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과 이 사람] 시 속의 등장인물로 살펴본 인물 현대사.
8번이나 불러 본 ‘형님…형님…문석이 형님’
문석이 형님. 그를 아는 사람은 늦봄 부부와 늦봄의 부모, 이렇게 네 명뿐일 겁니다. 그는 늦봄의 이종사촌형입니다(둘째 큰이모의 네 아들 중 둘째). 박씨 성을 가진 문석이 형님은 남한에서 늦봄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지만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북한 회령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보고 싶어 견디지 못하여 1986년 가을 즈음에 늦봄은 시 <문석이 형님>을 쓴 것 같습니다.
늦봄보다 3살 많은 문석이 형님을, 늦봄은 북간도 명동촌 마을과 학교에서 언제나 형이라 부르며 따르고 놀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동생과도 사이좋게 지냈던 장남 늦봄이 친형처럼 기대어도 좋을 만큼 착하고 다정한 형이었기에 그랬을 것입니다.
◇박정애 여사(문익환 조모) 장례식 당시 산소에 모인 친지들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1946년 헤어져…40년만에 사진으로 대면
늦봄은 1946년 봄 문석이 형님과 헤어졌습니다. 문석이 형님은 북한 회령으로 이주하여 거기서 40여년을 살다 1987~89년쯤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은 늦봄이 봄길에게 쓴 옥중편지 중 일부입니다.
오늘 새벽 꿈에 문석이 형님 생각에 얼마나 울었는지. …. 목을 놓아 울다가 깨니 꿈이었어요. (중략) 통일된 다음 제일 보고 싶었던 문석이 형님을 이미 지상에서는 만날 길이 없다는 게 그렇게 슬펐군요 (문익환 1989)
시 <문석이 형님>에서 늦봄은 ‘형님 형님 문석이 형님’을 8번이나 불렀습니다. 시의 내용에 의하면, 헤어진 지 40년만에 조카와 함께 찍은 문석이 형님의 사진을 받아보았습니다.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은 채 찍은 사진 속 얼굴은 그 넉넉했던 웃음이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고생이야 많았겠지만 용케 살아있으니 다행이라며 늦봄이 위안의 말을 합니다. 그러다가 알아챕니다. 렌즈를 주시하지 못한 문석이 형님은 나(늦봄)를 피하는 시선이 아니라 40년이나 민족을 옥죄어 온 분단과 역사에 분노하고 있었던 것임을.
분노하는 건 자신도 같은 마음이라면서 늦봄은 선구자나 독립군 노래들을 부르다 보면 언젠가 영창이 훤히 밝아오리라고, 역사가 그런 거라고 기대 섞인 말을 합니다. 그리고는 문석이 형님과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늦봄이 ‘통일이란 게 대단한 게 아니다. 형님과 나 주막에서 만나 술자리 한판 벌리고 곤드레 되는 일’이 통일 아니겠느냐고 말하면, 문석이 형님은 ‘그게 민족해방이지. 뼈마디 녹아내리는 일 아니겠니. 모든 걸 끌어안고 울음으로 터지는 일 아니겠니’라고 화답해 봅니다.
늦봄이 ‘곧 만나자구요’라며 세 번이나 약속 아닌 약속을 했지만, 현실에서 두 사람은 결국 만나지 못했습니다. 천국에서는 만났겠지요.
“문석이 형님 모시고 목포에 가서 소주를”
늦봄은 여러 편의 시와 옥중 편지에서 문석이 형을 언급했습니다. 자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부친과 주고받는 대화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자유라는 말을 우리 말로는 뭐라고 할까요”
……
“문석이 형님을 모시고 목포에 가서 소주를 받아놓고
홍어 민어 광어 낙지회를 먹으며
회포를 푸는 일도 정말 눈물겨운 자유겠군요”
― <자유>, 문익환 1999
늦봄에게 자유는 남북 주민이 휴전선에 모여 사흘 밤낮 춤추며 눈물로 땅을 적시는 일이 가장 큰 자유였습니다. 하루 세 끼니 보리밥 앞에 놓고 느끼는 고마움이 아니라 갈라진 가족 친지들이 만나고 남북철도에서 철마가 구르는 것이 진정한 자유였던 것이죠.
아들 의근에게 보낸 옥중 편지에서 늦봄은 부친(문재린)을 휴전선에서 만나 대화한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버지 마음을 만나고 싶어 까치가 되어 휴전선까지 날아가 까악까악 했더니 이를 들은 아버지 마음이 익환을 부릅니다. 눈을 들어 쳐다보니, 아버지의 마음이 찢어진 옷조각 걸리듯이 철조망에 여기저기 걸려 펄럭이는 걸 보게 됩니다.
“전 아버님의 마음, 청진에서 문환이 만나고 회령에서 문석이 형님 만나고 벌써 용정에 가 계실 줄 알았는데요”
“철망을 소리 없이 빠져 원산 가서 네 삼촌 무덤을 찾아 한숨 돌리다가..”
“이 원수의 철조망을 거두어 버리고 싶어 내려오신 거군요”
“그래, 맞다. 그런데 그게 안되는구나. 난 지금 마음 뿐이어서”
“아버지, 북쪽에 가서 사람들을 몰고 내려오세요. 난 남쪽에 가서 사람들을 몰고 올라올게요. 몸으로 숨 쉬는 마음들을.” (문익환 1986. *이 편지 내용은 나중에 시 <찢긴 마음>이 됨)
고향으로 가다 되돌아온 부친의 마음도, ‘형님 형님 문석이 형님을 부르는 늦봄도, 분단의 장벽을 없애지 않고는 아무것도 나아가지 못한다는 생각에서는 똑같았습니다. 부친의 마음과 늦봄의 마음이 합쳐지고 굳세어져 2년여 지난 봄, 늦봄의 몸은 철조망 장벽을 넘어 북으로 남으로 통하는 길을 만드는 선구자가 되신 것 같습니다.
문석이 형님
(전략)
통일이라는 것도 그러고 보면
별로 대단할 게 없군요
형님하고 나하고 오다 가다
북청이나 단천쯤 어느 주막에서 만나
술자리 한판 떡벌어지게 차리고
마시다 마시다 곤드레가 되는 일이군요
그 자리에서 벌어지는 일을 형님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게 해방이지 뭐겠니
그게 40년이나 우리 모두 가슴 쥐어짜며 빌던
민족해방이지 뭐겠니
형님 문석이 형님
북쪽에도 아직 해방이라는 말이 있었군요
남쪽의 해방 북쪽의 해방
남쪽의 떨거지들 북쪽의 떨거지들이
술판을 벌이고 얼싸안고 뒹굴며
눈물로 무너지는 걸 형님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건 뼈 마디마디 녹아 내리는 일 아니겠니
그렇군요
종종걸음으로 가난한 살림 꾸려 가시던
이모님의 발목뼈뿐이겠습니까
침장이 이모부님 손목 손가락뼈뿐이겠습니까
개뼉다구 소뼉다구뿐이겠습니까
소나무 물푸레나무 마른 마디뿐이겠습니까
하늘도 땅도 왕창 녹아 버려
끝없는 바다로 출렁이는 일이겠군요
모든 걸 끌어안고 울음으로 터지는 일 아니겠니
그렇군요
모든 것이 우리의 목소리 우리의 사랑이 되는 일이겠군요
우리의 목소리 우리의 사랑이 되는 일이겠군요
형님 형님 문석이 형님
곧 만나자구요
곧 만나자구요
곧 만나자구요 |
<글: 조만석>
언제든, 누구와 함께든, 사람과 역사를 볼 수 있는 곳 어디든, 걷기를 즐겨 합니다.
[참고문헌]
문익환 (1999). 『문익환 전집 2권』 시집2. 사계절출판사
문익환 옥중편지 (1986. 6. 26)
문익환 옥중편지 (1989. 10. 25)
월간 문익환_5월 <문익환의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