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10월 <봄길 박용길>

🈷️ 기록가이자 수집가, 박용길의 '기록'

타고난 기록가… ‘시대를 앞서간 아키비스트’

 
◇젊은 시절 서재에서 책을 보고 있는 박용길 
 
“기도하시는 분들을 한분 한분 붓글씨로
기록해 나가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읍니다.”
― 박용길이 감옥으로 보낸 편지, ‘당신께’ (1977.10.2) 
 

감옥으로 보낸 편지 ‘당신께’ 무려 2,304통

▲감옥으로 보낸 2,300여 통의 편지 ‘당신께’
 
늦봄 문익환이 남긴 대표적인 기록이 ‘옥중편지’라면 그의 아내 봄길 박용길의 기록으로는 감옥으로 보낸 편지 ‘당신께’가 있다. 편지의 대부분이 ‘당신께’로 시작하기 때문에 그 표현이 곧 박용길의 편지 컬렉션을 칭하는 이름이 되었다. 두 사람이 검열을 거쳐 주고받은 편지들은 문익환 목사가 첫 번째로 수감된 1976년부터 여섯 번째 수감이 끝나는 1993년 사이에 쓰였으며 현재 아카이브에서 파악한 편지의 수량은 ‘옥중편지’가 807통, ‘당신께’가 2,304통이다.  
박용길 장로는 남편의 두 번째 구속이후로는 매일 쓰기를 공언하였는데 많게는 한달에  25통, 평균으로는 19통 정도를 써 보냈다(오명진 2020).
 
“당신께  1978 마지막날  
새해에는 더욱더 건강하셔야지 않겠습니까? 매일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아갈 소식을 매일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받으시기 바라면서 이만 당신의 해인 무오년 만세”

반면 수감자인 문익환 목사는 편지를 보내는 횟수에 제한이 있어 ‘양보다 질’ 전략을 택해야 했다. 하지만 옥중편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양과 질을 모두 포기할 수 없었던 듯 하다.  
 
“아빠께 1979. 5. 22(火)
저녁 늦게 집에 도라와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5월 서신을 받았읍니다. 오래만에 깨알보다도 더 작은 글씨를 대할 때 읽지 않고도 배가 부르는 기쁨을 맛보았읍니다. … 그 봉함엽서 한장이 제 30일분 편지와 맞먹는 셈인데 오히려 비중은 더 나갈것 같군요. 그렇게 값진 소식이였죠.” 
 
◇박용길이 보낸 감옥으로 보낸 엽서(좌)와 봉함엽서에 빼곡히 쓴 문익환의 편지(우)(1979.5)


두 사람의 편지의 서두에는 날짜와 함께 ‘제○신’이라는 서신의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이렇게 하면 혹시 검열이나 배송 중에 누락된 편지가 있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유용하다. 간혹 문익환 목사가 날짜나 서신 번호를 헷갈리면 박용길 장로는 각종 모임의 서기직 경력자답게 그냥 넘기지 않고 바로잡아 주었다.
 
“제 500신 1982. 6. 19 (토) 
500신 돌파 예쁜 꽃다발을 보냅니다. 축하할 일인지는 모르겠읍니다만. … Mrs. Kim, Mrs. Lee 그리고 저 셋이서 매일 편지를 쓰고 있는데 쓸 말이 없다고 고충을 털어놓습니다만 사실 쓸말을 다 못쓰는데서 오는 고민 일 것입니다. … ”

“당신께  제34신 1986. 8. 3
… 당신 날짜 쓰시는 것 고마운데 86년을 68, 76, 마음대로 쓰시는군요. 많이 웃기십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이 귀중하고 방대한 기록은 박용길 장로가 스크랩북 형태로 보관해 왔던 것으로, 현재는 개별 편지들을 중성봉투에 담아 보존 중이다. 달력에 쓴 대형편지, 말린 꽃이나 나뭇잎이 붙어있는 특수 재료 편지들은 탈산처리를 거쳐 별도의 보존상자에 담겨있다. 물리적 정리 이후에는 온라인 아카이브에서 서비스하고 활용되게 하는 일이 뒤따른다. 
 
◇ 박용길 장로가 날짜별로 정리한 ‘당신께’ 편지 스크랩북


 우선 ‘옥중편지’와 ‘당신께’  편지 간 공유되는 특징과 관계를 파악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주고받은 편지의 맥락을 밝혀 편지 내용을 해석하기 위한 작업이 필수적이다. 단순히 아카이브에 편지를 스캔하여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으로 이용될 수 있도록 아카이브에서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오명진 2020). 그럴 때 문익환, 박용길의 둘만 아는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또 다른 누군가를 초대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기록하는 행위’는 봄길의 오랜 습관

▲정리 습관의 기록과 기도문
 
“당신께  제260신 1990.1.28(日)
… 한빛(교회) 역사를 집필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것 같군요. 기록으로 남겼어야 하는건데요. 김재준 목사님이 늘 기록이 제일이라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 

정리하고 기록한다는 것은 박용길 장로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수기 기록에서 비슷한 내용의 기록이 시간 차를 두고 다시 반복해서 생산되는 패턴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 예로 인명, 물품, 사건 날짜 등의 목록을 적은 메모와 겪은 일을 회고한 원고 등이 있다. 동일한 내용을 여러 번 쓰면서 이름이나 날짜를 잊지 않으려는 것일 수도 있고, 이전의 것을 찾지 못해서 새로 쓴 것일 수도 있다. 혹은 기록을 강조한 김재준 목사의 말을 따른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필요에 의해 썼든지 기록한다는 행위 자체는 박용길 장로의 오랜 습관이 분명해 보인다.

정리하고 기억하는 것 뿐만 아니라 직접 기록을 엮고 편집한 것들도 상당하다. 양심수·유가족을 위한 운동, 교회·구제 봉사, 통일 운동 등의 외부 활동을 활발히 하면서도 시간을 들여 사진 앨범을 정리하고 부모님, 남편의 기록도 부지런히 정리해 두었다. 
 
◇ 박용길이 정리한 아버지 박두환 추모 문집(왼쪽)과 문익환 논문철(오른쪽)       
 

이상 박용길 장로가 정리하고 편집한 기록은 그의 아키비스트로서의 면모를 짐작케하는 것이었다. 운동가, 활동가로서의 봄길이 잘 드러나는 기록은 뜻밖에도 기도문이다. 한빛교회, 갈릴리교회, 목요기도회 등의 모임을 위해 준비한 기도문에는 박용길 장로의 시대를 향한 거침없는 비판과 뜨거운 열망, 이웃을 향한 애정이 담뿍 담겨있다. 
 
“누가 감옥에서 나오고 안 나오고가 문제가 아니라 이나라에 우리가 원하는 참 민주주의가 와야겠다고 간절히 바라고 있읍니다. … 죄있는 사람이 죄없는 사람을 처벌하는 뒤바뀐 세상을 바로잡아 주시옵소서.”
― 박용길의 기도문 중(한빛교회 대예배 1981. 3. 8)
 

 
◇ <우리의 간절한 기도> 기도문 모음집(1963~1983)
 

작은 단독주택 가득메운 사료 25,000건

▲수집 습관의 기록
 
박용길 장로의 수집벽은 지인들 사이에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한다. 수집하고 또 소중히 보관한 그 습관 덕에 통일의 집 박물관은 풍부한 사료를 갖출 수 있었다. 2018년 통일의 집이 복원사업을 거쳐 지금의 박물관으로 재개관하기 전까지 22~23평 되는 단독 주택에 약 25,000 건으로 추정되는 사료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현재 모습은 예전처럼 사료를 대량으로 전시해 놓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박용길 장로가 행사장에서 모은 명찰 전시는 여전히 모든 방문객들을 놀라게 한다. 
 
◇ 2018년 통일의 집 안방 모습(좌)과 2022년 안방 책꽂이에 전시된 이름표(좌)
 

통일의 집에서 옮겨와 수장고에 보존 중인 박물 사료는 아직 정확한 수량과 품목 확인은 되지 않았고 박스 단위로만 파악된 상태이다. 박용길 장로가 즐겨 착용한 한복과 의류만 네댓 상자를 차지한다. 그밖에 각종 공예용품, 편지 재료, 상패, 북에서 받은 선물, 재봉틀, 교자상, 그리고 통일의 집의 작은 세간까지 남아있다. 

 
◇ 박용길 장로가 사용했던 수첩과 소장한 물건



보물찾기를 하는 마음으로 사료 상자를 살피다 보면 ‘수집과 버리지 못함’ 그 중간 어디쯤에 걸친 사료도 많이 보게 된다. 아무런 설명없이 고이 담겨있는 냅킨 한 장을 발견했을 때의 막막함이란…. 일단 다시 제자리에 넣어두는 수 밖에 없다. 지금은 무가치해 보이지만 어느 편지나 메모 속에서 문제의 냅킨에 관한 에피소드가 등장할 지 모를 일이다. 



<글: 박에바>
보는 것보다는 듣는 것을, 쓰는 것 보다는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수동적 내향인, ISTP.





[참고문헌]
오명진 (2022). 「박용길의 편지 ‘당신께’ 컬렉션의 특성과 과제」 『기록학연구』 (72) 205-238.

 
※ 박용길의 ‘당신께’ 편지는 오픈아카이브(archives.kdemo.or.kr)에서 ‘박용길장로가 문익환목사에게 보내는 서신’으로 검색하면 편지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다.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에서는 2019년 봄길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 기록과 편지집 단행본 『사랑의 기록가 박용길』을 확인할 수 있다.

월간 문익환_10월 <봄길 박용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