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익환_3월 <시인 문익환>

[시 속의 인물] 1. 독립운동가 최석일

[시 속의 인물] 시 속의 등장인물로 살펴본 인물 현대사
 

“칼에 맞아 떨어진 그의 오른팔, 그 피범벅이 우리의 역사입니다

 

1. 3월의 인물 : 독립운동가 최석일

 

💌[편집자 주] 늦봄의 시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비중의 차이는 있지만 100명 이상의 인물이 언급되고 있다. 제목에 이름이 직접 거론된 경우도 25명이나 된다. (가족이나 외국인 등 제외)
고인의 영전에 바치거나 추모하기 위한 시에서는 함석헌 선생이나 장준하 선생, 이소선 여사 등이 등장하고, 사회 이슈를 배경으로 한 시에는 문규현 신부나 임수경 씨, 윤영규 전교조 위원장 등이 나온다. 민주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많은 학생의 이름도 있고, 독립운동과 4·19혁명,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하여 희생된 분들을 소재로 한 시도 적지 않다.
늦봄 시 속의 인물들은 모두 그들이 살았던 시대 상황과 시대 정신을 상징한다. 그러기에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펴 가다 보면 일제 강점기로부터 90년대 초까지의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시를 읽다 보면 그 시대가 생생하게 와 닿는 걸 느낄 수 있다.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휘두르다가 쪽발이 헌병의 칼에 맞아 떨어진 최석일 씨의 오른팔, 흐느끼며 피를 쏟는 우리의 주장입니다. 백번 죽어도 놓칠 수 없는 피범벅이 우리의 역사입니다’
※<통일꾼의 노래-2> 『문익환 전집 2권, 시집2』
 

3월에 조명해 볼 수 있는 인물은 시 <통일꾼의 노래-2> 속에 있다. 3·1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군에게 두 팔을 잘리며 산화한 독립운동가 최석일이 그 주인공이다. 1996년에 비로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은 그는 평안북도 정주읍, 천도교 정주 교구장이었다. 1919년 3월 31일 태극기를 휘날리며 만세운동을 주도한 최석일은 오른팔이 잘리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다 왼팔마저 잘리며 죽어갔다. 

정주읍의 만세운동은 3월 1일 시위 계획이 누설되어 무산되었지만, 나흘 뒤인 3월 5일 약 500명이 모여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 곧이어 3월8일에도 50명이 시위를 벌였는데, 3월 31일에는 대규모의 시위가 이루어졌다. 천도교인과 기독교인이 연합한 이날 시위에서 최석일은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외국인 선교사 목격자에 의하면 이 날 시위로 현장에서 57명이 즉사했고 총상을 입은 20여 명이 추후 숨졌다고 한다. 시위 이틀 후인 4월 2일 일본 헌병은 정주군 천도교구 건물과 오산학교, 용동교회에 방화를 자행했다. 3월 31일 정주군 시위 참가자에 대한 학살은, 경기도 제암리 학살사건과 함께 3·1운동 과정에서 일어난 가장 야만적인 학살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최석일을 죽음을 그린 시의 제목은 ‘통일꾼의 노래-2’인데 이는 <통일꾼의 노래-1>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다. <통일꾼의 노래-1>에서 늦봄의 부모님은 분단 조국을 안타까워하고 이대로는 눈을 감을 수 없다며 늦봄에 통일꾼이 되라고 하신다. 북간도 용정 거리에서 조선독립 만세 조선통일 만세를 외치다 쓰러지는 것이 소원이라 하시며….

늦봄은 부모님의 소원이 겨레의 소원이고 자신의 소원이라며 반드시 그 소원을 이루겠다고 맹세한다. <통일꾼의 노래-2>에서 늦봄은, 최석일의 잘린 오른팔, 왼팔, 머리가 뒹굴던 정주읍 장터의 독립 만세를 되새기면서, 그날의 독립 외침이 통일꾼이 되고자 결심한 늦봄 자신의 함성으로 다시 살아날 것을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 낭독으로 불붙은 3·1운동은 4월 말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200만여 명이나 참여하였고 5월에도 그 열기는 식지 않고 이어졌다. 최석일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온 겨레가 함께 떨쳐 일어나 일제 침략에 항거하였음을 ‘통일꾼의 노래-2’를 통해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늦봄은 3·1운동이 민족통일로 이어져야 한다고 굳게 믿어왔다. 1982년 3월 옥중편지에서 늦봄은 ‘3·1운동은 민족통일로 완성되어야 할 빛나는 역사의 횃불이었습니다. 그 완성은 지금 우리의 헌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3·1운동은 이렇게 우리의 역사를 비추는 빛인 동시에 아시아 대륙을 비추는 드높은 횃불이었습니다’라며 3·1정신을 통일운동으로 승화시킬 것을 다짐하고 있다.
 
통일꾼의 노래-2

1919년 3월 31일
정주읍 장터를 뒤흔들던 만세 소리
지금은 통일꾼의 함성입니다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휘두르다가
쪽발이 헌병의 칼에 맞아 떨어진
최석일 씨의 오른팔
흐느끼며 피를 쏟는 우리의 주장입니다
백번 죽어도 놓칠 수 없는
피범벅이 우리의 역사입니다

터지는 가슴으로 불타는 눈으로 떨리는 손으로
다시 우리의 사랑 집어 들고
높이 높이 치켜들고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바가야로 곤칙쇼 소리에 찍혀 떨어지는
최석일 씨의 왼팔
하늘 울리고 땅 바다 울리는
자유의 몸부림입니다

두 팔 잃고
만세 소리만으로 전진하는 피투성이
핏발 선 왜놈의 칼날 바람을 가르며
떨어져 뒹구는 최석일 씨의 머리
부릅뜬 겨레의 눈망울입니다
푸들푸들 떨며 만세 소리에 묻히는
우리의 조국입니다

새봄이 와서 마침내
눈물겨운 새봄이 와서
통일꾼의 노래로 되살아나
온 강산 뒤덮을
싱싱한 풀이파리들입니다
풀이파리들에서 맑게 울려 퍼질
햇살들의 노래 해방의 노래입니다
 
 
통일꾼의 노래-1

1985년 설날
예순일곱이 되는 아들
예순여섯이 되는 며느리의
세배를 받으시며
아흔이 되시는 아버지
아흔하나가 되시는 어머니
이젠 너희들 통일꾼이 되라 하신다

1899년 2월 18일
아버지는 네 살에
독립군 아버지 어머니 품에 안겨
어머니는 다섯 살에
동학군 아버지 어머니 등에 업혀
하루에 두만강 얼음판을 건너셨는데
이제 걸음도 제대로 못 걸으시고
반장님 반귀머거리로
환갑 진갑 다 지난 아들 며느리에게 업혀 사시면서도
마음만은 더욱 푸르러 더욱 뜨거워
갈라져 피 흘리는 조국 생각하는 마음
이대로는 눈감을 수 없어
이젠 우리더러 통일꾼이 되라신다
원산 함흥 회령을 거쳐
눈보라 휘몰아치는 북간도 용정 새장 거리에 서서
조선 독립 만세
조선 통일 만세
목이 터지게 부르다가 쓰러지는 게
마지막 소원이시란다

하늘아 들어라 땅아 들어라
백두산 줄기 우릉우릉 울리는 마음으로
압록강 두만강 흑흑 흐느끼는 피눈물로
사십 년 분단 슬퍼하는 겨레 앞에
무릎 끓고 맹세한다

그 소원 겨레의 소원 내 소원이라고
열 번 죽어도 스무 번 죽어도
이 소원 이루고야 말리라고
이 소원 못 이루느니
차라리 날벼락 맞아 죽을 거라고
거룩한 이 땅에 묻히는 걸
거절한 거라고


※<통일꾼의 노래-1>, <통일꾼의 노래-2>  『문익환 전집 2권, 시집2』
 
◇늦봄 가족이 살았던 북간도 용정에서의 만세운동 모습 (1919년 3월 13일) <출처: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글: 조만석>
  언제든, 누구와 함께든, 사람과 역사를 볼 수 있는 곳 어디든, 걷기를 즐겨 합니다.



 


[참고자료]
최석일 (출처: 네이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평북 정주군의 3·1만세운동(출처: 동아일보, 2019년 11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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