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F , "스포츠 태권도로 세계 평화와 청소년 교육에 기여" (2009년 5월 5일)

2008년 태권도계가 대통령 선거 이후 들썩였다. WTF의 ‘맨체스터 돈봉투 사건’에 이어, 체육계 자정운동을 시작했던 대한태권도협회 김정길 회장과 집행부가 퇴진 압박을 받았다.83 8월 12일 사면 복권된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자 전 대한체육회 회장이 13일 올림픽이 열리는 베이징에서 사마란치 IOC 명예위원장과 만났다. 사마란치는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게 해 달라고 김운용 부위원장이 나를 밀어붙였다(push)”고 회상하면서, “태권도가 잔류하는데 김운용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운용 전 WTF 총재는 “태권도는 처음 정식 종목이 될 때 투표에서89-0으로 됐었는데 2005년 싱가포르 IOC총회 투표 때는 2표 차이로 살아남았다고 하니 올림픽에 남을 수 있을 지 위기인 것은 사실이다”며 “도울 일이 있으면 도울 것” 이라고 답했다. 한편 2008년 9월 8일 ITF를 창설한 고 최홍희 총재의 아들인 최중화 총재가 귀국하면서 “ITF가 해외에 파견한 태권도 사범 중에 북한 공작요원이 상당히 들어가 있었다”며 “모두 노동당 통일전선부가 담당해 공작원으로 키워 해외로 보냈다”85고 말했다. 최 씨의 주장으로 북한이 주도하는 ITF의 정통성 및 국내 ITF 조직의 활동 문제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그동안 WTF가 북한이 주도하는 ITF와 진행해 온 태권도 통합 논의의 적절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86 2009년 5월 5일 조정원 총재는 또 다시 “무도로서의 태권도와 올림픽 스포츠 종목으로서의 태권도는 다르다” 고 강조했다. 87 그러면서 태권도를 통해 세계 평화와 청소년 교육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88 그런 가운데 2009년 8월 13일(한국시간) IOC 집행위원회에서 2016년 하계올림픽 종목으로 태권도를 기존 26개 종목 중 하나로 채택했다. 2005년 싱가포르 IOC 총회에서 2012년 올림픽 종목을 결정하면서 종목별로 퇴출 찬반 투표를 실시하는 바람에 가슴을 졸여야 했던 것에 비하면 별 무리 없이 고비를 넘겼다.89 83 “심상찮은 태권도계 ‘친 김운용파’ 복귀?,” 한겨레, 2008.1.11. 84 “<올림픽>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사마란치와 회동,” 연합뉴스, 2008.8.13. 85 “ITF 창설자 최홍희 아들 중화씨 내일 입국,” 연합뉴스, 2008.9.7. 86 “태권도 통합 논의 어떻게 되나,” 연합뉴스, 2008.9.7. 87 “<인터뷰>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연합뉴스, 2009.5.6. 88 “IOC위원장 "태권도 현대적...박진감 넘쳐",” 연합뉴스, 2009.5.6. 89 “숨 돌린 태권도, 올림픽 붙박이 기틀 마련해야,” 연합뉴스, 2009.08.13. 출처: 홍성보(2021). 서울평양 태권도 문화융합. 교보문고, 44-45쪽.

상세정보열기
관련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