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6월 <늦봄과 6.25>

🈷️ 늦봄 편지로 엿본 전쟁 때 달러의 가치

"50불 보내요…20만원은 될테니 김장 준비하오"

 
사랑하는 아내에게!
(전략)"며칠전에 서울에서 온 소식을 보면 쌀 한 말에 3,700원이라고 하니, 좀 살기 나아졌나 보우. 나무 한 truck에 80,000원이라니 참인지? 그렇게 눅을 수 없을 것 같은데. 김장철이 지났을 텐데 김장은 어찌들 되었오. 학의 목을 뽑아 소식을 기대리다가 제 일차는 내일쯤 먼저 50불만 보내려요. 50불이면 20만원은 될테니. 나무. 김장을 좀 준비할 수 있을 가하오.”
1951. 가을
 
◇전쟁 중 문익환이 박용길에 보낸편지(1951. 가을) 
 

50달러는 당시 대략 20만원

1951년 문익환이 유엔 극동사령부에서 통역관으로 있을 때,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전쟁 당시의 미국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짐작되는 내용이 있다.
 

 “내일쯤 먼저 50불만 보내려요. 50불이면 20만 원은 될 테니. 나무. 김장을 좀 준비할 수 있을 가하오.”


당시 계산으로 환산하면 1달러가 대략 4,000원 정도. 오늘날 환율과 비교하면 약 3.3배 높다. 
살펴보니 1950년부터 1953년까지 3년 동안의 6.25 전쟁기에는 외국환 경매제가 폐지되고 공정환율제가 채택되었으나 민간에서 거래되는 시장 환율은 공정환율보다 2~3배 높았다고 한다.
전쟁으로 인해 종전 달러당 대략 900원 정도였던 환율이 1950년 11월 2,500원 정도, 1951년에는 6,000원까지 치솟았다.
 

한국의 1950년대 외환 제도는 정부 규제와 複數(복수) 환율을 특징으로 한다. 정부에 의해 낮은 수준으로 억제된 공정환율은 대충자금 적립이나 유엔군에 대한 韓貨賣却(원화매각)과 같이 주로 한미 정부 간 거래에 적용되었다. 이에 비해 민간 내부의 거래에서 형성되는 시장환율은 대체로 공정환율보다 2~4배 높았다.(김낙년 2002)



<글: 오남경>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여행과 사색을 위한 숲길 산책을 무척 좋아합니다.



[참고문헌]
김낙년 (2002). 「1950년대의 외환배정과 경제적 지대」. 『경제사학』. 경제사학회.
문익환 편지(1951년 가을).

월간 문익환_6월 <늦봄과 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