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9월<학자 문익환>

[사료의 발견] 찾았다! 발신자

“콘텐츠 작성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 


1차 사료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아마도 사료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표제지에 핵심적인 정보가 담겨있고 내용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맞춰 정리되어 간행되는 책과 다르게 활동의 부산물 성격을 갖는 기록은 후대의 독자들에게 친절하기 쉽지 않다. 이는 비교적 근래에 가까운 70-80년대에 생산된 기록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제목, 생산자, 생산일조차 없는 것들도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콘텐츠 플러스’의 단톡방에서는 남겨진 사료를 이해하기 위해 갖가지 노력이 이어지는데 내용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에 관한 궁금증, 단서가 될 만한 정보들 또, 관련 사료찾기와 연결에 이르기까지 이야기꽃이 쉬지 않고 핀다. 한 편의 콘텐츠를 작성하는 과정은 마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료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애쓰는 여정과도 같다.
 

◇ 문익환 목사가 안동교도소에서 받은 발신자 미상의 편지
 

발신자는 삼양동 거주민 추정 

▲발신자 미상 편지에 실린 면회의 순간
7월호 [사료의 발견] 에 실렸던 “발신자 미상 편지: 박용길 장로님과는 포옹 안 하실 겁니까”는 편지의 발신자가 지인들과 함께 안동교도소로 늦봄의 면회를 다녀온 일화가 담겨 있었다. 늘상 들어왔던 늦봄과 봄길의 ‘러브스토리’가 친근하게 다가왔던 이 편지는 7월호에서 소개될 당시 안동교도소가 1991년 6월부터 1993년 3월 사이에 머물렀던 공간인 점에 미루어 작성시기를 대략적으로만 추정할 수 있었고, 편지 내용으로 보아 삼양동에 거주하던 이였을 거라는 정도만 짐작할 수 있었다.

 

단톡방 공유하자 ‘이철용 의원 추정’ 답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가는 과정
참으로 실감 났던 ‘발신자 미상 편지 속의 면회기’는 늦봄과 봄길의 “교도소 러브스토리” 부분에 이르러서는 마치 어디선가 본 듯, 들은 듯 해서 더욱 정체가 궁금한 마음이었다. 만약 간행물에 실렸던 것이라면 늦봄 관련 글들을 ‘수험생처럼 공부하고 있는’ 콘텐츠 플러스팀의 누군가는 읽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 이 내용을 단톡방에 공유했다. 그러자 3분 만에 답글이 달리고 여러 의견들이 등장했다. 
중론은 “이철용”이라는 인물이 아닐까 라는 짐작이었고, 그 이유는 편지 안에 등장하는 “삼양동 산동네 엉성한 들창문을 슬쩍 슬쩍 치근덕거립니다”라는 문장 때문이었다. 듣고보니 발신자로 추정되는 그 인물은 삼양동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로 유명한 작가로 늦봄이 쓴 옥중편지에도 여러 번 등장해 온라인 아카이브를 런칭할 당시 만든 아카이브 사전에도 등록되어 있으니 가능성은 충분했다.
 


곧이어 결혼 46주년을 맞아 쓴 늦봄 편지(문익환 1990. 6. 18일)가 단톡방에 공유되었다. “이철용 의원 덕에 당신을 안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라는 서술이 보이는데 발신자 미상 편지에 나오는 러브스토리의 정황과 매우 유사하였다. 
그러나, 두 개의 편지를 연결시키고 발신자로 특정하기에는 걸리는 게 있었다. 편지에는 분명 “단풍의 아름다움을 시샘하는 단풍샘바람이 잠안오는 이 밤에”라는 구절이 등장하는데 단풍샘바람 이라면 계절은 가을이어야 할텐데 초여름에 가까운 유월에 쓴 편지이니 말이다. 또 발신자 미상 편지에 “안동 교도소를 지루하지 않게 갔다”는 구절이 있는데 1990년 6월이라면 다섯번째 감옥행으로 전주 교도소에 계셨을 때이니 결정적으로 그럴 수 없었다.
 
당신께
쉰까지만 살았으면 한이 없겠다던 사람이 어느새 결혼 50년을 4년 후로 바라보도록 살았으니, 모든 게 당신 덕분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결혼 46년을 아차 잊고 넘었는데 이철용 의원 덕에 당신을 안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방에 돌아와서야 그 생각이 났군요(문익환 1990. 6. 18).
 
문익환 목사님께
이게 도대체 뭔놈의 경우입니까?
기가 막혀 잠도 안오는군요
아무리 생각을 곱씹어도 웃기는 개판은 역시 개판일 수 밖에 없구나 싶군요
꽃샘 추위가 꽃의 아름다움을 시샘하듯이
단풍의 아름다움을 시샘하는 단풍샘바람이 잠안오는 이 밤에
삼양동 산동네 엉성한 들창문을 슬쩍슬쩍 치근덕거립니다(발신자, 발신일 미상 편지).


이런 의견들이 오가는 중에 또 다른 늦봄 편지(문익환 1991. 10. 15)가 단톡방에 공유되었다. 쓴 날짜가 시월이니 계절이 일치하고 면회실에서의 정황, 등장하는 인물, 한방에 관한 언급 등도 발신자 미상 편지와 매우 유사했다. 이철용이라는 인물이 발신자가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추정이 힘을 얻는 순간이었다. 
 
어제는 정말 뜻밖에 반가운 이들을 만나서 정말 즐거웠군요. 이해찬 의원은 나의 안동 선배여서 이철용 의원은 부인까지 대동하고 왔었고. 오 목사님은 신학교 동기로서 아마 나를 가장 생각해주는 친구 목사겠지요. 만주 신학교 때부터 친구니까요. 버드나무 때는 봄님은 언제 보아도 배 맛처럼 시원해서 좋구요(문익환 1991. 10. 15).

만나자 마자 포옹하는데, 유시춘작가와도 포옹, 이해찬의원과도 포옹, 동창생 목사님하고도 포옹 저하고도 포옹, 연속 껴안고 껴안고 돌아가면서 껴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박용길장로님하고는 포옹을 하시지 않았지요. 제가 ‘진짜 포옹할 분은 안하십니까?’ 하고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맞아’하면서 꽉 껴안으셨지요.(발신자, 발신일 미상 편지)
 

박용길 면회일지 발견 ‘완벽한 결말’ 

▲찾았다! 발신자
그로부터 일주일쯤 뒤, 또 하나의 사료가 발견되어 단톡방에 공유되었다. 미정리 사료 속에 들어있던 박용길 장로가 쓴 면회일지 속에 1991년 가을, 안동교도소를 다녀온 일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박용길, 1990-1991. 면회일지). 그녀가 쓴 10월 14일의 면회 날, 일행은 음성-충주-문경세재-예천을 거쳐 안동을 다녀왔다. 방점을 달리 찍었을 뿐 앞선 발신자 미상 편지의 주인공이 말했던 치악산과 소백산을 넘어온 경로와 유사했다. 한장짜리 편지의 남은 뒷 부분은 여전히 찾을수 없고.. 여러 기록을 통해 추정해 본 것이라 더 신뢰할만한 정보원을 찾기 전까진 아마도 "물음표?" 꼬리를 떼긴 어렵겠지만... 찾았다! 발신자
 
“문익환 목사님을 만날 수 있다는 기쁨으로 원주 치악산 단양을 지나 소백산을 넘어 안동교도소를 지루하지 않게 갔습니다. 시간상으로야 7시간 정도 걸렸으니 지루한 시간임에는 틀림없지만 좌우지간 목사님 뵈올 수 있다는 기쁨으로 넉넉하게 간겁니다.(발신자, 발신일 미상 편지)” 
 
◇1991년 10월 14일 박용길 장로가 쓴 면회일지
 

‘사료를 발견하는 기쁨’, 콘텐츠플러스의 존재이유 

▲미궁에 빠져도 삼천포로 빠져도 괜찮아, 아카이브가 있으니까
일 년짜리 파일럿 프로젝트로 기획된 『월간 문익환』이 어느덧 목표의 반 지점을 지났다. 그간 매주 화요일마다 짧지만 알찬 회의를 하고 단톡방을 통해 이렇게 소소한 기사 작성의 즐거움과 고민을 나누며 지금까지 왔다. 시간은 빠르게도 가고 마감을 앞둔 시간, 각자 자신의 원고에 쪼들리고 미궁으로 빠지면서도 이렇게 모두 자발적으로 삼천포행을 선택하는 이유는 아마도 단톡방에 올라온 하나의 사료가 말해 줄 이야기가 궁금해서일 거다.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료들을 함께 읽고 나누면서 사료를 발견하는 기쁨이야말로 콘텐츠 플러스가 지속되는 견고한 힘이 아닐까.


<글: 아키비스트 지노>
늦봄 문익환 아카이브의 삼 년 묵은 아키비스트로 늦봄과 봄길의 기록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하는 아카이브하는 사람이다.




 
콘텐츠 플러스? :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출판물과 영상물을 제작하는 콘텐츠 생산집단
콘텐츠플러스 편집위원: 홍성보, 조만석, 백문기, 오남경, 오명진, 박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