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11월<늦봄의 벗들>

[특별한 인연] 전주교도소 前교도관 전형근 씨

“문 목사님과의 인연은 제 인생의 자산”
“석 달간의 짧은 만남이지만 존경 가득한 마음”

 
 

◇1990년 당시 전주 교도소에서 교도관으로 근무했던 전형근 씨


전라북도 완산군 모악산 기슭. 
‘모악골 쉼터’라는 작은 둥지의 주인은 인사를 마치자마자 피아노에 먼저 앉았다. 곧이어 연주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문익환 목사에 대한 회상은 이렇듯 통일을 염원하는 아름다운 선율로 시작되었다.

 

“다정다감한 모습 본받아야겠다 생각”

전주 교도소 前 교도관 전형근 씨. 
늦봄은 1990년 7월 23일 안양에서 전주로 이감되어 10월 20일 형집행정지로 석방되기까지 대략 3개월가량 전주교도소에 수감됐는데 그때 ‘문익환 담당’이 바로 전 씨였다.
워낙 ‘거물’이라 긴장하고 있던 교도관에게 문 목사의 첫인상은 다소 뜻밖이었다고 한다.
“의외로 인자하시더라구요. 말도 차분하게 하시고. 그런데 본인의 주장이나 철학에 대해서는 사자처럼 포효하듯 변하시더라구요”

인상적인 건 누구보다 건강관리에 철저했다는 점이었다.
“끝방 병사동 독방에 수감되었죠. 요가와 파스 요법, 물구나무서기를 하시면서 몸을 돌보셨어요. 특히나 물도 그냥 드시지 않고 수돗물을 침전시켜 생수로 마셨지요” 
전 씨는 무엇보다 문 목사의 인간적인 모습에 특히 감동받았다고 한다. “영치물을 나누어 주는 등 항상 주위 사람을 배려했어요. 특히나 부인에게 그렇게 다정다감할 수가 없었어요. 항상 존중하시더라구요. 그 모습 보면서 제가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머니 김신묵 권사 임종 후 머리를 짧게 깎은 늦봄
 

“어머니 산소처럼 일부러 머리 짧게 깎아”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 하나.
“문목사가 어머님 임종 때 형집형정지로 나갔다가 재수감되었는데 머리를 아주 짧게 깎고 들어오셨어요. 그래서 그 이유를 물었지요. 그랬더니 어머님 산소를 만질 때 느껴지는 까실까실한 느낌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하시더라고요. 수감 중 직접 묘소에 찾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자신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어머니를 생각하려 했다고 하시더라구요”.

 
 ◇교도소 밖에서 재회한 수인과 교도관. 1990년 10월 20일 형집행정지로 석방된 문 목사가 얼마 뒤 전주에 강연차 내려왔을 때 강연장을 찾은 전형근 씨와 기쁘게 재회하고 있다. (사진 제공: 전형근)


‘교도관과 수인’이라는 아주 특별한 인연. 그에게 문 목사는 어떤 존재일까?
“통일을 염원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통일의 선구자인 문 목사를 존경 가득한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늦봄의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은 오랜 수감 생활에서도 바래지 않고 더욱 깊어져 수감자들 뿐만 아니라 교도관들에 대해서도 열악한 근무 환경에 안타까워 하며 막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처우가 개선되어야 함을 피력했다. 

 
이 땅의 공무원들 가운데서 이 사회를 새롭게 하는 근본적인 사명을 띠고 있는 것이 교도관, 그들이 그런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땅의 가장 썩어 냄새나는, 가장 절망적인 데가 바로 전과자들의 세계 아니겠어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교도소이구요. 여기서 새 살이 나오지 않는 한 이 사회를 새롭게 하려는 모든 노력은 속은 곪았는데 겉만 아물리는 일이 되고 만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치게 하려고 나를 이리로 들여 보내셨다고 나는 확신하거든. “인생을 새로 시작한다면 교도관으로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니까요.
… 음지의 세계를 양지의 세계로 바꾸는 일에 무언가 한몫을 하지 못한다면 난 날벼락을 맞을 것 같은 심정이거든요. (옥중편지 1992. 3. 12)


 
  ◇ 전주 교도소에서 쓴 늦봄의 친필 글귀(전형근 씨 소장)
 

“늦봄 친필 글씨 통일의 집에 기증하고파”

그는 늦봄이 교도소에서 써준 친필 글씨를 액자에 넣어서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이를 늦봄 박물관인 ‘문익환 통일의 집’에 기증해서 더 많은 사람이 보고 의미를 되새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증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1976년-1990년 두차례 수감

▲늦봄과 전주교도소

 
◇ 전주교도소 정문 


늦봄이 두 차례나 수감된 교도소다. 늦봄은 1976년 3.1민주구국성명서를 작성해서 ‘대통령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첫 번째 구속되었다. 1976년 3월 2일부터 1977년 12월 31일까지 22개월 동안 서울구치소, 전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 1989년 평양방문 후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다섯 번째 옥고를 치렀는데 그해 4월 13일부터 1990년 10월 20일까지 19개월 동안 안양교도소와 전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글: 오남경>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여행과 사색을 위한 숲길 산책을 무척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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