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11월<늦봄의 벗들>

🈷️ 기록으로 본 늦봄의 친구들

고향의 소꿉동무
신학의 복음동지
투옥중 민주동지… 
늦봄 인생의 ‘마음의 고향’

 

“주님이 은혜로 허락하신 일년이 그대로 소비되고 말았다는 사실. … 벗과의 우정을 소홀히 했다는 것. 너무 독서를 멀리했다는 것. … 생각하면 생각할사록 괴롭습니다. 오늘은 하로종일 벗들에게 사과의 편지를 쓸렵니다.” ― 1941년 마지막 날에 24세의 문익환이 박용길에게 쓴 편지
 

윤동주-송몽규-김정우 등 명동소학교 단짝

▲학창 시절 
문익환 목사는 장남인데다 외모가 준수하고 총명하기까지 하여 어린 시절 주위로부터 칭찬과 기대를 받았다. 말하자면 인싸(인사이더) 재질을 타고난 것이다. 명동소학교 시절에는 윤동주, 송몽규, 김정우 등과 죽마고우로 지냈고 6학년때는 함께 신문을 만들었다. 이들은 훗날 모두 시인이 되었다. 명동학교의 졸업 선물은 김동환의 시집 『국경의 밤』이었는데 문익환 목사도 잊고 있다가 나중에 김정우 시인이 알려줘서 기억해냈다고 한다.  

 
◇ 통일의 집에 전시 중인 시집 『국경의 밤』. 1925년판을 복원 간행한 『한국현대시 원본전집③』(1975)이다. 
   
 
◇ 연세대에 세워진 윤동주의 시비 앞에서 시인 김정우, 윤일주(윤동주 동생)와 함께 


1941년 마지막 날, 한해를 반성하며 쓴 편지는 우정에 소홀히 한 점에 대해 벗들에게 사과의 편지를 쓸 것이라는 결심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편지에 윤동주를 가리키는 듯한 구절도 있다. 
 
“연전문과를 금반 졸업한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용정으로) 왔읍니다. 경성 가곺은 생각이 많이 납니다.” 
(1941. 12. 31 문익환이 박용길에게 쓴 편지)
 

복음동지회 부부동반 친교모임도

▲신학자 시절 
신학자로 연구하고 강의하던 시절 친밀하게 우정을 나눈 그룹 중 하나는 ‘복음동지회’이다. 이 모임은 임마누엘 신학강좌를 개최하고 마태의 복음서를 번역하는 등 굵직한 기독교 사역을 전개하면서도  회원들 간의 친교 활동도 활발했다. 부부 동반으로 아유회와 성탄·신년회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모습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이 즐거운 한때 이후 문익환 목사에게 닥칠 일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왠지 모를 애잔함이 뒤따른다.  
 
 “코스모쓰에게,
복음 동지회에가서 좀 외로왔겠구료. 놀림도 받구. 장,원 두 분에게 나도 축하한다고 전화해주시오.”
(1966. 2. 20 문익환 목사가 미국 유학 중에 홀로 모임에 참석한 박용길 장로에게 보낸 편지) 
 
◇ 초교파 신학자 모임이었던 복음동지회의 성탄·신년회 모임. 장준하 선생(두번째줄 왼쪽에서 두번째)과 문익환(뒷줄 가운데)이 함께한 모습이다.
 

옥중편지 통해 친구들과 소통

▲감옥 시절 
‘감옥’과 ‘우정’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익환 목사는 민주화·통일 운동으로 수감생활이 시작된 이후에도 바깥 친구들의 형편에 계속 관심을 가졌으며 편지를 보냈다. 편지를 양껏 보낼 수 없을 때는 여러 명에게 각각 보내는 편지를 하나의 봉함엽서에 빼곡히 적었다. 물론 대표로 받아서 복사하고 여러 명의 수신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박용길 장로의 몫이었다.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https://www.archivecenter.net/tongilhouse) 에서 [옥중편지]>[개인에게 보낸 편지]를 선택하고 관계 분류 필터(스승, 열사, 친구 등)를 적용하면 수신인을 특정하여 옥중편지를 읽어볼 수 있다. 

 

옥중편지를 가장 많이 받은 친구는?
 
◇ 문익환 옥중편지에서 가족을 제외한 수신자 통계 결과, 기세춘 선생이 총 31통을 받아 가장 많은 편지를 받은 친구로 꼽혔다. 그 뒤로 김명식 시인(20통), 박순경 박사(19통)인데 세 사람 모두 1992년경 문익환 목사가 편지로 활발히 비평하던 시기에 편지를 받았다.

김명식: 시인. 제주 출신 으로 『제주민주항쟁』을 펴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
기세춘: 동양철학자. 문익환 목사와 주고 받은 편지가 『예수와 묵자』로 출간
박순경: 통일신학자. 한국여신학자협의회 초대회장


면회기록도 문익환 목사의 친구 관계를 알려주는 흥미로운 기록이다. 허용된 횟수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면회를 희망하는 친구들의 일정을 조율하고 동행하는 것을 박용길 장로가 담당했다. 면회일에 쓰인 편지에는 면회 여정과 반가운 벗을 만난 소감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 면회가겠다는 전화가 너머 많이 걸려와 교통정리가 힘들 지경입니다. …” 
(1990. 10. 12 박용길 장로의 ‘당신께’ 편지)

“당신께
안녕하세요? 지하철을 타고 잠실에서 내려 교통회관앞에서 일행을 기다려 10시반에 떠났읍니다. 차창으로 몰려드는 거센 바람을 맞으며 기분좋게 달렸읍니다. 마음맞는 사람들과 같이 여행을 한다는건 즐거운 일이죠. 대문에서 세분 어머니(조성만, 송광영 모 외)를 만나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 당신께서도 머리가 좀 자라고 체중도 줄고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1990. 8. 8 박용길 장로의 ‘당신께’ 편지)

“오늘은 뜻밖에 가슴 뜨거운 동지들 중의 동지들을 안아볼 수 있었군요. 조성만의 어머니의 고요하면서도 깊은 슬픔에 내 가슴은 아픈 전류라도 흐르는 것을 느꼈다오. 광영의 어머니의 기도야 하느님이 어찌 안 들어주실 것이오?”
(1990. 8. 8. 문익환의 옥중편지)


한편, 수감 시기에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영국, 호주, 캐나다 등 해외에서 많은 위로의 엽서가 감옥으로 보내졌다. 국제인권단체 엠네스티가 벌인 양심수를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추측되는 이 엽서들은 상당수가 ‘힘을 내십시요’라는 짧은 문장으로 이루어져있다. 일면식도 없는 이 외국인 친구들이 한 획 한 획 그려낸 응원 메시지가 문익환 목사에게 적잖은 위로와 기쁨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 ‘네델란드의 친구’가 보낸 편지
 

친구들의 기억과 기록은 값진 사료

▲인물 아카이브에서 친구 기록이란
친구들이 가진 기억과 기록은 아주 강력한 증거이자 가치 있는 사료가 된다. 한 예로 연세대 서울캠퍼스에 위치한 윤동주기념관에는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에서 제공한 윤동주의 평양 숭실중학교 시절 사진이 있다. 당시의 앳된 모습과 교우관계를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이다. 
 
◇ 평양 숭실중학교 시절 문익환(뒷줄 가운데)와 윤동주(뒷줄 오른쪽) 


다른 예로는 친구 장준하의 장례식을 계기로 문익환과 백기완이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를 회고하는 기록을 서로 비교해볼 수 있다. 

 
“당신께! 
또다시 백기완 씨와 나는 장준하 씨를 매개로 마음과 마음이 통해 있었어요. 만나자고 해서 나갔더니,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 일을 꺼내더군요. … ‘장 영감이 살아 있으면 그 일(1976년 3.1 민주구국선언문 작성)을 할 텐데, 문 형이 나서서 그 일을 해줄 수 없겠수?’ 이 제안을 나는 두말하지 않고 받아들였지요.”  
(1992. 2. 21-22 문익환의 옥중편지)

“내가 문익환 목사를 처음 만난 곳은 1975해 8달 18날, 장준하 선생의 집 역울(빈소)이었다. - 나 문익환 목사요. 그 빛나는 눈에 왜 그리 물기가 뿌연거요. 우리 나가서 목이나 적십시다. - 장 선생이 앞장을 섰던 일을 누가 이어가야 하는데… 난 기독교, 그쪽엔 손이 잘 안 닿아서 그런다니까요. 거, 문 목사가 좀 나서면 안 되겠소? - 장준하, 백기완이의 거리싸움에 날보고 나서라고? 난 그런 일은 해본적도 없고 성경 메베(번역)만 하느라 맞지도 않고. - 목사님, 목사님한테 거대는 게 아닙니다. 찰(시) 쓰는 문익환이한테 거대는 겁니다. 찰 한 줄 쓰시라는 건데 뭘 그러세요. - 그래, 찰 한술 지어볼까? ” 
(백기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p. 302-305 부분발췌)

 
 
◇장준하 선생 묘소 앞에서 추모하는 백기완 선생(맨 왼쪽)과 문익환 목사


문익환 목사의 짤막한 회고에 백기완 선생이 남긴 기억을 더하니 아주 풍성하고 생생한 기록 뭉치가 되었다. 인물 아카이브에서 친구들의 우정과 도움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문익환 목사 기록을 찾을 수 있는 이웃 아카이브는 김대중 도서관, 김근태기념도서관, 전태일 기념관, 백기완 아카이브(오픈 예정) 등 다양하다. 벗들의 아카이브를 탐험하며 이야기의 구슬이 하나씩 꿰어지는 기쁨을 느끼기 바란다.  


<글: 박에바>
보는 것보다는 듣는 것을, 쓰는 것 보다는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수동적 내향인, ISTP.




[참고문헌]
김형수 (2018). 『문익환 평전』. 다산책방
백기완(2009).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겨레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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