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금강교와 공산성

1930년대 초반 대대적인 개축 및 정비가 단행된 공주 금강교의 모습이다. 본래 금강교는 남북을 잇는 목교의 형태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 집중호우로 인한 금강 홍수로 목교가 소실되었고, 이로 인해 금강을 건너는 일이 난망의 연속이었다. 이에 조선총독부와 충청남도에서는 보다 튼튼한 형태의 목교 재건축을 단행했고, 본 자료 속 모습과 같이 금강 북단은 목교의 형상을 띄고, 교각 중반부와 남단부근은 배를 이은 후 상단에 널판지를 시공하는 형식으로 배다리가 가설되었다. 이 공주 금강 주교는 1933년 오늘날에도 자리를 지키는 금강철교가 가설되기 전까지 활용되었다.



아울러 금강교 뒷편 배경으로 공산성 북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를 비롯하여 성안마을과 쌍수정의 형상도 확인할 수 있다. 독특한 점은 오늘날 공산정이 위치한 부근에 문헌에서 알 수 없는 전통식 정자가 조성되어있다. 공산정은 현대에 들어와서 새로 지어진 것으로 본래 해당 위치에는 치소만 존재했다. 그러나 본 자료 속에는 높이 솟은 형상의 정자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배다리 북단 초입에는 1930년 09월 공사를 통해 새워진 가로등이 설치된 점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당시 배다리가 주야간 모두 통행이 가능한 다리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