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는 ‘만약 내가 지구 최후의 인류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의식주를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을 것이고, 외로움에 괴로운 날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상에서 내가 생각하는 가장 씁쓸한 점은, 그 누구도 내가 있었음을 기억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 생명이 멸종한다는 것은 이러한 슬픔과 우울을 동반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것은 멸종에 관한 이야기다.
7월 29일,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조류 표본들을 관람하는 중 낯익은 그림을 발견했다. 그것은 라푸스 쿠쿨라투스(Raphus cucullatus)의 복원도였다. 퇴화한 짧은 날개를 가져 비행을 할 수 없었던 육상조류였던 이 새는 우리들에게 익숙한 동물이다. 이 새의 다른 이름은, 멸종의 대명사로 알려진 도도(Dodo)다.
15세기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를 선두로 신대륙과 아프리카, 그리고 인도로 향하는 바닷길이 개척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대항해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는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Treaty of Tordesillas)을 통해 세계를 양분하기로 합의했는데, 이를 통해 에스파냐는 아메리카,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항해하여 인도에 도달하는 무역로를 개척하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인도양 마스카렌 제도의 무인도 모리셔스 섬(Mauritius)을 발견(1507년)하게 된다. 한편 포르투갈의 항로개척은 후발주자들에게도 훌륭한 길잡이가 되었는데, 그 후발주자 중 하나가 네덜란드였다. 1598년 모리셔스 섬을 인수한 네덜란드인들은, 이 섬에서 이상한 조류 하나를 발견한다.
아시아로 향하는 중간 경유지인 모리셔스에 네덜란드 선원들이 상륙했을 때, 그들은 생전 처음 보는 새를 발견했다. 모리셔스의 주민이었던 그 새는 하늘을 날지도, 빨리 달리지도 못했다. 그러면서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강했는지, 인간을 보고 피하지 않았다. 섬에서 그들을 잡아먹는 천적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인간에 대한 경계심이 없었던 탓에 선원들은 그 새를 쉽게 사냥했다. 이 모습이 바보처럼 보였는지, 사람들은 이 새를 포르투갈어 ‘doudo(바보)’로 불렀는데, 이것에 후에 영어의 ‘도도(Dodo)’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Dodo의 어원은 그 기원이 명확하지 않다. 네덜란드어의 ‘dodoor(게으른)/Dodaars(뚱뚱한 엉덩이)’, 포르투갈어의 ‘doudo(바보)’가 보통 그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Dodo’를 처음 사용했었던 과거 영국인들은 그 기원을 포르투갈에서 찾았다. 무엇을 기원으로 하건 유럽인들이 가진 도도에 대한 인상은 긍정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
처음 네덜란드인들은 이 ‘멍청한 새’를 잡아먹기 위해 사냥을 했다. 선원들은 오랜 항해를 위해 도도의 살점을 소금에 절여 보관했다. 어찌나 맛이 없었는지, 그들은 도도를 ‘맛없는 새(Walghvoghel)’로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첩하지 못한 이 새를 사냥하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기에, 포획은 빈번하게 일어났던 것 같다. 또한 도도가 인간을 피하지 않았던 탓에, 인간들은 자신에게 다가온 도도를 별다른 이유 없이 때려잡기도 했던 것 같다. 당시에 동물보호의 개념이 있을 리가 만무하니, 인간들은 도도를 사냥함에 거리낌이 없었다.
점차 동방으로의 무역이 확장되자, 모리셔스는 단순한 기항지의 역할을 넘어 정착지로 발전했다. 이것은 도도에 대한 사형 선고와 다름없었다. 인간의 거주와 함께, 외래종들이 모리셔스에 상륙했기 때문이다. 쥐, 개, 고양이, 돼지 등 인간 세계의 동반자들이 섬에 들어오게 되자, 도도의 번식 자체에 문제가 생겼다. 도도는 오직 지상에 둥지를 만들고 알을 낳았기 때문에, 손쉬운 먹이를 발견한 외래종들은 이 불행한 새의 알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거기다 도도는 한 번에 1개의 알만을 낳았다. 인간의 사냥과 서식지의 파괴로 인해, 모리셔스 섬에 인간이 상륙하지 불과 80년 만에 도도는 소리 소문 없이 모습을 감추었다. 마지막으로 목격된 해는 1681년이다.
도도가 자연에서 자취를 감추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서서히 잊히자, 이 새가 실존했다는 사실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도 나타났다. 또한 종교적인 이유로 멸종의 개념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기에 도도는 멸종되었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이들이 멸종되었다라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한 것은 19세기가 되어서였다. 19세기에 들어 인간에 의한 멸종의 사례로 도도가 대중에게 소개되자, 비로소 도도는 멸종의 아이콘이 되었다.
우리가 도도의 모습과 생태를 상상할 수 있는 이유는, 섬에 상륙한 몇몇 항해자들이 남긴 기록 덕분이다. 실력 좋은 삽화가들은 도도의 세밀화를 그려 유럽에 전파했다. 하지만 일부 상충되는 목겸담이 존재하기 때문에, 실제 도도의 모습과 생태를 정확하게 복원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영국 옥스퍼드의 애시몰린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던 마지막 도도의 박제는, 1755년 표본상태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모닥불에 던져졌다. 누군가 급하게 표본을 불 속에서 꺼냈으나, 이미 다리와 머리를 제외한 모든 부분은 유실되었다. 도도는 골격과 목격담, 일부 기록을 제외하면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도도는 문명의 팽창에 밀려 사라진 동물들 중 일부일 뿐이다. 근대가 개막된 이래 이렇게 사라진 동물들은 수백 종이 넘는다. 생전 생김새를 알 수 있는 종은 그 절반도 되지 않는다. 이러한 멸종의 행렬은 현재진행형이기에, 여전히 도도는 우리들에게 있어 큰 의미를 가진다. 코뿔소와 북극곰이 또 다른 도도가 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우리는 인류세(Anthropocene)를 살고 있다. 인류는 지구 환경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지질시대 사상 가장 번성한 종이다. 하지만 우리가 팽창한 만큼 다른 생명은 그 자리를 비워야 했다. 도도는 그러한 경향의 아주 작은 일부분이었을 뿐이다. 성자필쇠(盛者必衰),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그렇다고 해도,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는 이 현실이 불편하다. 우리는 의도하였든 아니든 끝없이 새로운 도도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도도가 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