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과 ‘이 사람’] 시 속의 등장인물로 살펴본 인물 현대사
‘당신의 천국은 미친 불길이었습니다’
◇박종만 열사의 장례식에 참석한 문익환 목사가 예배를 집전하고 있다
당신의 몸은 지옥이었지만
당신의 마음은 천국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천국은 뼛속으로 파고드는
불길이었습니다
당신의 푸른 넋 휘감아 올려
음습한 뒤안길 밝히는
미친 불길이었습니다
타고 난 숯검뎅이 쑤시는 아픔이었습니다
늦봄은 87년 12월 5일 새벽에 ‘박종만 열사 3주기에’라는 부제가 달린 시 <당신의 천국은 미친 불길이었습니다>를 썼다. 열사를 추모한 시임을 바로 알 수 있겠으나 ‘당신의 천국이 미친 불길’이라는 제목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천국이라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안락한 곳이라 생각되건만 그 천국이 왜 미친 불길일까?
늦봄은 박 열사의 3주기 시점에 그를 추모하며 이 시를 썼다. 3년 전 84년 11월 30일 그가 분신 후 숨졌을 때 늦봄은 추도위원회의 고문을 맡았었고, 87년에는 박종만 기념사업회의 고문으로 있었다.
“내 한목숨 희생되더라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열사 정보’를 통해 살펴보면, 박종만은 82년 10월 택시회사에 입사하여 83년 3년 노조 복지부장으로 일하였다. 84년 11월 회사가 부당한 이유로 노조 사무장을 해고하자 철회를 요구하며 동지 3인과 함께 단식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11월 30일 해고철회를 위해 회사를 찾아갔지만, 회사는 오히려 “농성 3인을 해고하겠다”라고 위협했다. 이에 박종만은 “노동조합 탄압 말라… 사무장을 복직시켜라, 부당한 대우를 개선하라.”라고 외치며 분신하였다. 이날 그가 ‘내 한목숨 희생되더라도 기사들이 더 이상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겠다’고 글을 쓰는 등 우려스러운 행동을 보이자 동료들이 ‘딴생각 말라’고도 했지만, 11시쯤 동료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회사로 들어간 그는 석유를 뒤집어쓰고 불덩이가 된 채로 뛰어나왔다.
“노동조합 탄압 말라!··· 아이구 뜨거워··· 부당하게 해고된··· 기사들을··· 복직시켜라!··· 부당한 대우를 개선하라, 아이구 뜨거워···” 신음을 내면서도 그는 중간중간에 요구조건을 외쳤다. 동료들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지면서도 그는 요구조건을 외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날 밤 8시 50분 그는 “내가 이렇게 떠나면 안 되는데···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운명하였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열사 정보’)
“당신이 없는 세상인데…뭘하자는 불길인가요”
박종만 열사는 아내와 두 아들을 남겨둔 채 36살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쳤다. 늦봄의 시 속에서 박 열사의 아내는 울부짖는다. 그 미친 불길로 ‘어두움 뚫고 새 길’을 연다고 해도 ‘당신의 웃음 보이지 않는 세상인데’ 무슨 소용이냐며 절규한다.
그래 거꾸로 치솟는 미친 불길
아무리 뜨겁단들
아무리 이 언 땅 화끈히 녹인단들
뭘 하자는 건가요
당신이 없는 세상인데
뭘 하자는 불길인가요
그러나 아내는 곧 열사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시의 전반부에서 늦봄은, 열사의 몸은 불타는 지옥이지만 그의 마음은 천국이고, 그 천국은 미친 불길이면서 또한 ‘타고 남은 숯검뎅이 쑤시는 아픔’이라고 했다. 쑤셔대는 아픔과 천국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인지, 아내는 ‘그 아픔이 천국 마음이면 지옥 불길에 어서 뛰어들라’고 말해 준다.
박 열사는 자신에게 배정된 새 차를 동료에게 먼저 넘겨주는 등 자기를 희생하고 동료의 권익을 앞세우는 사람이었다. 바른말을 잘하며 지도력이 뛰어난 ‘대장’이었던 그는 소유주 일가의 전근대적인 회사 운영, 취업카드제를 이용한 회사의 횡포 등 부당한 탄압에 맞섰고, 부당한 해고 조치에 저항하여 분신했다.
노동자 박종만의 분신은 마치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연상하게 했다. 분신 소식을 듣고 청계노조와 재야단체 간부, 민주노조 노동자들이 달려왔다. 이소선 여사, 문익환 목사와 어머니 김신묵 권사까지 빈소를 지키며 혹시 모를 회사 측과 경찰의 시신 탈취에 대비했다. 그러나 경찰의 강제 해산으로 아수라장이 벌어진 끝에 민주인사와 노동자들은 닭장차에 연행되고 그 속에서 최루탄 공격을 받는 등 60여 명이 연행되었다.
늘 열사들의 곁에 있었던 늦봄
택시 운전 노동을 ‘도시의 막장’이라 말하기도 한다. 제조업체 중 가장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보기 때문이다. 박 열사 분신 이후 ‘20년 동안 모두 27명이 분신으로 목숨을 잃었다.’(한겨레신문. 2012.1.4) 불과 3~4년 전에도 플랫폼 택시 논란 속에 분신 사건이 발생하는 등 택시 노동자들의 생존권은 여전히 불안정한 실정에 처해 있다.
1980년대 군부독재 시기, 민주화를 열망하는 노동 열사, 학생 열사들의 분신과 투신 등 자기희생은 끊이지 않았다. 늦봄은 그들의 장례식에 직접 참석하거나 시를 지어 추모하고, 또 남은 유가족들에게 편지를 써서 찢어지는 슬픔을 함께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으로, 늘 열사들의 곁에 있었다.
한편 박종만 열사는 2022년 6월 10일 6.10민주항쟁 35주년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글: 조만석>
언제든, 누구와 함께든, 사람과 역사를 볼 수 있는 곳 어디든, 걷기를 즐겨 합니다.
[참고문헌]
문익환 (1999). 『문익환 전집 2권』시집2. 사계절출판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열사 정보 https://www.kdemo.or.kr/
오픈아카이브 https://archives.kdemo.or.kr/isad/view/00528582
당신의 천국은 미친 불길이었습니다
-박종만 열사 3주기에
문익환
당신의 몸은 지옥이었지만
당신의 마음은 천국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천국은 뼛속으로 파고드는
불길이었습니다
당신의 푸른 넋 휘감아 올려
음습한 뒤안길 밝히는
미친 불길이었습니다
타고 난 숯검뎅이 쑤시는 아픔이었습니다
여보 아픔은 사랑이라는데 당신은
누굴 그렇게 사랑한 거예요
얼마나 미치게 사랑했으면 이렇게
숯검뎅이가 되었나요
미워요 미워요
당신 정말 미워요
날 두고 누구를 그렇게 사랑했나요
누굴 그렇게도 미치게 했나요
사랑이라는 말 그렇게 함부로 입에 올리는 게 아니라오
사람들이 입에 올리는 사랑이란
모두 거짓말이요
모두 사기라구 사기
내 천국에는 그런 거 없소
사랑은 오직 타오르는 불길이라오
미친 불길이라오
그래 거꾸로 치솟는 미친 불길
아무리 뜨겁단들
아무리 이 언 땅 화끈히 녹인단들
뭘 하자는 건가요
당신이 없는 세상인데
뭘 하자는 불길인가요
어두움 뚫고 새 길 연단들
당신의 웃음 보이지 않는 세상인데
바작바작 타들어 가는 목 긁으며
토해 내는 신음 소리만이
이 가슴 할퀴는데
그 아픔이면 됐어요
그 아픔이 천국 마음이니까
그 마음이면 어서 뛰어들어요
이 지옥에
거꾸로 치솟는 이 지옥 불길에
(1987년 12월 5일 새벽에) |
월간 문익환_7월 <늦봄과 민주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