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1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에 보관중인 대통령기록물의 회수와 열람편의 방안을 청취하기 위해 봉하마을 사저로 들어가고 있는 김영호 당시 행자부 1차관(맨왼쪽)과 정진철 전 국가기록원 원장(왼쪽 두번째)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2008년 국가기록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록물을 봉하마을로 가져갔다’며 고발한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 기획관리비서관실 지시에 따른 일이었음이 밝혀졌다. 또 기록학자 블랙리스트를 작성, 기록사업에서 철저히 배제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립의무를 지켜야 할 국가기록원이 정치 보복을 거들었던 정황이 밝혀지면서 기록관리사업의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15일 국가기록관리혁신 태스크포스(TF)는 국가기록원 업무담당자 23명을 면담하고, 컴퓨터 기록 등을 살핀 결과 중립성과 전문성을 위반한 기록관리 폐단 사례들이 여럿 나왔다고 발표했다. 안병우 태스크포스 위원장에 따르면, 2008년 6월3일 국가기록원은 행자부 장관에게 “(하드디스크 회수를 위한) 고도의 정무적·법률적 판단이 필요한 사항은 사전 청와대(BH)와 긴밀한 협의하에 추진하겠다”고 서면 보고한다. 7월21일 기록원은 청와대로부터 135쪽 서류를 받아 3일뒤 노무현 전 대통령 비서관과 행정관 등 10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고발증거에 해당하는 서류 대부분은 청와대에서 받은 것이다. 그동안 이명박 전대통령 쪽은 노 전대통령을 고발하도록 기록원에 지시한 일이 없다고 부인해왔다.
대통령기록관리전문회원회는 “전향이 의심스럽다”며 신영복 교수가 쓴 현판(위 사진)을 바꿔달기도 했다. 아래가 새로 바꾼 현판. 대통령기록관 제공
이상민 전 위원(60)은 2014년 10월 세계기록협의회 국제총회 학술위원장으로 임명됐다가 돌연 취소됐다. 이 위원회는 위원들은 단 1명을 남기고 전부 교체됐다. 그뒤 이 전위원이 국가기록원에서 맡았던 교육·국제프로그램에서 맡았던 강연 등은 전부 취소됐다. 이 전위원은 대통령지정기록물제도작업에 참여했고 1997~2005년까지 근무 정부기록관리 혁신위원회 실무팀장을 맡았던 사람이다. 조영삼 서울시 정보공개정책과정은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기록연구자로 일하며 <한겨레>에 “대통령 지정기록물 반드시 보호되어야”라는 제목의 기고를 썼다가 돌연 과천과학관으로 발령을 받았다. 이들은 “노 전대통령 당시 대통령기록관리법 제정에 참여했거나 기록 중립화를 요구해온 사람들은 철저히 배제되었다”고 주장한다. ‘문제 위원’으로 지목했던 이상민 전 위원이 동아시아 기록협회 사무총장으로 내정되자, 국가기록원장이 나서서 중국에 사무총장을 넘기면서까지 저지하는 등 국내외에서 블랙리스트를 적극적으로 관리해온 정황도 드러났다.
15일 국가기록원 ‘블랙리스트’로 인한 피해상황을 증언하는 이상민 전 국가기록원 전문위원. 남은주 기자
국가기록원은 2014년 12월 고 신영복(1941~2016) 성공회대 교수의 사상을 문제삼아 그가 쓴 ‘대통령기록관’ 현판을 교체했다. 이 현판은 2008년 대통령기록관이 문을 열 때부터 달려 있었는데, 2013년 한 보수단체가 민원을 제기했다. 대통령기록관리전문위원회는 전례없이 1개 민간단체의 민원을 안건으로 올려 두 차례 논의했고 이 과정에서 일부 위원이 “신 교수가 완전히 전향했는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태스크포스는 “이번 조사에서 국가기록원장이 특정 인사들의 차별과 배제에 관해 보고했다는 증거가 드러난 만큼 국가기록원이 박동훈 전 기록원장을 고발할 것”을 권고했다. 또 대통령지정기록물제도에서 대통령지정기록물의 열람, 자료 제출, 회수 권한을 명확히 하고 대통령기록물 유출 및 파기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등 제도적인 개혁도 요구했다. 박동훈 전 국가기록원장은 문 특정인사 차별·배제를 장관에게 보고한 것은 인정하지만 “8개 위원회 20명은 실체도 없고 이행도 되지 않다”며 위법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