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WTF 는 두 연맹의 통합 논의보다 WTF 개혁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조정원 총재는 “태권도가 살아남기 위해선 IOC가 요구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를 갖추는 것이 급선무다”며 전자호구를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시범 운영한 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정식 채택할 방침”68이라고 설명했다. 7월 14일에는 “국제스포츠기구로서의 면모를 갖춘 글로벌 스탠다드를 만들어 가지 못하면 4년 뒤엔 또 다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기원, 대한태권도협회 등 국내단체들과의 공조와 관련된 질문에는 “WTF는 태권도가 올림픽스포츠로서 자리매김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하고, 국기원과 대한태권도협회는 무도로서의 태권도를 발전시켜 나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69며 스포츠와 무도의 분리를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남북의 스포츠와 무도 특성을 상호 연계하여 태권도를 발전시키고자 했던 김운용과 장웅 사이의 2003년 합의는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2006년 4월 7일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WTF 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조정원 WTF 총재로부터 태권도 명예 10단 단증과 함께 도복, 검정 띠를 받았다.70 그러자 국내 태권도계는 “WTF가 이제는 국기원의 고유영역까지 발을 들여 놓으려 한다”71고 비난했고, WTF와 국기원 등 국내외 단체들 사이의 갈등도 깊어졌다. 한편 이 시기 다른 차원의 교류도 있었다. 2005년 7월 9~14일 북한 주도의 ITF 주최 세계선수권대회에 남한의 경북과학대 선수단이 참가했다. ITF 산하 국가별 연맹에 가입하지 않아 주최측의 특별초청 형식으로 참가한 경우였다.72 2006년 6월 사단법인 국제태권도연맹이 출범하면서, 최중화가 이끄는 ITF 대한태권도연맹, 장웅 계열의 또 다른 국내 조직인 ITF 대한민국태권도협회를 포함해 ITF계열만 3개 단체로 늘었다.73 2006년 5월 16일에는 장웅 계열의 ITF 산하 남한태권도협회 대표단이 ITF 창립 40돌 평양태권도기념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방북하기도 했다.74
68 “
69 “<인터뷰> 태권도 올림픽 사수 이끈 조정원 WTF총재,” 2005.7.14.
70 “‘태권도 10단’ 자크 로게...세계태권도연맹, 명예단증 수여,” 동아일보, 2006.4.8.
71 “<종주국 위상 흔드는 태권도 단증발급 혼선>,”연합뉴스, 2006.5.8.
72 “ITF 대회 참가 태권도선수단 출국,” 연합뉴스, 2005.7.6.
73 “유사단체 증가, 자체 단증 발급... 태권도계‘몸살',” 연합뉴스, 2006.8.22.
74 “국제태권도연맹 소속 태권도인들 訪北,” 연합뉴스, 2006.5.16.
출처: 홍성보(2021). 서울평양 태권도 문화융합. 교보문고, 40-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