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9월<학자 문익환>

🈷️ 늦봄의 한글 풀어쓰기

“안기부 수감 55일동안 풀어쓰기 체계 완성” 
“그 무시무시한 55일이 보람찬, 생산적인 나날”

 
◇ 한글의 아름다움을 헤쳐서는 안 되며,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 한다는 내용의 시 「한글 풀어쓰기」를 적어 놓은 원고
 
◇윤동주의 「서시」를 풀어쓰기로 표기한 늦봄의 옥중편지(1992. 5. 2)



 늦봄과 한글 풀어쓰기 연구. 생소하게 다가올지 모르지만, 한글 풀어쓰기는 문익환 목사가 성서 번역 다음으로 몰두했던 분야였다.  “우리 말을 쓰려고 만든 우리 글자를 최대한으로 살려야 한다"고 생각한 늦봄은 이 같은 인식을 기반으로 풀어쓰기 연구를 거듭했다. 

풀어쓰기는 한글 자음과 모음을 ​​​음절 단위로 모아 쓰지 않고 낱글자를 나란히 배열하는 표기형태이다. 예를 들면 ‘곰’이란 글자를 ‘ㄱㅗㅁ’ 과 같이 풀어쓰는 방식이다. 주시경을 시작으로 그의 제자 최현배와 김두봉이 풀어쓰기 운동을 주도했으며 일제강점기에 조선어학회의 꿈이기도 하였다.

문익환 목사는 최현배 선생의 『글자의 혁명』을 읽고 한글 풀어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49년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기 전에 설교문을 직접 풀어 써보기도 했고 귀국 후 신학교에서 풀어쓰기 타이프라이트를 써보기도 했다. 다만 그 활자라는 것이 모듬 글자의 자모를 그대로 쓴 것이어서 모양이 좋지 않아 당시엔 그만두기도 했다.  
1976년엔 한글날을 기념해 서체 연구자인 장봉선 박사와 함께 우리 글 풀어쓰기 보급을 위해 신문을 월간으로 내기로 하였으나 감옥에 수감되는 바람에 무산되기도 했다. 하지만 감옥의 흐릿한 불빛 아래에서 우리 글과 영어를 읽은 경험을 통해 우리 글의 표현 방식이 눈을 피곤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후 80년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풀어쓰기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고 연구에 매진하여 체계를 완성하게 되었다.

 

안기부 조사관들도 전적으로 공감


그때만 해도 전압이 낮아서 초저녁에는 30촉(와트)짜리 알전구가 수수팥떡이야. 밤이 깊어가면서 불이 밝아졌지.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글 책은 못 읽겠는데, 영어책은 읽을 수 있는 거야. 영어 글씨는 고루 굵은데, 우리 글자는 그럴 수가 없지. 『나』자야 굵게 할 수 있지만, 그 좁은 공간에 『빨』자를 굵게 할 수는 없거든. 여기서 내가 깨달은 것은 우리의 모든 글씨체는 눈을 피곤하게 한다는 것이었다(중략)

80년 안기부에 가서 55일 조사받을 때였다. 자필 진술서를 쓰라고 종이와 펜을 주더라고. 조사를 받지 않는 시간에는 정신없이 써보았다. 나의 풀어쓰기 체계는 그 55일 동안에 거의 완성된 거야. 이렇게 해서 그 무시무시한 55일이 보람찬, 생산적인 나날이 되었단다. 생산적인 나날이 되기도 했지만, 풀어쓰기를 꼭 해야 한다는 또 다른 까닭을 경험으로 깨치게 되었지. (옥중편지 1992. 4. 24)

안기부에서 55일 조사받는 동안 자필 진술서라는 걸 얼마나 썼던지, 마지막에는 팔이 아파서 견디기 힘들었다. “풀어쓰기라면 얼마나 쉬울까?” 내 입에서 나온 탄식 소리였지. 조사관들도 전적으로 공감했고. “우리도 얼마나 쉬울지 모르죠”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공감이었다. 그때쯤은 이미 그들도 풀어쓰기의 신봉자들이 되어 버렸으니까. 그걸 느끼면서 더욱 열을 올리게 되었단다. (옥중편지 1992. 4. 25)



 풀어쓰기는 글자의 기계화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철자법의 간소화를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하였으며 궁극적으로 겨레의 계층화를 완화하는 방안이 되기도 한다고 생각하였다.
 
어려운, 복잡한 철자법이 사람들을 계층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면, 한문 글자는 더 말할 것도 없는 것 아니겠니? 그 어려운 한문 글자를 제대로 알고 쓸 줄 아는 사람들 만이 국민이었고,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국민이 아니었지. 한문 글자, 眞書(진서)를 아는 계층의 노예요, 심부름꾼 이상일 수가 없었던 것 아냐? (옥중편지 1992. 4. 27)
 

윤동주 ‘서시’도 풀어쓰기 표기법으로 정서


감옥에서 윤동주의 「서시」를 자신이 연구한 표기법으로 정서해둔 기록이 있다.
 
나는 이 체계가 공인되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노력들이 여기저기 이루어져서 그 여럿을 놓고 더 좋은 것을 같이 만들어 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계기라도 마련하려고 시도해 보았다. 윤동주의 「서시」를 한번 써볼게. (옥중편지 1992.5.2)
 

지극했던 한글사랑…전쟁 땐 ‘한글학교 교장’

▲‘열혈 연구자’ 문익환
문익환은 목사이며 민주화 운동가 통일운동가이자 평생을 연구에 몰두한 학자였다. 구약학자로 성서번역을 필생의 과업으로 여기고 번역에 매진하였으며 76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시작된 고된 옥중 생활에서도 연구하는 학자의 삶을 이어 나갔다. 한글 풀어쓰기 연구, 건강 관련 기, 요가, 프랑스어 중국어 등 상황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민족과 인류의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시기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깊이 있게 연구했다. 
한국전쟁 당시 유엔극동사령부의 군속으로 판문점에서 휴전 회담을 통역하였으며, 한글학교 교장 시절에는 직접 만든 교재로 미군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일제강점기와 분단의 과정 속에서 우리 글의 중요성을 절감한 문익환의 한글사랑은 지극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 일본신학교 재학 중에도 최현배 선생 말본으로 우리말과 글을 공부했다. 한신대학교 교수 시절에는 신학뿐만 아니라 국어도 가르쳤다. 그는 신구교 합동 구약성서를 아름다운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을 하였으며, 마침내 시인이 되기도 했다.
1989년 평양에서 김일성주석을 만났을 때, 남북의 언어가 달라지는 것을 염려하여 ‘남북 공동 국어사전’ 제작을 제안하고 합의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1950년대 초, 일본에 있을때 한글학교 교장으로 한글을 가르쳤던 조선어학학교 표시판 앞의 문익환.

<글: 오남경>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여행과 사색을 위한 숲길 산책을 무척 좋아합니다.



[참고 문헌]
문익환(1999). 『문익환 전집 9권』 옥중서신 3. 사계절

 
한글 풀어쓰기

문익환

아버지
오늘은 삼월 초하룬데
아들은 연금이라고
집에 홀로 앉아
한글 풀어쓰기를 익히고 있읍니다
*외솔 선생님이 함흥 감옥에서
골똘히 구상하고 다듬던 걸 생각하매
우리 말 아름다운 말
눈물겨웁게 고마운 말
눈부시게 가슴 울리는 우리 말로
총각 처녀 사랑의 편지를 그누구나
물 흐르듯 곱게 뜨겁게 쓸 수 있으라고
창안된 우리 글
아뿔사 네모꼴 한문글자 틀에 갇혀 버렸네요
이건 숫제 감옥이얘요
감옥에 갇힌 우리 말 풀어 놓아야 해요
살려 내야 해요 살려 내어
흐르게 해야 해요 흐르며
꿈틀꿈틀 용솟음치게 해야 해요
당신의 크고 깊은 마음
이 아들의 콧 속으로
숨소리도 고르게 빨려 들다가
핏줄을 타고 온 몸으로 흐르듯
흘러 이 아들의 체온이 되듯
뜨거운 피 통하는 붉은 마음이 되듯
우리의 고운 말
사슬에서 풀어 내야 해요
<아 름 다 운>
이거 안 됩니다
네 소리가 담장 쌓고 앵토라져
서로 눈을 흘기며 따로따로가 아닙니까
이건 자주도 독립도 아닙니다
이건 분렬입니다
사분오열입니다
<ㅏㄹㅡㅁㄷㅏㅜㄴ>
이렇게 하나가 되어야 해요
아버지
전 오늘 하루 종일
풀어쓰기를 익혔읍니다
이건 그냥 화풀이가 아닙니다
생각하면 화가 안 나는 건 아니지만
오늘 일천이백 명이 감옥에서 풀려 나왔는데
그 가운데 양심수는 하나도 없읍니다
담장을 헐어 버리고 모두들 이웃사촌이 돼야 해요
그래야 아름답지요
잠결에 들려 오는 우리 손주놈 어지나의 노래는
마디마디 끊기지 않아서 좋아요
아름다와요 그 아름다움
넷으로 찢어 발개선 안 돼요
찢어 발기면 노래가 죽어요
죽은 노래
흐르듯 펄덕펄덕 살려 내야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