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6월 <늦봄과 6.25>

[이달의 기억, 기록] 1944년 6월 17일 서울 안동교회에서 박용길과 백년가약

[6월의 문익환]


▲1918년(1세)
북간도 명동에서 문재린과 김신묵의 아들로 태어남. 양력 6월 1일

▲1940년(23세)
박용길, 일본 요코하마 여자신학교 졸업(6월 26일), 도쿄 시나가와 교회 전도사가 됨 (이때 늦봄도 시나가와 교회에서 봉사활동 중이었음)

▲1944년(27세)
박용길과 서울 안동교회에서 백년가약(6월 17일). 3일 후 용정에 도착, 결혼 축하연을 가진 뒤 만보산 교회로 가서 전도 활동

▲1947년(30세)
한신대학교(조선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 받음. 가족은 김천에 거주
 
◇ 문익환 목사의 조선신학교(한신대 전신) 졸업증서(1947.6.17.) 


▲1950년(33세)
6·25전쟁 발발. 프린스턴에서 유학 중이던 늦봄은 귀국 방도를 찾지 못하자 유엔군에 자원해서 유엔극동사령부(도쿄 GHQ)에 근무, 정전회담 통역 및 미군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학교 교장으로 재직

▲1956년(39세)
프린스턴신학교 졸업으로 석사학위 발급 (6월 5일 자)

▲1973년(56세)
6월 1일 늦봄의 생일을 기해 첫 시집 <새삼스런 하루> 출간. 여기서 늦봄이라는 호를 처음 사용함
 


▲1983년(66세)
5월 31일 시작했던 단식을 6월 18일에 풀면서 ‘제2긴급민주선언’(전두환에게 폭력정치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

▲1988년(71세)
민통련(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의장으로 재추대됨. 6월 10일 대학생들이 남북학생예비회담장인 판문점으로 가려다 곤봉과 최루탄으로 깨지는 걸 보면서 평양행을 결심(이듬해 3월 평양 방문 결행)

▲1991년(74세)
6월 6일 재수감. 이른바 ‘분신 정국’에서 강경대 열사를 비롯한 많은 열사의 장례위원장을 맡는 등의 활동으로 형 집행 정지가 취소되어 여섯 번째 수감생활 시작

월간 문익환_6월 <늦봄과 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