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파서첩(錦坡書帖)
이 서첩을 쓴 사람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내용에 나타난 연대를 미루어 보아 금파응신(金波應信 : 1833∼1894)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이 스님의 자는 필문(弼文), 호는 금파(金波)이다. 범해각안(梵海覺岸)이 저술한 《동사열전(東師列傳)》에는 응신 스님에 대해 "지식과 행동거지가 단정 신중하였으므로 일을 하되 허물이 없었고, 벗들 중에는 지기가 늘 끊이지 않았고, 인품이 고매하였다. 불법에 대한 지식이 탁월하고, 행동이 청정하며, 품격이 원만하다는 평판을 받아 여러 차례에 걸쳐 대둔사[해남 대흥사]총섭직을 맡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검은 묵지 위에 금니와 송화가루로 쓴 이 서첩(書帖)은 30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표제에 범체(梵體)라고 되어 있다. "五臺宮池對花…"라는 글이 보이고 있어 스님이 오대산에 주석하실 때 쓰신 것으로 보인다. "己丑 季秋 重九日 五臺山人 金波書"라는 기록이 있다. 만일 금파응신이 맞다면 그의 나이 57세 때 묵적(墨迹)임을 알 수 있다. "자금광취(紫金光聚)", "보리비수 원각무방(菩提非樹 圓覺無方 : 보리는 나무가 아니요, 원각은 모남이 없다)"라는 선게(禪偈)가 보이고 있어 선사의 정신세계의 일면을 읽을 수 있다.
금파선사
조선시대 188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