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민일보에 실린 판징이 선생의 <신 병매관기>

1995년 11월 17일 인민일보에 실린 판징이 선생의 <신 병매관기>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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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 제주도에 있는 생각하는 정원을 참관했을 때 성범영 원장과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 그날의 화제는 공즈전의 병매관기(炳梅館記)’에 관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30,000에 달하는 분재예술원을 주마간산 격으로 관람하고 나자, 성 원장은 나를 휴게실로 안내해 차를 권하면서 관람 소감을 물어왔다. 나는 이처럼 많은 
천태만상의 분재를 보고 나니 분재에 관한 나의 종전의 관점이 크게 달라졌습니다.”라고 말했다. 나의 분재에 대한 관점이랄까, 보잘 것 없는 지식은 어릴 적 공즈전의 병매관기를 읽고 난 후 뇌리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이었다성 원장은 갑자기 흥미 있는 이야기라도 나올 듯 계속 얘기해 주기를 원했다. 나는 할 수 없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기억을 더듬으며 병매관기에 관한 대략적인 내용을 들려주었다. 공즈전은 그의 책에서 병매, 즉 병든 매화, 인공으로 기형적으로 만들어버린 매화 분재를 소재로 청나라 정부의 인재들에 대한 잔혹성과 죄악성을 비유, 묘사했다. 하지만 이곳에 전시해 놓은 소나무, 동백나무, 매화, 석류 등 생기발랄한 분재들의 모습을 보고, 더구나 성 원장이 직접 쓴 분재삼미(盆栽三美)’, ‘분재십득(盆栽十得)’에 관한 글까지 알고 나니, 분재란 것에 대해 이처럼 적극적인 해석도 있다는 사실에 나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흥미가 더해가는 것을 느꼈다. 옛 선인들이 많은 것을 보고 느끼는 가운데 의문은 저절로 풀린다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사고 관념 속에서 살다 보면 같은 사물에 대한 견해도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성 원장은 웃으면서, “난 공즈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 사람의 그런 관점은 충분히 소유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30여 명의 학자들이 이곳을 참관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한 분이 내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잔인한 사람이군요. 그냥 놓아두면 자연적으로 클 수 있는 나무들을 구부리고 비틀면서 이런 잔혹한 모양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그러자 나는 잘 모르고 하시는 얘기입니다. 내가 하는 일은 잔혹한 일이 아니라 교정을 해주는 일입니다. 이처럼 야생적 기질을 타고 난 나무들도 내 손에 의해 길러지고 다듬어지면 최종적으로 사람들의 미적감각을 자아내게 할 수 있는 예술품으로 변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게 얼마나 의미 있는 일입니까?” 라고 대답한 적이 있지요. 나의 손을 거치고 나면 나태한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으로, 마음이 거친 사람은 온화한 사람으로, 천방지축 들떠 있는 사람은 차분한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한 자식의 부모가 되어 자신의 자식들이 방탕함보다는 엄격한 규율 속에서 성장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시 말해 우리들이 하는 분재란 것이 순수한 나무를 비틀고 구부리는 잔혹한 것이라면 그 나무들의 결과는 어찌되겠습니까? 반드시 죽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한한 생활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생활력도 대단히 강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아름다움까지 도달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장차 사회를 개조하려는 사람들에게까지 중요한 계시를 주고 있습니다분재를 만드는 것처럼 교정하고 제약한다면 사회의 온갖 불건전한 현상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사회에는 수많은 일들이 우리의 관심과 관리, 교정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습관을 길러낸다면 그 사회는 대단히 밝아질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나는 다시 말했다. “원장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갑자기 옛날 일이 생각나는 군요. 산림에 관한 용어 가운데 무육(撫育)’이란 단어를 본 적이 있는데, 처음에는 단순히 물이나 비료를 주면서 정성껏 키우는 것으로만 생각했었죠. 그런데 그 후 삼림 현장을 직접 참관할 기회가 있어 알게 된 것인데, 원래 그 의미는 도끼나 칼 따위로 자른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보니까 어떤 나무는 원줄기만 남기고 곁가지는 황량하고 잔혹하다 할 정도로 쳐버렸더군요. 그때 기술자가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만일 이처럼 잔혹한 마음을 쓰지 않으면 성장도 느릴뿐더러 목재로도 쓸 수 없습니다. 땔감 외에는.”
성 원장은 이 말을 듣자마자 웃으면서 세상에 진정으로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서로 통하는 법이군요. 돌아가시면 신 병매관기를 한 편 써보시죠!” 라고 했으며 우리는 이 말을 끝으로 아쉬운 작별을 하게 되었다.


(중국 <인민일보>, 금요일 제7, 199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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