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태권도계가 대통령 선거 이후 들썩였다. WTF의 ‘맨체스터 돈봉투 사건’에 이어, 체육계 자정운동을 시작했던 대한태권도협회 김정길 회장과 집행부가 퇴진 압박을 받았다.83 8월 12일 사면 복권된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이자 전 대한체육회 회장이 13일 올림픽이 열리는 베이징에서 사마란치 IOC 명예위원장과 만났다. 사마란치는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게 해 달라고 김운용 부위원장이 나를 밀어붙였다(push)”고 회상하면서, “태권도가 잔류하는데 김운용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운용 전 WTF 총재는 “태권도는 처음 정식 종목이 될 때 투표에서89-0으로 됐었는데 2005년 싱가포르 IOC총회 투표 때는 2표 차이로 살아남았다고 하니 올림픽에 남을 수 있을 지 위기인 것은 사실이다”며 “도울 일이 있으면 도울 것” 이라고 답했다. 한편 2008년 9월 8일 ITF를 창설한 고 최홍희 총재의 아들인 최중화 총재가 귀국하면서 “ITF가 해외에 파견한 태권도 사범 중에 북한 공작요원이 상당히 들어가 있었다”며 “모두 노동당 통일전선부가 담당해 공작원으로 키워 해외로 보냈다”85고 말했다. 최 씨의 주장으로 북한이 주도하는 ITF의 정통성 및 국내 ITF 조직의 활동 문제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그동안 WTF가 북한이 주도하는 ITF와 진행해 온 태권도 통합 논의의 적절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86 2009년 5월 5일 조정원 총재는 또 다시 “무도로서의 태권도와 올림픽 스포츠 종목으로서의 태권도는 다르다” 고 강조했다. 87 그러면서 태권도를 통해 세계 평화와 청소년 교육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88 그런 가운데 2009년 8월 13일(한국시간) IOC 집행위원회에서 2016년 하계올림픽 종목으로 태권도를 기존 26개 종목 중 하나로 채택했다. 2005년 싱가포르 IOC 총회에서 2012년 올림픽 종목을 결정하면서 종목별로 퇴출 찬반 투표를 실시하는 바람에 가슴을 졸여야 했던 것에 비하면 별 무리 없이 고비를 넘겼다.89 83 “심상찮은 태권도계 ‘친 김운용파’ 복귀?,” 한겨레, 2008.1.11. 84 “<올림픽> 김운용 전 IOC 부위원장, 사마란치와 회동,” 연합뉴스, 2008.8.13. 85 “ITF 창설자 최홍희 아들 중화씨 내일 입국,” 연합뉴스, 2008.9.7. 86 “태권도 통합 논의 어떻게 되나,” 연합뉴스, 2008.9.7. 87 “<인터뷰>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연합뉴스, 2009.5.6. 88 “IOC위원장 "태권도 현대적...박진감 넘쳐",” 연합뉴스, 2009.5.6. 89 “숨 돌린 태권도, 올림픽 붙박이 기틀 마련해야,” 연합뉴스, 2009.08.13. 출처: 홍성보(2021). 서울평양 태권도 문화융합. 교보문고, 44-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