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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레나의 집 큰아버지, 김수환 추기경님


“내게는 모두가 어린 아이”

1988년 정월대보름날, 막달레나의 집(이하 ‘쉼터’) 문을 두드리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소박하다 못해 허름한 차림새의 그 손님은 김수환 추기경님이었어요. 이옥정 대표도 놀랐습니다. "설날에는 사제들과 신자들의 방문으로 바쁘실 테니, 여성의 명절인 정월대보름에 와주셨으면 좋겠다"라고 성탄카드에 짤막하게 초대의 글을 써서 보냈으나, 기대는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추기경님은 큰아버지처럼 함께 밥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셨어요. 인자한 표정으로 쉼터 식구들의 세배를 받은 추기경님은, 세뱃돈으로 5,000원 신권을 한 장씩 주셨습니다. 어떤 분이 “어른이나 아이나 금액이 똑같나요?”라고 여쭤보니, 추기경님은 “내게는 모두가 어린 아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다음 해 정월대보름날에도 쉼터를 찾으신 김수환 추기경님은, ‘아저씨’, ‘신부님’, ‘추기경님’ 등 여러 호칭으로 자신을 부르는 이들과 함께 윷놀이를 하시며 즐거워하셨어요.

“추기경님도 오셨는데, 나도 가야죠”

1990년 3월, 성매매 여성 한 명이 신부전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고를 들으신 김수환 추기경님은 손수 쓰신 메시지와 조화를 영안실로 보내오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직접 조문을 오셨습니다. 당시 성매매 여성은 죽으면 화장되거나 시립 공원묘지 등에 묘비도 없이 묻혔습니다. 찾는 가족도 거의 없었고 업주들은 외출을 불허했으며, 동료들도 초상집은 불길하다며 찾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나, 추기경님이 장례식장에 오신 이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추기경님도 오셨는데, 당연히 가야죠”라며 모여든 것입니다. 장지까지 이동한 버스만 2대. 업주도 외출을 막을 수 없었어요.
1991년, 자활 훈련 후 가게를 연 여성에게는 추기경님께서 100만 원을 지원하셨습니다. 2002년에는 경기도 강화에 중년여성들의 자활을 위한 집이 열리자, 추기경님은 전날 불면증에 시달린 몸으로 축하하러 오셨어요. 이옥정 대표는 “김수환 추기경님은 사회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는 이들에게 자신도 소중한, 사랑받는 존재임을 느끼게 해주신 분”이라고 회고했습니다.


손수 쓴 카드와 밥상 선물

2009년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선종하셨습니다. 이옥정 대표는 “절묘하게도 추기경님께서 선종하시기 하루 전, 나는 그분과의 추억이 담긴 물품들을 정리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함께 찍은 사진들 속에 추기경님의 손글씨 카드들이 있었습니다. 손목이 불편하시던 때에도 추기경님은 손글씨로 메시지를 전해오셨습니다. “영옥, 은영, 은주, 은경, 막달레나 막내 소영, 숙현… 한 분 한 분 주님의 사랑 속에 몸도 마음도 평안하시길 거듭 기도드립니다.” 이옥정 대표는 막달레나 식구들의 이름을 빠짐없이 불러주신 그 글을 다시 읽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히 여기시던 추기경님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이옥정 대표는 추기경님의 선물들 중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밥상’을 꼽았습니다. 어느 날, 이옥정 대표는 추기경님 비서실에서 밥상을 받아가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자개로 장식된 근사한 밥상을 받아든 이옥정 대표는, 문득 그 선물의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추기경님께서 오시면, 집에 있는 상을 모두 꺼내 밥상을 차렸어요. 상들 중 다리 하나가 없어서 벽돌로 받쳐 쓰던 게 있었어요. 세상에, 그걸 보시고 기억하셨던 거죠.”

“추기경님은 다단계 우두머리”

2018년 11월 19일, 40세의 한 남자가 ‘라파엘’이라는 세례명을 받았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쉼터를 처음 방문한 1988년 당시 10세 초등학생이었던 그는 2008년, 30세의 나이로 6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충격적인 통보를 받습니다. 라파엘의 어머님에게 이옥정 대표는 추기경님의 묵주를 주며 “세상을 떠나더라도 이걸 꼭 쥐고 가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추기경님과 함께 그를 위해 간절한 기도를 드렸지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6개월밖에 못 산다던 30세 청년이 40세 생일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는 부모님과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추기경님의 영향으로 세례를 받은 이들은 라파엘 가족 외에도 많습니다. 쉼터 여성들은 추기경과의 만남, 차별 없이 나눠주던 세뱃돈과 묵주 때문에 성당에 가게 됐다고들 합니다. 이옥정 대표는 50여 명의 대녀를 둔 대모가 됐고, ‘성당 이모’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쉼터 식구들은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함께 김 추기경님을 추억하며 말합니다. “추기경님은 다단계 우두머리 같으셔.” 추기경님으로 인해 이옥정 대표가 대모가 되고, 그 대녀들이 또 대모가 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옥정 대표는 “추기경님의 다단계 사업이 매년 번창하기를 기도한다”라며 웃었습니다.

 


참고
2019년 2월 20일, cpbc, [김수환 추기경 사연 공모전 수상작] 추기경님은 다단계 우두머리 이옥정 콘세크라타(막달레나 공동체 전 대표
2009년 3월 22일, 가톨릭신문, [내가 만난 김수환 추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