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개선, 태권도 교류 활성화

1995년 6월 제104차 IOC총회 결정으로 1999년 IOC 제108차 총회가 서울에서 열리게 됐고 IOC위원의 정년은 80세로 늘어났다. 태권도의 2004년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에도 유리한 입장에 섰다. IOC위원 추가 선임 명단에는 한국은 물론 북한도 1994년에 이어 또 다시 들어있지 않았다.34 1996년 8월 4일 애틀랜타올림픽 폐막과 함께 김운용 IOC부위원장이 4년간의 임기가 종료되어 평의원으로 되돌아갔다. 1997년 9월 IOC총회에서 김운용 IOC위원이 다시 집행위원으로 복귀했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북한의 장웅과 한국은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이 새로운 IOC위원으로 추가됐다. 한국은 2명의 IOC위원을 보유하는 등 비중이 강화됐지만 그동안 수석부위원장으로 활동하던 김운용위원이 임기가 만료돼 집행부에서 제외됨으로써 상당한 손실이 있었다.35 1998년 2월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대외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햇볕정책 또는 대북 포용정책을 천명하고 “남북관계는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 정착에 토대를 두고 발전시켜 나가자”며 ‘북한에 대해 당면한 3원칙’을 밝혔다.36 2000년 6월 평양에서의 남북 정상회담과 6.15 남북공동선언은 실질적인 남북관계 활성화를 위한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6.15 공동선언의 내용 가운데 제4항은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나가기로 하였다”로 경제협력 및 사회문화 교류의 활성화를 명문화했다. 그 중에서도 태권도는 남북 체육교류 가운데 북한이 특별히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분야이다. 6.15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과 동행한 김운용 세계태권도연맹 총재에게 “남북 태권도가 하나로 합쳐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달라”고 제의했다. 이어 2000년 12월 15일에 폐막된 제4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한은 돌연 태권도의 교류와 통합을 제의해 왔다. 이듬해 2월 12일 북한은 조선태권도위원회 황봉영 위원장 명의로 남북 태권도시범단 교환을 위한 국장급 실무접촉을 제의했다.37

34 “한국, IOC위원 추가에 실패,” 연합뉴스, 1995.6.18.
35 “<해설> 한국스포츠, 국제무대 위상 강화,” 연합뉴스, 1997.9.5.
36 통일부(2003). 통일백서. 서울: 통일부 통일정책실, 405. 김대 중 대통령이 밝힌 ‘북한에 대해 당면한 3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어떠한 무력도발도 결코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둘째, 우리는 북한을 해치거나 흡수할 생각이 없습니다. 셋째, 남북한의 화해와 협력을 가능한 분야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갈 것입니다.
37 한국일보, 2001.2.20.
출처: 홍성보(2021). 서울평양 태권도 문화융합. 교보문고, 27-28쪽.

상세정보열기
관련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