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기

투명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촌철살인으로 이름난 노회찬의 말은
사실, 투명인간의 시선이 체화되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말들이었다. 
그가 투명인간의 시선으로 빚은 말들을 돌아본다. 
(여기서는 관련 이미지를 추가하지 않았다. 이 온라인 전시회를 보시는 분들이 노회찬의 ‘말’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투명인간의 시선으로 ‘상식’의 허점을 짚다.

 

“나는 이들을 306세대라 부른다.”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노회찬은 
386세대(지금의 586세대)와 대비하여 306세대라는 말을 만든다. 
‘386세대’라는 말에는 대학을 다녔다는 의미가 들어 있지만,
60년대에 태어난 30대 중에는 8(80년대 학번)자가 없는 사람들, 
즉 고교 졸업 후 노동자가 된 사람들이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들을 306세대라 부른다.”

이들은 노회찬이 언제나 주목한 ‘투명인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386이 정치를 석권하던 시절,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그 세대의 노동과 정치가 공론의 장에 
올라왔던 일이 있었던가.

이런 점에서 노회찬은 언제나 
‘상식’을 비틀고, 주류적 가치관에 문제제기하는 정치인이었다. 
다음 사례도 마찬가지다.


 

“강남북 부자들의 격차를 해소해줄 지는 몰라도 
강남북 격차를 해소한 것은 아닙니다.”


2010년 5월 18일 서울시장 선거 MBC 백분 토론에서 
노회찬은 당시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를 압도했다. 
 
“(자율형사립고인) 하나고등학교가 무슨 강남북 교육격차를 해소합니까? 강북에다가 루이비통 명품관을 지어 놓으면 강남북 격차가 해소됩니까? 강남북 부자들의 격차를 해소해줄 지는 몰라도 강남북 격차를 해소한 것은 아닙니다.”

‘격차해소’라는 지극히 옳은 말 뒤에 숨은
불평등 강화의 의도를 
노회찬은 정확히 짚어냈다.
투명인간의 시선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노동자이므로 감형을 한다!”

 
“‘수십 년간 땀 흘려서 농사를 지으면서 우리 사회에 기여한 점을 감안하여 감형한다.’거나 혹은 ‘산업재해와 저임금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땀 흘려 일하면서 이 나라 산업을 이만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공로가 있는 노동자이므로 감형을 한다’, 이런 예를 본 적이 없습니다.”(2004년 10월 14일 국정감사)

회사 들어갈 땐 정장에 기세등등한 재벌도, 법원이나 검찰을 오갈 때 흔한 아이템은 환자복에 마스크다. 반쯤 고개 숙여 연출한 ‘반성하는 표정’은 기본이다. 이 오래되고 불성실한 패션에 대한 법원의 화답이 ‘국가경제에 이바지한 공이 크므로...’였다. 

국가가 노동자보다는 기업편이고, 서민 보다는 부자들 편이라는 점을 이 보다 잘 나타낸 표현은 드물다. 

그래서 그런가. 
언제나 투명인간의 시선을 자신의 무기로 했던 노회찬은 고향이 어디냐는 물음에
늘 그렇듯이 이렇게 재치로 화답했다.
 
“‘노동자 서민의 땀과 눈물과 애환이 서려 있는 곳, 그곳이 나의 고향입니다.’”(2016년 2월 1일 총선 창원 출마 선언문) 노회찬, ⟪함께 꾸는 꿈⟫, 후마니타스, 2019년, 139쪽.


 

 국가가 아니라 그 속의 ‘사람’



투명인간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국가 이전에 사람을 본다는 말이다.
이런 그의 관점은 말 속에서 어떻게 드러났을까.
 
 

경제 살리겠다고 약속하고선 본인 경제만 챙긴 대통령


국가는 부자가 되고 있는데, 국민은 가난한 나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MB 드디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섰군요. 경제 살리겠다고 약속하고선 본인 경제만 챙긴 대통령” 

2018년 3월 13일 트위터에 노회찬이 올린 글이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은 많이 양보해야 부자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이었고, 
그 보다는 본인경제만 살리겠다는 말이었다. 
국가를 ‘기업’으로 보는 CEO출신 대통령이었으니 말해 무엇 할까.


 

“천장에서 비가 새고 있는 데 디자인 좋은 벽지로 방 안을 도배할 겁니까?”


서울시도 마찬가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과거에도 지금도
눈에 띄는 큰 공사를 좋아한다. 
서울시민은 남루해도, 서울시는 번쩍 거린다. 

노회찬은 이렇게 일갈했다.
 
“천장에서 비가 새고 있는 데 디자인 좋은 벽지로 방 안을 도배할 겁니까?”
(2010년 5월 18일, 100분 토론-선택 2010, 서울시장 후보 초청 토론 중) 
 

 

“민의가 아니라..자의만 있는 거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물었다.

진행자: 개혁입법 동맹을 통해서 반드시 통과돼야 되는 법 세 가지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노회찬: 저는 그중에 하나가 공수처(입니다).   

노회찬 의원은 “공수처법이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상가임대차보호법, 미투 법안 등을 추가로 들었다. 

“저는 좀 국회가 국민의 민의를 대변하는 민의의 정당이라면 그 이름에 걸 맞는 행동들을 해야 하는데 전혀 민의와 상관없는 일들을 하고 계셔서 국회 불신이 제일 높아요.” 

진행자 말에 노회찬은 이렇게 대답했다.
 
“(국회가) 민의의 전당이라고 했는데 민의가 없는 거죠. 자의만 있는 거죠.”
(2018년 6월 김어준의 뉴스 공장)

투명인간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이렇게 공동체 구성원의 눈높이에서 벗어난 것들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 ‘자의’다. 


 

우리는 “민생투어를 하지 않는다.”


노회찬은 투명인간이 행복한 새로운 세상을 갈망했다.
그의 말들 속에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있었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땀방울이 스며 있었다. 


 

“선장부터 먼저 살리는 것을 법제화하겠다는 거죠.”


박근혜 정부가 언제든지 정리해고가 가능하도록 노동법을 개악하려고 할 때
노회찬은 이렇게 말했다. 
 
“타이타닉이 물에 빠졌을 때는 약자부터 구했죠. 그런데 세월호는 강자부터 탈출했어요. 두 개의 극단적인 다른 방안이 있는데, 지금 정부에서는 약자를 우선 희생시키는 방법을 쓰고 있어요. 선장부터 먼저 살리는 것을 법제화하겠다는 거죠.” (2015년 11월 24일 노유진의 정치카페 77편)

정리해고의 폭력성에 대해서는 이렇게도 말했다.
 
“프랑스 노동자는 해고되면 침대에서 뛰어내리는 정도라면, 한국에서 해고되면 2층 옥상에서 뛰어내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 뛰어 내리려고, 해고 안 당하려고 굴뚝에 올라간다는 겁니다.”“왜 목숨 거느냐, 나가면 죽으니까, 안 죽으려고 목숨 건다는 거죠.”(홍기빈과의 인터뷰, 한국노동자의 ‘과격성’에 대해) 노회찬 외, ⟪진보의 재탄생-노회찬과의 대화⟫, 꾸리에, 2010년, 305쪽


2009년 쌍용차 파업 당시에, 그는 절박했다. 
 
“공권력을 투입해서라도 물과 음식물을 회사 안으로 반입해야 합니다. 원래 공권력은 이럴 때 쓰라고 존재하는 것입니다.”(2009년 7월 30일 트위터. 쌍용자동차 파업 당시) 노회찬, ⟪노회찬의 진심⟫, 사회평론, 2019년, 383쪽. 


공권력의 존재 의의를 이 보다 정확히 짚어낸 말이 있을까. 
하나 같이 선장부터 살리려는 권력의 시도 앞에 노회찬은 투명인간의 말을 무기로 싸웠다. 


 

통렬한 현실 비판


비판은 날서게 하는 게 아니라, 날카롭게 하는 것이다. 
날서 있는 말에 위트와 유머는 끼어들 자리가 없지만,
투명인간의 시선이 있어 날카로운 비판은 격이 다르다. 

 
 “아침에 자기 집이 아닌 남의 집에서 눈을 뜨는 국민이 전체 국민의 절반입니다. 지금 대학 졸업한 청년 10명 중 3명은 내일 아침 출근할 직장이 없습니다. 내일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출근하는, 자가용 몰고 출근하는 분들 중의 절반은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직장에 출근하고 있습니다. 아침이 기다려지지 않는 대한민국, 이게 오늘의 모습입니다.” (2017년 4월 9일 KBS 일요토론)
“가정 형편이 어렵고 가계 부채가 많은데 대기업 다니는 큰 아들을 갖다가 분가시켜서 두 집 살림하겠다. 그리고 학비도 필요하고 학교 다니는 애들을 갖다가 비정규직인 둘째 아들이 맡아라. 말이 안 되는 거죠.”(2014년 1월 1일 JTBC 뉴스9 특집토론, 수서발 KTX 민영화와 관련하여.)
“이렇게 되면 2차 분배의 가랑이가 찢어집니다. 지속 가능한 복지를 위해서도 1차 분배에 대한 노력이 절실합니다.”(노유진의 정치까페 ‘저도 나라에서 주는 용돈 받을 수 있나요’편, 복지는 1차 분배이므로 1차 분배에서 개선할 점은 개선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민주노동당은 민생투어를 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
그것도 투명인간과 함께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은
투명인간이 사는 삶의 현장을 결코 ‘투어’할 수 없는 법이다. 
 
“민주노동당은 민생투어를 하지 않는다. 왜냐면 민주노동당에게 민생현장은 바로 고향이고 또 삶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자기 고향을 ‘여행’하고, 자기 마을을 ‘관광’하며, 자기 집을 ‘견학’하는 사람은 없다. ‘민생투어’를 한다는 것은 ‘민생현장’이 바로 남의 고향이고, 다른 사람들의 마을이며, 남의 집안일이기 때문이다.”(2004년 3월 27일 난중일기)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 사회평론, 2018년, 268쪽.
 
대신, 그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절절히 소망했다.

전원책: 하루에 15명 이용하는 역에 직원이 17명입니다...(중략)...문제 있지 않습니까?
노회찬: 철로 보수하고 하는 사람들이예요. 불 안 난다고 소방관들 월급 안 줍니까? 달걀 안 나온다고 닭한테 모이 안 줘요?(2014년 1월 1일 뉴스9 특집토론 )

공기업 민영화 논리에 대한 정확한 비판이다.

“산소가 무상이라고 해서 숨 가쁘게 호흡하는 사람이 많은가. 너무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2012년 4월 7일 KBS심야토론

복지확대로 인한 도덕적 해이를 비판하는 말에 대한 그의 답이다.
 
<참고자료>

강상구, ⟪언제나 노회찬 어록⟫, 루아크, 2019년.
구영식‧노회찬,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비아북, 2014년.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 사회평론, 2018년.
노회찬, ⟪함께 꾸는 꿈⟫, 후마니타스, 2019년.
노회찬‧유시민‧진중권, ⟪생각해봤어?⟫, 웅진지식하우스, 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