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기

6411연설 그 전과 후

 처음으로, 6411버스를 타다.

 

‘6411번 버스’ 


2010년 4월 13일 새벽 4시 30분. 노회찬은 서울시장 예비후보로서 6411번 버스 첫 차에 오른다.  6411번 버스는 서울 구로구 거리 공원에서 출발해, 강남을 거쳐 개포동 주공아파트 1단지까지 이동하는 버스다. 대략 1시간 40분의 거리. 버스요금으로 노회찬은 1,000원을 냈다. 
 
그림  1. 6411버스에 탑승한 모습


새벽 4시30분에 출발하는 수많은 버스 중 노회찬은 왜 하필 6411번 버스를 탔을까.

"구로에서 출발해 강남에 도착하는 노선이기 때문에 상징성이 있습니다. 6411번 버스 꼭 타셔야 합니다." 


당시 구로와는 정반대인 상계동에 살았던 노회찬이 다른 버스도 많은데, 꼭 6411번 버스를 타야 하냐고 묻자 오재영 대표비서실장이 답했다. 
구로와 강남을 잇는 6411번 버스, 노동자들의 상징적 일터와 대한민국 부의 대표적 공간. 6411번 버스의 궤적은 노회찬의 정치와 닮아 있었다. 
 

“제일 힘드신 게 뭐예요?”


노회찬은 버스 안 모습을 담아 '노회찬의 새벽 첫차'라는 이름의 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 

"제일 힘드신 게 뭐예요?"
"우리요? 어휴 일하는 데 힘들다고 하면은 안 되죠."
"아니, 일이야 뭐 또 다 잘 하시겠고."
"힘드는 거는 저기 아침에 버스 타는 게 힘들죠.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여기서 많이 시달리니까, 다른 거는 뭐."

그림 2. 6411버스 내부 풍경

 

“빌딩에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마른 반찬으로 도시락밥을 드시는 분들”


버스에서 내린 노회찬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새벽 4시 10분에 대림동에서 버스를 탔는데 종점인 개포동까지 왔습니다. 5시 40분이 지금 시각이고요, 1시간 반 걸렸습니다. 흔히들 새벽 첫 버스하면 승객이 별로 없고 텅텅 빈 버스로 생각하기 쉬운데 오히려 새벽 첫 버스가 타자마자 승객이 완전히 만원이 됐습니다. 이 콩나물시루와 같은 버스를 1시간 이상씩 타고 출근하는 분들, 그분들의 평균 연령이 60대가 넘는 것 같습니다. 

참 어렵게 사시는 우리 서울 시민들의 모습을 오늘 뼈저리게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일하는 것보다 출근하는 게 더 힘들다고 말씀하시는 저분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첫차 운행 편수를 늘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점심 때 빌딩에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국이나 찌개도 끓이지 못하고 마른 반찬으로 도시락밥을 드시는 분들, 참으로 가슴이 아려옵니다.

결국 서울을 만들고 있는 분들, 서울을 떠받들고 있는 많은 분들이 이 새벽에 힘든 출근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림 3 . 6411버스에서 내린 후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당대표로서의 마지막 일정


2010년의 서울시장 선거에서 노회찬은 패배한다. 그리고, 선거 결과에 책임지기 위해 노회찬 및 당 지도부는 총사퇴한다. 몇 가지 당의 당면 문제를 마무리한 뒤의 일이다. 평당원으로 복귀하기 전 노회찬은 마지막으로 당사가 있는 건물의 청소노동자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한다. 2010년 10월 15일의 일이다. 
 
그림 4. 2010년 10월 15일 당사 청소노동자와의 점심 식사 

 
"저는 오늘 물러납니다. 진보신당 대표로서 마지막 공식일정은 당사가 입주한 건물 청소용역 아주머니들과의 점심식사입니다. 늘 곁에서 수고하시지만 투명인간처럼 존재를 무시당하는 분들과 늘 함께 하겠습니다." 
노회찬이 트위터에 남긴 말이다.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2년 후 노회찬은 진보정의당 출범식에서 당 대표를 수락하며 연설한다.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6411번 버스가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이 날의 연설 때문이다. 

“이 버스에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을 해야 하는 분들입니다......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저희 사무실을 같이 씁시다.”



2016년 5월 30일. 그 날은 20대 국회 개원 첫날이었다. 노회찬은 국회청소노동자들과 점심식사를 같이 하며, 이렇게 인사했다.

“저희의 이런 행사는 사진 몇 장 찍으려고 형식적으로 하는 행사는 아닙니다. 현역의원으로서 정의당의 의원들은 특히 여러분들과 같은 공간에서, 국회라는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직장동료들입니다. 비록 맡은 바 업무가 차이가 있을지언정, 국민을 위해서 한 공간에서 일하는 동료라는 의식을 저희는 늘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림 5. 2016년 5월 30일 국회 개원일 국회청소노동자와 함께 한 모습

그림 . 2016년 5월 30일 국회 개원일 국회청소노동자와 함께 한 모습 

이때 국회사무처는 업무공간이 부족하다면서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합사무실과 휴게실을 비우라고 통보한 상태였다. 노회찬은 “저희들이 노력을 할 것이고, 혹 일이 잘 안 되면, 저희 사무실을 같이 씁시다.”라고 했다. 

국회환경미화노조 위원장이었던 김영숙은 그때를 이렇게 기억한다.

“나중에 정말 노조사무실이나 휴게실이 없으면 당신 사무실에 와서 같이 쓰자는 그 말씀에 굉장히 저희들은 큰 힘을 얻었죠. 왜냐하면 그렇게 말해주신 분이 없었고, 어쨌든 퇴거하라면 오갈 데 없이 그냥 한 구석진 자리에서 쉴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도 불구하고 노회찬 의원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저희들이 그 이후에 노조사무실하고 휴게실도 번듯하게 좋은 곳으로 만들어주셨고요.”
 

청소노동자, 노회찬의 마지막을 배웅하다.

 

“그 양반은 마음을 다해서 사람 취급을 해줬어요.”


청소노동자와 항상 함께 해왔던 노회찬이 떠난 날 이번엔 국회 청소노동자들이 그와 함께 했다. 영결식이 진행된 2018년 7월 27일 오전, 한 언론사의 인터뷰에서 국회 청소노동자 조정옥은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제일 밑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잖아요. 대부분 의원들은 아는 척도 하지 않고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아요. 그런데 그 양반(노회찬 의원)은 마음을 다해서 사람 취급을 해줬어요.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해줬어요."(<아시아경제>, 2018.7.27.) 

또 다른 청소노동자 조영옥은 이렇게 기억한다.

"저희에게 한결 같이 반갑게 맞아주시고 환하게 웃어주셨다"며 "겸손히 머리 숙여 인사하고, 웃어주시고, 고생한다고 격려해주신 분"으로 기억한다(서울경제, 2018년 8월 4일).

 
그림 6. 국회 청소노동자 간담회 모습

마지막을 배웅하다.


"사실 그때 운구차를 배웅할 엄두도 못 냈어요. 근무시간이기도 했고, 더군다나 우리는 마음대로 활동할 수 없으니까. 나중에 빈소에 가서 문상만 할 줄 알았지... (중략)...도저히 가만있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우리를 투명인간에서 사람대접 받게끔 끌어내준 분인데 마지막 모습은 봬야 하지 않겠냐고...그래서 시간 되는 사람들 모아서 바로 나간 거예요. 우리가 그 분께 할 수 있는 마지막 진심이었어요.“

국회청소노동자 김영숙의 말이다.

청소노동자들은 운구차가 지나는 길옆에서두 손을 모으고, 누구는 오열하고, 누구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노회찬을 배웅했다.

 
그림  7. 2018년 7월 27일 영결식 당시, 민주노총 페이스북.
 

노회찬의 생전 목소리,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2018년 7월 26일 저녁 서울 연세대 대강당. '진보정당 대표의원 자유인‧문화인‧평화인 고 노회찬 국회의원 추도식'이 열렸다. 

추도식에서 울려 퍼진 건
그 ‘6411연설’이었다.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 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을 불렀던 노회찬, 
그의 정신은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어떤 실천이 필요한지 묻고 있다. 

 
<참고자료>

조현연, “'노회찬 하면 떠오르는 것' 여덟 장면: 기록으로 톺아보기 11화-왜 노회찬은 6411 버스를 탔을까, 여태 몰랐던 이야기”, 2020.12.17. 오마이뉴스.
조현연, “노회찬 하면 떠오르는 것' 여덟 장면: 기록으로 톺아보기 12화-마지막은 그분들과 점심"... 투명인간 놓지 않은 노회찬”, 2020.12.17. 오마이뉴스.
조현연, “노회찬하면 떠오르는 것, 여덟 장면: 기록으로 톺아보기 ⑧-2 마지막 배웅하는 청소노동자, 이런 의원 또 있을까”, 2020.12.31.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