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6월 <늦봄과 6.25>

[시 속의 인물] 4.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

[늦봄과 '이 사람'] 시 속의 등장인물로 살펴 본 인물 현대사

‘온몸 바늘로 찔러대는 쓰림과 싸우며 버텨 낸 신념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비전향 장기수의 삶을 그린 책 『0.75평 지상에서 가장 작은 내방 하나』에 수록된 김선명의 사진

1993년 12월 늦봄은 <43년-김선명 할아버지께 바치는 시>를 썼다. 김선명 선생은 43년째 복역 중인 비전향 장기수였다. 앞서 이인모 씨가 34년의 복역을 끝내고 1988년에 석방되었지만, 그 이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가 국내 수감 중인 많은 비전향 장기수들의 존재 사실을 파헤쳐 김선명도 알려지게 되었다. 늦봄은 1990년부터 1993년까지 쓴 옥중편지에서 비전향 장기수들에 대해 많이 언급하였는데, 이인모 씨에게 편지를 쓰고 아내에게 정서 후 전달을 부탁하기도 했다.

 

“기다리는 아내도 아들딸도 있을 리 없는 총각 할아버지”

늦봄은 <43년>에서 김선명을 ‘김선명 총각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한 번도 여자를 안아본 일 없는, 그러니 기다리는 아내도 아들딸도 있을 리 없는’ 그는 일제 치하에서 보통학교 일본인 교장의 혹독한 행태가 싫어 고향 양평을 떠나 서울로 가서 노동자가 되었다. 해방 후에는 영등포 지역에서 좌익운동을 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북한 의용군으로 자원입대하였고 51년 10월 15일 38선을 넘어 남으로 내려오던 중 철원에서 유엔군에 체포되었다. 군사재판에서 그는 부역죄와 간첩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만 43년 10개월을 복역한 후 1995년 8월 15일 특사로 풀려났다. 민가협을 비롯한 국내외 인권 단체들의 끈질긴 석방 노력 덕분이었다. 1993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서 그의 초장기 구금 사실이 보고되면서 국제적으로도 알려졌고 세계 최장기 복역수로 기네스 기록에 올려졌다.

 

“바늘로 찌르고 죽이고…힘들었어요”

93년 12월에 쓴 <43년>에서 늦봄은 ‘온몸 바늘로 찔러대는 쓰림과 싸우며 버텨 낸 신념은 도대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김선명은 95년 8월 출소 후 언론 앞에 선 자리에서 ‘바늘로 찌르고 죽이고…힘들었어요’라며 복받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흐느끼고 있다(2003년 영화 ‘송환’).

 

이념을 지키려 한 것이 아니라 부당함과 폭력에 저항한 것

김선명은 언론 인터뷰에서 ‘일제하에서 조국을 찾기 위해 투쟁하던 선열들이 물고문 전기고문을 당하던 것을 떠올리며 옳다고 생각한 것은 끝까지 지키고’ 싶었고 ‘마르크스 레닌주의 같은 이념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며 북한도 내 조국이고 여기도 내 조국’이라며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그는 이념을 지키려고 저항한 것이 아니라며 하나에 둘을 더하면 셋이 아니라 다섯이라고 말하기를 강요하는 부당함과 폭력에 저항한 것이었다고 했다.

비전향 장기수들에게 남북화해 무드는 희망이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시련이었다. 72년 7.4남북공동성명 이후 남한 정부는 향후 비전향 장기수 문제가 제기될 것을 우려하여 대책반을 만들어 사상전향을 강요했고 이 과정에서 무자비한 폭력과 고문으로 죽음과 자살이 발생하기도 했다. 김선명도 구타와 바늘 찌르기로 고통을 겪었고, 전향을 강요받다 폭력으로 옥사한 장기수를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비전향 장기수 문제는 아직도 진행형

김선명이 의용군으로 입대하자 부친과 형제들은 보복으로 살해되고 가족은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그 자신은 호적에 사망으로 처리되었다. 43년의 수감 중 가족들은 그를 면회하지 않았고, 95년 석방 이후에도 어머니를 한번 만난 것 외에는 북한으로 송환되기까지 5년여 기간을 장기수들과 함께 지냈다. 

비전향 장기수들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 99년 2월 17명이 석방된 데 이어 12월 말에야 전원이 석방되었다. 2000년 6.15선언에서 이산가족 문제와 비전향 장기수 문제 등 인도적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로 합의함에 따라 8.15 이산가족 만남 행사가 이루어졌고 9월 2일에는 김선명을 포함한 63명의 비전향 장기수가 북한으로 송환되었다. 이로써 남북 간에 장기수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김선명은 체포 후 50년 만에 북한으로 돌아가 결혼하여 살다 2011년 사망했다.

그러나 비전향 장기수 문제는 아직 진행형이다. 강압을 견디다 못해 전향서를 쓰고 석방되어 2000년에 송환 대상자가 되지 못했던 장기수들은 전향서의 무효를 주장하며 지속해서 2차 송환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휴전협정 70년을 바라보고 있건만, 미송환 장기수, 이산가족 상봉, 국군포로송환 등 한국전쟁으로 인한 여러 가지 상처와 고통이 겨레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글: 조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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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문익환 (1999) 『문익환 전집 2권』시집2. 사계절출판사
문익환 옥중편지 (1991.12.17, 1991.12.19, 1993.2.16)
한겨레신문 (1995.8.31.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씨 인터뷰)
영화 <송환> (2003년 푸른영상 제작)


 
43
-김선명 할아버지께 바치는 시

문익환

얼마나 긴 세월이었습니까
김선명 총각 할아버지
43년이나 당신을 가두어 둔 조국
얼마나 부끄러운 역사입니까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1초 2초 3초 4초 5초 6초

누웠다 앉았다 일어서서 거닐다
또 누웠다 또 앉았다 또 일어서서 거닐다

0.75평 방을 왔다갔다하는 외로움
43년은 얼마나 긴 기다림이었습니까

예순아홉 살이시라지요
한 번도 여자를 안아 본 일 없는
그러니 기다리는 아내도 아들딸도 있을 리 없는
김선명 총각 할아버지
끝도 안 보이는 당신의 그 기다림은 무엇이었습니까

43년은 얼마나 긴 싸움이었습니까
몽둥이 찜질이야 기절해 버리면 그만일 테지만
온몸 바늘로 찔러 대는 쓰림과 싸우며
버텨 낸 신념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별빛 한 점 스며들지 않는
지금은 동굴 속 절망인가요
당신의 신념은

그 끝없는 동굴 폭발되기라도 바라
고집스레 뛰는 당신의 맥박인가요

그렇군요
당신의 기다림 당신의 싸움 당신의 신념은
그 깜깜한 절망 속에서도 멎기를 거부하는
당신의 염통이군요

철창 너머
조국의 푸른 하늘 쳐다보는
당신의 눈 백내장으로 흐려 와도
멈추지 않고 뛰는 당신의 염통
우리의 울분이군요 겨레의 힘이군요
백두와 한라를 잇는 역사의 험산준령
쿵쿵 울리는 해방의 예감이군요
억울하게 억울하게 분단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가슴 울먹이게 하는 겨레의 꿈이군요
민족자주의 힘찬 기운으로 나부끼는
승리의 깃발이군요

이 겨레의 감옥 그 높은 담장 허물고
김선명 총각 할아버지여
활개치며 성큼성큼 걸어 나오십시오
모든 절망 마지막 한 오라기까지 살라 먹고
솟아오르는 태양 그 황금빛 웃음 웃으며

이 땅의 아리따운 봄 향내
당신의 애기를 낳으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1993. 12. 12.)

월간 문익환_6월 <늦봄과 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