 기도로 복을 빌어 준다고 전해 주시오. 강 집사 파이팅.

Richard Wright의 ‘Native Son’을 Faye에게 부탁해서 구해주고. 金東里의 ‘乙火’도.  집에 있는 책으로는 네루다의 시집과 李貞桓의 ‘까치房’도 읽고 싶군요. 창비사에서 펴낸 시집들은 대강 다 집에 있는데, 또 읽어보고 싶군요. 함혜련의 시집들 너무 한꺼번에 많이 들여보내지는 말고.
 
 
 
정답: 3번

①어머님께 순대 대접하기
②전택부 형에게 아버님, 어머님 전기 부탁하기(자료정리, 조사 보충부터 하라고 전달할 것)
③홍성우 변호사에게 꾼 만 원 갚기
④시집 증정(출판축하회에 못 온 분들 추려서. 오영석, 정하은, 과천수녀원 포함할 것)
⑤곽노순 군에게 안부편지하기
⑥입원한 조갑손 집사에게 안부 전하기
⑦아프신 큰이모님께 인사 전하기
⑧강집사에게 쾌유를 비는 안부 전하기(철이 결혼축하)
⑨제수씨(Faye)에게 Native Son 책 구해달라 부탁하기
⑩집에 있는 책 챙겨서 남편에게 보내기(을화, 까치방, 네루다 시, 창비사 시집 등)


<글: 아키비스트 지노>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의 삼 년 묵은 아키비스트로 늦봄과 봄길의 기록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하는 아카이브하는 사람이다.




월간 문익환_2월 <인간적인 문익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