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캄 이야기
모닝카믜 사람들(1)_코프주교
모닝캄정책위원회
게시일 2023.08.18  | 최종수정일 2023.08.18

고요한 주교(찰스 존 코프, Charles John Corfe)

한국의 성공회 전래는 중국과 일본에 진출했던 성공회 선교사들이 벤슨 켄터베리 대주교에게 청원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중국이나 일본의 선교와는 달리 처음부터 선교를 책임지는 주교부터 선발하는 ‘본격적인 형태를 갖추어’ 출발하게 되는데, 벤슨 대주교는 중국선교와도 부분적으로 관계가 있었던 영국 해군종군사제인 코프(Charles John Corfe)를 한국 선교의 책임자로 선임하고 영국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1889년 11월 1일 주교로 승품하였다.
한국 선교는 일본이나 중국과 같은 다양한 선교단체들의 참여가 아니라, 영국성공회의 복음전도협회(SPG, The Society for the Propagation of the Gospel)의 단일한 선교단체가 처음부터 소극적인 자세로 임했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영국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한국선교는 영국식민지의 자국민을 위한 국가정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극동의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에 자국의 이해에 상관없이 선교사를 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 선교의 책임을 맡은 코프 주교는 “나는 마치 나룻배 한 척으로 전쟁에 나가는 기분이었다.”라고 표현할 만큼 소액의 선교자금으로 한국 선교에 나서게 되었다. 또한 한국 선교에 동참할 선교 동역자를 구하는 일도 당면한 문제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영국해군의 동료들이 한국으로 떠나는 코프 주교를 위해 ‘해군병원기금’이라는 단체를 설립해서 서울과 제물포에 설립하게 될 병원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고 킬번(Kilburn)의 성 베드로수녀회(The Community of St. Peter’s)에는 코프 주교의 선교를 돕기 위해 ‘한국을 위한 기도모임’(Association for Intercessory Prayer for Corea)이라는 협회가 설립되었다. 이 모임은 코프 주교의 요청에 따라 기도와 봉사 그리고 지원금의 수집 등을 목표로 하고 영국 각 지역에서 수백명의 회원을 확보해 나갔다.
코프 주교는 영국을 떠나기 앞서서 1890년 7월 1일 한국 선교를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 위한 ‘모닝캄’(The Morning Calm)이라는 정기 간행의 잡지를 발간하기 시작하였다. 값은 1페니로 누구나 살 수 있도록 아주 저렴하게 책정하였다.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코프 주교는 선교에 대한 소신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선교는 해외로 나간 선교사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의 현장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야 완성될 수 있습니다…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 어둠 속에 있는 많은 지역에 부활의 삶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 중에서 저는 작은 한 조각을 맡았을 뿐입니다…선교에 집중하는 것은 교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결과적으로 조선선교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단지 조선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우리 (영국) 교회를 위해서도 좋은 일입니다.”
한국선교를 자원한 의료진과 함께 한국에 도착한 코프 주교는 서울과 인천 제물포, 강화에 대지를 마련하며 선교를 시작하였고 고아들을 위한 사회사업과 의료선교활동, 인쇄시설을 통한 출판사업에 치중하였다. 그러나 헌신적인 코프 주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교사의 잦은 이동과 부족한 선교기금, 한국어 습득의 어려움은 한국선교 15년이 되던 1904년에 그로 하여금 켄터베리대주교에게 사임과 후임을 요청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