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11월<늦봄의 벗들>

🈷️ 방명록에서 찾은 벗들

“내년 가을 산행은 금강산으로 가시자더니…”
전민련산악회 “이틀 전 환담이 마지막이실 줄이야” 



한신대 수장고 3층에 있던 문서 상자들을 열어보다가 발견하게 된 것 중 방명록이 있다. 커다란 문서상자 다섯 개 분량으로, 세어보면 모두 104권에 이른다. 이 방명록은 대부분 늦봄과 그 가족의 장례를 치르며 생산된 것과 늦봄 생전에 그를 위한 여러 모임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늦봄 아카이브에 남겨져 있는 이 특별한 방명록들을 통해 늦봄의 벗들 기록을 살펴보고자 한다.
 
방명록 芳名錄
어떤 일에 참여하거나 찾아온 사람들을 특별히 기념하기 위하여 그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놓는 기록 또는 그 책
 

이창복-진관 등 민주화동료들 이름

▲동시대인들의 흔적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래도 늦봄이 별세한 1994년 1월에 작성된 방명록이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방명록처럼 늦봄 지인들의 이름들이 남겨져 있다. 늦봄의 삶엔 넓고 깊은 인적 관계가 있었기에 방명록 안에는 당대의 유명 인물들부터 평범한 이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동시대인들의 흔적이 가득하다. 
 
◇ 이창복, 김희택, 진관스님 등 함께 활동했던 민주화 운동 동료들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늦봄 별세 방명록에서 발견한 언더우드 2세 원일한(1917.10.11 ~ 2004.1.15) 의 서명.
그도 한국전쟁에서 통역장교로 일했다. 
 

“소주 한 병 들고 이렇게 찾아옵니다”

▲벗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방명록에는 대개 이름이나 소속을 짧게 적는다. 하지만 늦봄 아카이브 방명록에는 이야기가 있다. 늦봄 별세 방명록에서 발견한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산악회의 글은 늦봄이 그들에게 어떤 존재였고 그의 별세가 얼마나 갑작스러운 사건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94년 1월 16일 
전민련산악회 12명의 동지들과의 환담이 마지막이실 줄 누가 알았습니까?
이제는 모든 통일운동 세력들이 단결하여 95년엔 통일의 희년을 맞이해야 하시던 목사님!
이제는 미국도 한국의 보수세력도 민족통일의 대세를 거스를 수 없기에 통일이 눈 앞에 다가왔다고 환한 웃음 지셨던 목사님!
그래서 내년 가을 산행은 금강산으로 가자시던 목사님! 도무지 믿기지 않는 현실의 비통함을 어찌 표현하겠습니까?
애국, 민주, 통일의 한길로 살아오신 목사님의 뜻을 저희가 꽃피우겠습니다.
전민련산악회
 
◇전민련 산악회가 쓴 방명록 


아카이브에는 마석 모란공원의 늦봄 묘소에 있던 방명록들도 포함되어 있다. 늦봄을 만나기 위해 갔거나 혹은 민주열사 묘역에 있는 다른 이를 만나러 갔다가 늦봄을 찾게 된 사람들은 묘소 한편에 있는 방명록에 마치 귀 기울여 들어주는 늦봄을 떠올린 듯 자신의 이야기를 남겨두고 갔다. 

 
문익환 목사님
마석 모란공원은 서울에서 불과 한 시간 거리인데
제 마음속에서는 너무 먼 거리였던 것 같습니다.
목사님 영결식과 노제를 지켜보면서 눈보라 속에서 목사님을 떠나보내면서 언제 한번 당신을 찾아뵙겠다 하면서도 이제 6년이 지난 오늘에야 소주 한 병 사들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모란 공원 방명록에 남겨져 있는 어느 벗의 글 
 
반독재민주화투쟁의 아픔과
5.17을 함께 겪은 저희들 참배단이
다녀갑니다.
목사님께로 향한 한없는 존경과
흠모의 일념을 되새기고 갑니다.
2003. 5. 16
참배단 한승헌 드림
 
◇ 모란 공원 방명록에 남겨져 있는 늦봄의 변호인이었던 고 한승헌 변호사의 글씨
 

“모두 왔어요” “문 목사님 만세”

▲모두 왔어요, 문 목사님 만세!
감옥에 있는 늦봄이 생일을 맞을 때면 벗들은 봄길과 함께 감옥 밖에서 생일 축하를 하려고 모였다. 또 늦봄에게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도 사람들은 모여 그를 위하는 마음을 모았다. 일반적이진 않지만 롤링 페이퍼도 일종의 방명록과 같았다. 큰 종이에 여럿이 이름과 하고픈 말을 적는 방식으로 작성한 릴레이 글은 늦봄에게 보내는 벗들의 인사이자 응원이었다.

 
◇문익환 목사를 응원하는 롤링페이퍼로 만든 액자. 사람들의 이름과 “모두 왔어요” “문목사님 만세” 등 메시지가 적혀있고 많은 이들의 서명이 담겨 있다. 


또, 늦봄의 마지막 감옥인 안동교도소를 찾았던 막 청년이 된 학생들도 교도소 앞에 모여 늦봄을 떠올리며 짧막한 글을 이어서 써 내려갔다. 
 
문익환 할아버지
저는 괜히 ‘할아버지’라 부르고 싶군요.
조국 통일 될 때까지 건강하셔야 할텐데
여기는 지금 할아버지가 계신 안동교도소앞입니다. 여기 오니 조국의 하늘 아래 둘로 갈라진 교도대와 우리들이 정말 서글퍼 눈물 날듯 합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대구경북지역 통일 선봉대원

문익환 목사님
저는 범청학련 국.보.철. 통일선봉대 부경총련의 한 학우입니다.
5일 동안을 전국에 통일의 불바람을 일으키고
오늘은 선생님을 만나뵙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만
이렇게 구치소 앞에서 몇자 적습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더욱 커지는 것이라지요.
… 더우신데 건강 유의하십시요.
사랑합니다.
 
◇안동교도소 앞에서 학생들이 쓴 롤링 페이퍼 


방북 후 수감된 늦봄은 건강이 악화되었고 이에 그의 병원 치료를 촉구하는 농성과 시위, 각계 지지자들의 방문과 후원이 이어졌었다. 그 와중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방명록도 있는데 그 안에는 그의 건강을 기원하는 벗들의 이야기가 남겨져 있다.
 
분단극복을 위해 앞서 가시는 문목사님의 삶에 깊이 감사드리며 주님의 은혜로 빨리 석방되시고 건강회복하시어 통일의 그 날을 함께 마지하는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통일염원 46년 1월 9일 이효재
 
◇ 늦봄의 석방을 기원 모임에서 쓴 것으로 추정되는 국내 1세대 사회학자 이효재 선생의 글씨


여러 방명록에 남겨져 있는 이 흔적들은 늦봄을 존경하고 그리워하며 그의 뜻을 지켜주고 함께하고자 했던 늦봄 벗들의 기록이다. 늦봄 벗들을 기억하며.


<글: 아키비스트 지노>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의 삼 년 묵은 아키비스트로 늦봄과 봄길의 기록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하는 아카이브하는 사람이다.




월간 문익환_11월<늦봄의 벗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