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비스트의 눈] 개별대통령기록관 왜, 어떻게 (1부. 대통령기록물의 특성 및 그간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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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비스트의 눈(칼럼 2020-10)은 기록인님께서 보내주신 [개별대통령기록관 왜, 어떻게 (1부. 대통령기록물의 특성 및 그간의 문제점)]입니다. 공공기록과는 다른 대통령기록의 특성과 그 특성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있는 한국 대통령기록관리의 문제점에 대한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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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비스트의 눈(칼럼 2020-10)

개별대통령기록관 왜, 어떻게

(1부. 대통령기록물의 특성 및 그간의 문제점)

2020.9.17.

기록인

작년 대통령기록관은 ‘대통령기록관리 체계 개편을 위한 개별대통령기록관 건립 기본계획(안)’(대통령기록관 기획제도과-743, 2019.9.4.)을 마련하고, 최초의 개별대통령기록관 설립을 추진했다. 그러나 현재 개별대통령기록관 추진은 중단되었다. 기념관 설립 등 논란이 일자, 9월 11일 문재인 대통령은 ‘개별 기록관 건립을 지시하지도 않았으며, 그 배경은 이해하지만 왜 우리 정부에서 시작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개별 기록관은 국가기록원의 필요에 의해 추진하는 것으로 국가기록원이 판단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에 국가기록원은 9월 11일 보도자료(국가기록원, 개별 대통령기록관 설치 전면 재검토)를 내 ‘대통령의 뜻을 존중해 개별대통령기록관 설치를 전면 재검토’하기로 결정했다.

개별대통령기록관 설립 중단을 그저 또 하나의 아카이브 설립이 중단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이 글에서 거론할 대통령기록관리의 문제점은 개별대통령기록관이라는 제도적, 문화적 돌파구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 대통령의 격노와 국민들의 반대라는 틀 안에 묶여 개별대통령기록관을 더 이상 거론해서는 안 되는 무엇으로 상정하는 순간, 대통령기록관리에 있어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2101047, 제출일 2020.6.26.)에 담긴 주요 개정사항도 개별대통령기록관이라는 존재를 상정하지 않고는 진정한 의미를 발휘하기 쉽지 않다. 대통령의 유고시 지정기록물을 열람할 수 있는 대리인을 지정하는 것, 전직 대통령이 직접 지정기록물을 해제하여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개별대통령기록관 설치로 전직 대통령이나 대리인이 재임시 생산한 기록물을 불편 없이 열람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국가기록원으로부터 대통령기록관을 분리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도 개별대통령기록관을 체계에 맞게 설치하기 위함이다. 지난 필자의 글(아키비스트의 눈 : 대통령기록관 조직의 '정상화'가 시급하다, 2020.7.20.)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개별대통령기록관과 통합대통령기록관의 협업은 매우 중요하다. 개별대통령기록관의 성공적 설치 및 운영을 위해서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강화된 위상의 대통령기록관의 존재가 필요하다. 즉, 개별대통령기록관은 현재 대통령기록관리체계상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제도적 지향이다.

앞으로 3번에 나누어 개별대통령기록관의 필요성과 그 설립 방향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먼저 이 글에서는 공공기록(넓은 의미의 공공기록은 대통령기록물을 포함한 공적 영역에서 생산된 모든 기록을 뜻하지만, 좁은 의미에서 공공기록은 대통령기록을 제외한 정부부처, 지자체, 공사·공단 등에서 생산된 기록을 뜻한다)과는 다른 대통령기록의 특성을 살펴보도록 한다. 다음 그 특성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있는 한국 대통령기록관리의 문제점을 파악한다. 두 번째 글에서는 개별대통령기록관이 왜 필요한지, 마지막 세 번째 글에서는 개별대통령기록관을 어떻게 설립해야 하는지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1. 대통령의 의무와 권한

먼저 대통령기록물 생산 주체인 대통령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헌법 제69조는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이러한 직무상 의무에 따라 국정의 전반에 걸친 책임과 국방, 통일, 외교, 안보 등에 대한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의무의 수행을 위해 헌법은 대통령에게 다양한 권한을 인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은 그 헌법상 지위에 대응하여 국가원수로서의 권한(대내외적 국가대표권, 국헌수호권, 국정의 통합·조정권·헌법기관 구성권 등)과 집행부수반으로서의 권한(집행에 관한 최고지위감독권, 집행부구성권, 국무회의의장으로서의 권한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의무에 대응하는 권한의 범위를 보았을 때, 대통령의 권한은 국정전반의 최고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대통령의 권한은 대통령기록물의 특성과 관련해 중요하다. 헌법 제66조 제4항은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실질적 의미의 집행에 관한 권한은 헌법에 다른 규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가 행사한다는 뜻이다. 이 집행의 권한에는 행정부의 집행에 대해 대통령의 권한과 그 책임 하에 집행에 관한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고, 집행부의 모든 구성원에 대하여 최고의 지휘·감독권을 행사하는 것을 포함한다. 즉 대통령의 행위에는 우리나라 모든 행정권에 대한 최종적인 의사결정과 그 책임이 포함되어 있다. 집행권에는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공포하고, 집행하는 권한도 포함된다. 필요한 경우에는 위임명령과 집행명령을 발휘하여 국회의 법률을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하위 법령을 만드는 권한도 포함된다. 또 국가의 대표 및 외교에 관한 권한으로 조약을 체결하고, 외교사절의 파견·접수하고, 선전포고·강화하는 권한, 국군을 해외에 파견하는 권한도 대통령의 집행권에 포함된다.

정부를 구성하고 공무원을 임면하는 권한도 대통령의 권한에 속한다.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대통령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국무총리를 임명하고,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국무위원을 임명한다. 행정각부의 장은 국무위원 중에서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임명하게 된다. 선거에 의해 지위를 얻는 공무원을 제외한 모든 공무원의 임명에 대한 최종 권한 또한 대통령이 갖고 있는 것이다.

집행을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재정권도 대통령의 권한에 속한다. 그 권한은 예산권과 그 밖의 제정에 관한 권한으로 구분할 수 있다. 대통령은 집행부 수반으로서 국정운영에 필요한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권한을 갖고 있으며, 국가의 부담이 될 계약의 체결에 관해서도 국회의 의결 또는 승인을 얻어 집행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우리가 통상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말하는 범위에는 이런 광범위한 집행의 권한 등이 포함되어 있다. 국가기록원에서 관할하는, 대통령이 임명한 국무위원이 대통령의 집행권을 위임받아 각 부처의 업무를 처리하는 정부부처의 기록에 비해 대통령기록이 국정최고기록으로서 중요성을 갖고 있다는 의미는 바로 이러한 대통령의 의무와 권한에 기반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공공기록을 생산하는 행정기관장의 권한과 대통령의 권한은 대한민국 법체계상 질적으로 다른 권한에 기반을 두고 있다.

2. 대통령기록물의 특성

(1)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는 특성

대통령이 갖는 국정 전반에 대한 권한과 의무는 다시 고도의 정치적 행위 즉, ‘통치행위’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통치행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부정설과, 긍정설이 존재하지만, 현재 다수설은 고도의 정치행위에 대해 사법부가 스스로 그 판단을 자제해야 하고, 통치행위가 삼권분립상 입법부나 행정부에 속하는 영역이므로, 사법부의 관여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논리를 들어 통치행위를 인정하고 있다. 실제로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은 판결문에 통치행위를 명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법적 잣대로 판단할 수 없는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행위가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통치행위에 포함될 수 있는 행위의 범위는 넓다. 외교행위, 전쟁·사면·영전수여 등 국가원수에 지위에서 행하는 일정한 국가작용이나 국무총리 임명(해임) 등의 행위, 법률안 거부, 국민투표회부, 긴급명령, 긴급재정·경제명령 등 대통령 권한의 핵심을 이루는 행위들이 바로 사법적 판단이 적절하지 않은 고도의 정치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고도의 정치적 결정이라는 대통령의 직무는 대통령지정기록물제도(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17조 대통령지정기록물의 보호)에 반영되어 있다. 대통령지정기록물제도는 대통령이 정치적 논란이 있을 수 있는 기록(대통령기록물법 제17조 제1항 제6호는 ‘대통령의 정치적 견해나 입장을 표현한 기록물로서 공개될 경우 정치적 혼란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기록물’을 명시하고 있다) 을 지정하면, 최대 30년까지 강력히 보호해주는 제도적 장치다. 이러한 특단의 보호조치 없이는 대통령 권한의 핵심을 담은 기록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공공기록물과 기록물과 달리, 국회의원 2/3이 의결한 경우(제17조 제4항 제1호), 고등법원장의 영장이 있는 경우(제17조 제4항 제2호), 관리업무를 위한 대통령기록관 직원의 열람(제17조 제4항 제3호)을 제외하면 어떤 경우도 열람이 허용되지 않고, 오직 기록물을 생산한 전직대통령이나 그 대리인만이 열람이나 지정해제 권한을 갖게 된다. 이러한 대통령기록물만의 특수한 제도는 바로 대통령이 (어떤 경우 사법적 심사까지도 배제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를 하는 특수한 존재라는 인식에 기반한다. 대통령기록물을 공공기록에 비해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정도로 그 차이를 인식한다면, 대통령의 정치적 행위에 기반한 대통령지정기록물제도는 존재할 수 없다. 즉, 대통령기록은 내용상 중요성을 뛰어넘는, 일반 공공기록과 질적으로 매우 다른 범주에 속하는 기록물로 이해해야 한다.

(2) 선출된 강력한 권력이라는 특성

우리나라는 대통령제를 택하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특수한 형태의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헌법이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절충하여 내각제적 요소로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미국과 같은 순수한 대통령제 국가에 비해 법에서 규정하는 대통령의 권한은 크지 않다. 구체적으로 국회는 대통령이 지명하는 국무총리, 대법원장, 감사원장 등에 대해서 동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으며, 국무총리와 장관들의 해임을 건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유일하게 국회를 견제할 수 있는 국회해산권은 대통령에게 주어져 있지 않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의 대통령은 매우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법에 규정된 삼권분립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날로 복잡해져가는 현대사회에서 전문성을 가진 집행부의 영향력이 점차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든 법률은 국회의 동의를 통해 가결되지만, 법안을 제출하는 주체는 정부의 대표인 대통령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강력한 대통령 권한의 밑바탕에는 바로 모든 국민의 투표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라는 점도 작용한다. 지방자치단체를 제외하고, 행정부에서 대통령은 유일하게 국민으로부터 직접 선출된 공직자다. 물론 국무총리, 각부의 장관 등도 국회에서 청문회 등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선거로 직접 선출된 대통령과 같은 권한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이는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의 근거인 동시에 자신을 선택한 국민에게 직접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점은 공공기록과는 질적으로 또 다른 대통령기록의 특성으로 볼 수 있다.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은 그 행위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국민에게 높은 수준의 설명 책임 의무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공공기록물법)이 광역자치단체에 지방기록물관리기관을 반드시 설립하도록 규정하고 있고(공공기록물법 제11조 제1항), 지방자치단체에도 지방기록물관리기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공공기록물법 제11조 제3항)과 연결해서 보면 더욱 명확하다. 국민으로부터 직접 선출된 기관장에게 기록을 통한 국민에 대한 설명 책임 의무를 더욱 강하게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특성은 대통령기록관의 독립적 운영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대통령기록관은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운영을 통해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설명 책임 의무 수행을 도와야 한다)

선거를 통해 선출되었다는 특성은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하는 기관(대통령비서실 등 각종 대통령기록물 생산기관)이 선거를 계기로 매번 폐지되고, 새로 신설된다는 특성으로 이어진다. 통상적으로 대통령 당선 후, 정부를 구성하는 국무위원의 교체가 이루어지지만, 그 국무위원이 직무를 수행하는 정부부처가 모두 매번 폐지와 신설을 반복하는 것으로 아니다. 대통령 교체에 따라 정책 방향은 달라져도 집행업무의 성격까지 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행정부의 수장으로서의 대통령이 교체되면, 대통령기록물생산기관의 업무, 조직, 생산하는 기록의 내용까지 모든 것이 기존의 대통령과 달라진다. 즉, 5년에 한 번씩 기존과 전혀 다른 대통령기록물 생산기관이 새로 설립되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공기록과 구별하여 대통령기록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전문기관과 전문가, 더 나아가서는 해당 정부의 대통령기록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전문기관과 전문가가 필요하다. 국가기록원으로부터 분리를 통한 대통령기록관 조직의 정상화와 개별대통령기록관의 필요성은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3) 대통령 보좌를 그 목적으로 하는 조직

대통령기록물 생산기관의 또 다른 특징은 조직의 목적이 대통령의 업무를 보좌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대통령기록물 생산기관인 ‘대통령 비서실’의 경우 정부조직법 제14조 (대통령비서실)에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기 위하여 대통령비서실을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대통령의 권한과 의무를 다하는 것을 보좌하는 조직이라는 뜻이다. 당연히 대통령이 교체되면 대통령비서실 구성원은 대부분 교체된다. 일반적인 중앙행정기관의 경우 장관 등이 교체돼도 대부분의 구성원이 유지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또한 이들은 대부분 공공기록물 생산자가 대부분 직업 공무원제에 따라 공무원이 된 것과 달리, 대통령의 보좌를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대통령 임기 동안 임용된 ‘일시적인’공무원이다. 이들은 각 부처에서 파견한 직업공무원과 함께 대통령을 보좌하기 위한 조직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조직적 특성은 기록물의 생산 및 관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통령기록물 생산기관은 외교, 안보, 국방 등 모든 국정분야를 총괄하는 역할을 하므로, 국가의 운영상황을 파악하는데 매우 핵심적인 기록물을 생산하고 있다. 그럼에도 앞서 설명한 것처럼 대통령 보좌라는 특수한 목적을 갖고 임용된 생산자들이기에 그 생산 및 관리에 공공기록과 같은 방법론을 적용하기 매우 힘들다. 기록관이 매년 기록을 이관하고, 일정수준의 생산통제를 하는 공공기록과 매우 다른 생산환경이다. 대통령지정기록물제도는 이러한 대통령기록물의 특수한 생산환경을 반영한 측면도 있다. 생산시점에 기록관리가 개입하기 어렵기 때문에, 생산자에게 기록을 남김으로 인해서 생기는 정치적 위험을 조금이라도 덜어 생산을 독려하고자 하는 제도적 장치인 것이다.

대통령기록 생산환경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관련 제도의 설계 및 적용은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 얼마 전 개정된 공공기록물법상의 ‘폐기금지’제도(공공기록물법 제27조의3 기록물의 폐기 금지)가 대통령기록에 적용될 때, 그 입법 취지를 달성하기 매우 어려운 것과 같다. 폐기금제제도는 그 기록물이 제대로 생산되고, 등록됨을 전제로 그 기록물의 생산현황을 파악하고 금지대상 기록을 선정하는 프로세스로 이루어진다. 즉, 기록물이 등록되고 확인되지 않으면, 어떤 기록이 폐기되는지, 그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지 방안이 없다. 일반적인 공공기관에 비해 생산시점에 매우 낮은 수준의 생산통제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대통령기록관리에 있어 그 제도의 실효성은 더욱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임기 중 폐기금지 제도가 발효된다면,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의 장은 대통령기록물생산기관의 현황조사 또는 점검을 실시(공공기록물법 제27조의3 제3항)해야 하는데, 어떤 기록이 지정기록으로 지정될지 알 수 없는 생산시점에 기록물 목록 등에 대한 현황조사 또는 점검을 실시하도록 하는 것은 자칫 대통령지정기록제도의 근간을 허물어버릴 위험성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듯 대통령기록물은 생산조직, 환경적인 측면에서 공공기록과 다른 기반을 갖고 있다. 공공기록과 같은 제도와 방법으로 대통령기록물생산기관에 접근하면, 기록관리가 오히려 기록이 남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3. 그간의 문제들

대통령의 의무와 권한에 기반한 대통령기록물의 특성에 대해 살펴봤다. 그렇다면 대통령기록관리에서 중요한 것은 대통령기록물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그에 맞는 관리방안을 적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의 대통령기록관리는 여전히 대통령기록물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 장에서는 대통령기록의 특성과 관련한 그간의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궁극적으로 한국의 개별대통령기록관의 설립 지향과 방법론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제시되고 추진되어야 한다.

신뢰받지 못하는 대통령기록관리

그간 대통령기록관리의 문제점은 '신뢰부족'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이는 두 가지 범주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대통령기록물 생산기관의 대통령기록관리에 대한 신뢰부족이다. 이는 다른 말로 대통령기록관의 독립성 및 전문성 부족으로 인해 대통령기록물 생산자가 안심하고 기록을 남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의 대통령기록관리와 관련한 문제 대부분은 대통령기록관과 대통령기록물생산기관의 신뢰부족이 그 원인인 경우가 많았다. 아직도 그 해결방안을 찾지 못한 '08년 노무현 전 대통령 ‘기록물 유출논란’과 당시 대통령실 기획관리비서실관실의 주도로 추진된 국가기록원의 참여정부 비서진 고발 등은 대통령기록물을 관리하는 기관이 정치적으로 독립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정책포럼에서 발표자 안대희는 ‘법령 운영 초기부터 전직 대통령의 열람권 관련 대통령기록물 유출 논란이 발생하였으나 현재까지 미해결’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지나면서 대통령기록관리는 부실생산, 무단폐기, 부적절한 이관 등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 이는 당시 대통령비서실 등 대통령기록물생산기관의 기록관리에 대한 인식이 부재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대통령기록관리의 부실을 제도적으로 막고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해야 할 대통령기록관 및 국가기록원이 제대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낸 원인과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검찰의 무분별한 대통령지정기록에 대한 열람 및 압수는 대통령기록물 생산기관과 대통령기록물관리기관의 신뢰형성을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다. 앞서 대통령기록물의 특징을 거론하며, 대통령의 고유한 정치행위로 인해 일정 기간 동안 강력한 보호를 해주어야 그 생산을 보장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검찰의 지정기록에 대한 광범위한 열람은 대통령기록의 특성상 기록물 생산을 위축하는 역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정책포럼에서 안대희는 ‘대통령기록물의 철저한 보호를 위해 도입된 지정기록물 제도는 제도운영 초기부터 국회, 검찰에 의해 열람됨으로써 철저한 대통령기록물의 보호를 통한 생산 증진은 위기에 봉착’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대통령기록관리기관과 생산기관의 신뢰의 또 다른 측면은, 향후 대통령기록물을 생산한 대통령이 자신의 기록물을 토대로 퇴임 이후에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약속이다. (정책포럼에서 안대희는 전직 대통령 열람제도의 의의를 ‘재임 기 생산한 대통령기록물을 전직 대통령이 수시로 열람하고, 회고록 집필 등을 통해 국가적으로 소중한 자산인 국정운영의 경험을 공유하도록 하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우리 대통령기록관리기관 및 전문가들은 그러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 기회에 적절한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그 이후는 기록을 통해 국정경험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우리 대통령기록물관리는 전직 대통령에게 적극적으로 기록물 열람을 제공할 수 있는 제도와 방안을 현재까지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으며, 대통령에게 기록물을 생산하고 관리할 동력을 주는데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뢰의 또 다른 범주는 국민들의 대통령기록관리에 대한 신뢰부족이다. 그간 국민들에게 각인된 대통령기록관리의 모습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았다. 국민들은 대통령기록관리를 통해 국정운영의 책임성, 투명성, 신뢰성을 제고한다는 효과를 기대하고 전문가 및 전문기관을 신뢰했지만,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또한 대통령기록관을 통해 아카이브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홍보를 확대하여 시민들을 위한 정보, 역사 교육의 장을 제공한다는 효과를 기대했지만, 그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한 기념재단 등에서 사적으로 관리된 전직 대통령 기록의 수집과 국민의 이용을 촉진한다는 효과를 기대했지만, 이 역시 이루지 못했다. (2018년 대통령기록관 수행 ‘디지털 기반의 대통령기록관리 혁신 및 관리체계 구축 연구용역’ 인용) 대통령기록물관리 주무기관인 대통령기록관의 부실도 지적된다. 정책포럼에서 발표자 한상효는 ‘통합 전시로 대통령별 형평성 우선 고려, 대통령직에 대한 나열적 전시로 재방문 의사가 저하되었으며, 대통령기록물을 접하고 분석하는 교육프로그램의 부재로 교육학습효과가 저하되었으며, 대통령기록물 연구지원 사업의 단절로 대통령기록물 관련 연구가 저하’되었다고 평가하였다.

지난 개별대통령기록관 논란과 그로 인한 중단은 결국 대통령기록관리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대통령기록관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봉사자인 대통령이 생산한 기록을 잘 보존하고 관리해 그 최종 권리를 갖고 있는 국민들에게 제공할 의무를 갖고 있는 기관이다. 그러나 대통령기록관은 지금까지 국민들의 신뢰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다. 기록물을 적극적으로 공개하지 못했고, 국민들에게 대통령기록관리의 사회적 필요성에 대해서도 인식시키지 못했다. 모든 대통령의 기록물을 '동일'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일종의 '지상명령'에 갇혀 어느 대통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많은 국민들에게 존재감 없는 기관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은 개별대통령기록관을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로 인식하지 못했고, 그저 대통령에 대한 우상화, 예산낭비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본 글에서는 대통령기록물의 특성 및 특성에 따른 그간의 문제를 ‘신뢰’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적인 제도 및 방안인 ‘개별대통령기록관’이 왜 필요한 것인지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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