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아닌 동물의 눈으로 본 2024년 서울
도시는 인간의 ‘서식지’다. 하지만 과거에는 어땠을까? 이 동네에 세워진 집과 건물은 어쩌면 높은
산이거나 굽이굽이 흐르는 물길이었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이 근처에 살았던 그 시절 동물들
은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개발 바람에 밀려 더 깊은 산이나 숲으로 쫓겨 들어갔을까? 아니면 의도
치 않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까? 혹시 그 동물들이 지금 이곳에 선다면 어떤 기분을 느낄
까? 이 기사는 그런 상상력에서 출발했다. [편집자 주]
[뉴스펭귄 우다영 기자] 도시가 생기면 사람과 돈이 모인다. 하지만 그곳에 살던 생명들은 집과 길을 잃는
다.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우동걸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도시화 및 개발에 따른 서식지 피해로
동물들은 여러 형태의 영향을 받는다. △면적 감소 △질 악화 △파편화 현상 등이다.
|도시화로 인해 소외되는 개체는 멸종위기종뿐 아니라 일반종도 상당하다. 예를 들면, 논외 지에 사는 개구리 등 작은 양서파충류의 서식지가 완전히 소실된다. 기존 서식지가 개발될 때, 죽는 동물도 있지만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하는 동물도 생긴다.
한 개체군이 서식지를 이주하면 기존 서식하던 다른 개체군과 경쟁해야 하는 등 각 서식지에 혼란이 인다. 내가 살던 집에 누군가 무단침입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살던 도시에서, 동물들은 그런 일을 겪었다.
서울 물길 지도. 기자는 물길 지도가 인간의 지하철 노선도와 겹쳐 보였다. (사진 소보람 제공)/뉴스펭귄
이런 상상을 해보자. 내가 다니던 길과 매일 타던 지하철 노선이 여기저기 끊어진 세상에서 산다면 어떨까? 물 마실 곳을 찾아 횡단보도 없는 도로를 건너야 한다면? 내 몸으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속력으로 달리는 차와 맞서야 한다. 그런 삶을 얼마나 살아갈 수 있을까?
기자는 지난 21일, 서울 삼청공원 일대를 걸었다. 그냥 걸은 게 아니라 '나는 한 마리의 사슴'이라고 상상하며 걸었다. 물론, 반드시 사슴이어야 하는 건 아니고 서식지가 사라지거나 개체수가 줄어 생존을 위협받는 동물이기도 했다. 그랬더니 익숙한 풍경이 사뭇 달리 보였다. (동물의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 본 이유는 기사 아래 다시 설명한다.)
커다란 기계가 우리 집 바닥을 파헤쳤다
또 가족을 잃었다. 집을 찾으러 나선 길이었다. 단단하고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빠르게 달려온 차를 미처 피하지 못했다. 아니 피할 수 없었다. 정신 차려보니 처음 느껴보는 강한 빛, 굉음이 눈과 귀를 날카롭게 찌른 뒤였다. 저 멀리 피 흘리는 가족을 보고만 있었다. 무겁게 돌린 등 뒤로 평화롭던 날들이 아른거린다. 우릴 위한 길은 어디에 있는 걸까?
빼곡히 푸르렀던 숲, 잔잔히 멈추지 않고 흐르던 물, 발 딛는 곳마다 풍부했던 식량. 서로 부족함 없이, 어딘가로 흐르듯 충분히 몸을 맡기며 살았다. 자연의 주기에 맞춰 모든 게 안정적으로 움직였고, 어디든 집이 돼주었다. 거대한 평온이 이토록 쉽게 무너지리라 생각도 못 한 채.
어느 날 길고 커다란 기계들이 우리 집 바닥을 파헤쳤다. 약속도, 통보도 없이 누군가 집을 뒤엎고, 뭉갰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는 운이 좋아 숨을 곳을 찾으러 나서고, 도대체 누구냐며 소리라도 질러본 거였다.어떤 집은 화를 낼 새도 없이 기계에 치이거나 깔려 그 자리에서 눈을 감았으니까. 그렇게 피와 눈물이 뒤엉킨 숲에 인간의 집이 들어섰다. 높게 솟아오른 건물과 아파트는 하늘을 베는 것 같았다. 처음 맡아보는검은 공기에 숨이 막혔다.
겨우 살 집을 찾았지만 그뿐이었다. 굶주림과 갈증,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살기 위해 움직여도 사방에서 쫓겼다. 배고파 쓰레기통을 뒤져도, 물을 찾아 헤매다 길을 잃어도 우리는 인간이 만든 길과 집 사이사이로 도망쳐야 했다. 도망치지 못하면 인간을 위협한다는 낙인이 찍혔고, 죽음이 쫓아왔다.
우릴 위한 길은 어디에 있는 걸까? 미리 알았다면 우리끼리 살 궁리라도 했을까? 절대 들어본 적 없던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인간은 우리의 비명을 듣지 못했다. 나의 행복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기자는 '2024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예술워크숍' <사슴이 강이 되는 법>에 참여했다. '도시 아래를 흐르는 강'이라는 주제로, 도시 내 소외된 생태와 생명을 그들의 시선에서 생각해보자는 취지의 이벤트다. 도시화로 끊어진 자연의 흐름을 재현한 행사에서 기자도 인간이 아닌 동물 시선으로 도시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