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치물 차입원표
보존 중인 영치물 차입원표를 통해 누구를 통해 어떤 영치물들이 전해졌는지를 알 수 있다.
첫 번째 구속 수감중인 1976년 여름, 박용길 장로가 서울구치소로 들여보낸 것은 수박, 복숭아 등의 여름 과일과 떡, 마늘, 계란 등이었다.
양말과 속옷가지도 단골 품목이다.
문익환 목사는 편지에서 종종 필요한 책이나 음식, 물건들을 요청하였다.
그리운 당신에게
... 이제 지면도 다 돼 가는 것 같아 내게 필요한 걸 적죠. 제일 필요한 건 당신. 꿈자리는 비어 있으니까 언제나 오시오. 옷가지는 반바지 운동복과 옷을 넣어 걸어 둘 주머니 하나, 그뿐이오. 모두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만세.
1977. 4. 16.
당신에게
(단식 후)빨리빨리 회복되어 다른 재소자들과 같은 음식을 먹게 되어야 당신 수고도 덜겠지만, 여기 보안과장을 위시한 여러분께 수고와 염려를 끼치지 말아야겠는데, 그렇다고 서두를 수도 없고.밥을 먹게 되는 초기에 여기 국이나 찬이 너무 짜고 매워서 먹을 수 없을 테니까, 굴비나, 소고기 육포 같은 것을 들여 보내주면 많은 수고를 피차 덜 것 같군요. 보안과장에게 부탁해 보시오.
1977. 6. 10. 당신의 사랑
▲도서 열독허가증
◇책 내지에 붙어있던 도서 열독허가증 모음. 첫 번째 수감 중일 때 전주교도소에서 읽었던 책들이다.
◇공동번역 성서와 찬송가는 수감 때마다 갖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장의 열독허가증이 붙어있다.
▲가석방증
◇네 번째 수감(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선동죄)에 대한 가석방증(1987. 7. 8~1989. 6. 4)
▲방청권
◇문익환 3남(문성근)의 방청권(1980.8.14.10시), 육군본부 계엄 보통군법회의
▲결정문
◇서울형사지방법원 제 7부 결정문(1976.8.28.). 문익환 목사의 보석청구를 허가하지 아니한다는 내용
▲윤반웅 목사의 영치금 반송 행정우편
◇ 윤반웅 목사가 늦봄에게 보낸 영치금을 반송한다는 내용의 공주교도소발 행정우편
윤반웅 목사는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사건의 동지로 구속자 중 최고령이었다(당시 67세). 늦봄이 내란음모 조작사건으로 세 번째 수감 중일때 윤반웅 목사가 공주교도소로 영치금을 보냈는데 반송된 일이 있었다.
문익환 목사
하느님의 은혜중 몸 건강을 기도합니다. 일급 일만원을 우편 송금합니다.
1981년 12월 28일
윤반웅
이어서 반송 사유가 적힌 공주교도소의 행정우편 내용이다.
윤반웅 귀하
귀하께서 당소에 수용중인 20번 문익환 수형자에게 소액환 등기로 우송한 일금 10,000원에 대하여는 현재 본인의 가족으로부터 차입한 금액만으로도 충분히 사용할수 있어 규정에 의하여 반송하오니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공주교도소장
훗날 문익환 목사는 감옥에서 윤반웅 목사를 그리워하며 편지를 썼다.
윤반웅 목사님, 이두수 목사님, 유운필 목사님, 전학석 목사님!
… 양심이 상씨름꾼의 힘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시는 윤반웅 목사님, 보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눈을 지그시 감고 목사님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 보았습니다. 양심은 몸의 힘까지 겸비해야 한다는 걸 가르쳐 주신 분이 김구 선생님 아닙니까? 김구 선생님은 가까이 모시지 못했지만, 몸의 힘까지 겸비한 양심으로 윤 목사님을 가까이 모실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뒤를 쫓아가는 한 목사 문익환 드림
(문익환 옥중편지, 1989. 6. 28)
월간 문익환_8월 <옥중의 늦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