팁카이브
4편🕶️ 기록을 기록답게 하는: 기록의 구성요소
아카이브센터
게시일 2024.05.09  | 최종수정일 2024.05.13

아카이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팁을 풀어서 알려드리는
팁카이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1. 기록은 무엇인가
 
조선왕조실록부터 책상에 놓인 일기장까지… 우리는 ‘기록’이라는 말을 참 많이 쓰고 있습니다.
신문 기사를 보다보면 드론으로 기네스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2024년 검정고시 합격률이 90%를 기록했다, 시민의 소소한 이야기를 기록으로 담았다는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고 정기적으로 기록하는 모임뿐만 아니라 기록 인플루언서까지 생겼을 만큼 기록은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기록은 어떤 것이길래 이렇게 우리에게 자연스럽고도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일까요? 이번 팁카이브 시간에는 ‘기록’의 구성요소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기록’이라는 개념부터 주목해봐야겠습니다. 기록은 무엇이며, 어떤 상태일 때 의미가 있을까요? 학자들은 기록을 구성하는 요소를 내용, 구조, 맥락의 3가지로 구분합니다. 
 
내용: 기록에 담긴 정보
구조: 내용이 표현되는 형식이나 매체
맥락: 기록을 생산하고 이용했던 환경
(출처: 한국기록관리학회,「기록관리의 세계 」, 한울아카데미, 33p)
 
ⓒUnsplash, Andrew Dunstan
 
2. 내용, 구조, 맥락

여기에 빈 A4용지가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하얀색의 종이는 기록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만약에 이 종이에 누군가가 낙서라도 해놨다면 기록이라고 부를 가능성은 조금 있겠네요. 기록은 문자, 기호, 인쇄된 이미지, 필름의 영상과 같이, 무엇이든 표현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기록의 첫 번째 요소인 ‘내용’입니다. 

그런데, 내용이 있더라도 어딘가에 고정되지 않으면 그 내용은 언젠가 휘발되고 맙니다. 생생했던 기억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흐릿해지는 것처럼요. 기억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사라지기 때문에 기억 자체만으로 기록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것이지요. 

기억을 온전한 형태로 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보통 동영상을 촬영하거나, 녹취록으로 음성을 담아냅니다. 이런 동영상, 테이프, 종이, 디지털 파일 같은 매체에 기억을 고정시켰을 때 기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고정’하는 과정은 기록화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기억을 고정시킬 수 있는 매체나 체계를 ‘구조’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내용과 구조만 있어도 기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여기 오래된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남자아이 두 명과 여자아이 한 명이 길거리에서 인형탈을 쓴 사람과 함께 서있고, 뒤에는 행인들도 지나갑니다. 
이 사진은 1980년 미국 디즈니랜드에서 도나 보우트시나스 씨와 형제들이 디즈니 캐릭터 인형탈을 쓴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도나는 결혼 일주일 전, 예비 남편 알렉스 보우트시나스 씨와 함께 서로의 가족사진을 살펴보다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도나의 어린 시절 사진 속에서 알렉스의 아버지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도나와 알렉스는 1980년 어느날, 같은 시간에 디즈니랜드를 방문했었고, 사진 상으로 뒤에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는 행인과 유모차에 타고 있는 아이는 확인해 보니 시아버지와 유모차에 타고 있었던 알렉스인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부부가 된 두 사람이 33년도 전에 같은 공간을 지나가는 우연이 있었던 것입니다.

도나와 알렉스가 이 정보를 알기 전까지 이 사진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도나의 어린 시절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진에 담긴 운명 같은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그들이 서로를 느끼는 감정은 더욱 애틋해졌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진이 가지고 있는 ‘맥락’입니다. 태평양 너머 대한민국에서 이 일화가 기사화 된 것처럼 맥락은 기록 뒤에 숨겨진 서사적 힘을 가집니다. 내용, 구조와 함께 맥락을 가져야만 기록을 기록답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기록에서 맥락은 꼭 필요합니다.



3. 맥락을 만드는 아키비스트

그렇다면, 이 맥락은 누가 만들 수 있을까요?

일기를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일기를 쓰는 사람은 기록자(Recorder)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기장 여러 권을 날짜별로 정리하고, 한 사람의 생애, 이야기를 통해 하루하루 작성하는 일기 중 어떤 날이 중요한지 그 가치를 확인하고 서사를 읽어내는 것, 즉 맥락을 보전하거나 찾아내는 작업은 아키비스트(Archivist)의 역할입니다. 맥락은 기록뿐만 아니라 기록이 만들어진 환경, 배경, 업무, 활동, 이야기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입니다.

이 글을 작성중인 에디터는 첫 인스타그램 계정을 생성한 지 10년이 넘었는데요. 계정 생성 초기에는 ‘목구멍을 거쳐 간 모든 음식들을 남겨보자’ 라는 취지로 음식사진을 주로 올렸었습니다. 그런데 헬스장 PT(퍼스널 트레이닝)트레이너 선생님들과 인스타그램 맞팔을 하고 나서 업로드 빈도를 줄이다 보니 맛있게 먹은 맛집 음식을 사진으로 찍고 나서도 SNS에는 올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 결과 핸드폰 앨범에는 수많은 음식 사진들이 저장되어 있지만 사진 한 장만 보고는 무슨 카페인지, 어떤 사람이랑 갔었는지, 메뉴 이름이 무엇인지, 그 사진을 찍을 때의 나의 감정과 생각은 무엇이었는지 까먹고 말았습니다. 

오래전에 찍어둔 사진의 맥락을 잃어버리면, 이미지는 남아있지만 나의 감정이나 같이 갔던 사람들, 추억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기록을 기록답게 만들어 주는 것은 맥락과 메타데이터입니다. 이 맥락과 메타데이터를 정리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아키비스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