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슈퍼의 1979년 담배소매인지정서
동산슈퍼의 1979년 담배소매인지정서 담배소매인지정서 소매소 :강서구 방화동 615-54 주소 : 상동 성명 : 하OO 주민등록번호 : 42OOOO-2OOOOO 1942년 O월 OO일생 지정기간 : 1979. 7. 1. 부터 1984. 6. 30 까지 위와 같이 담배소매인으로 지정함 1979. 7. 1. 영등OOOO 지정 방화2동의 ‘동산슈퍼’는 Y자 형태의 골목이 만나는 끝부분에 있어서 누가 보아도 슈퍼를 하기에 알맞은 자리였다. 하교하거나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골목을 들어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만나야만 하는 동산슈퍼. 단골이었든 아니든 이 근방에 살았던 사람들은 오랜 기간 동안 이 앞을 지나다니면서 관련된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법 하다. 약 40년 가까이 동네 주민들과 역사를 같이 했던 ‘동산슈퍼’는 2022년 5월 13일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했다. 주요 사유는 주인 할아버지의 건강 악화. 정들었던 자리를 대신할 세입자가 장사를 언제부터 시작하셨는지 여쭈었더니, “글쎄, 한 30년 했나? 아닌가 40년인가? 몰라~ 이제 나이 들어서 힘들어” 새로운 세입자는 이 자리에 디저트 가게를 차릴 것이라고 했다. “디저..뭐? 몰라~ 그냥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어.” 할아버지는 후련하면서도 섭섭하다. 세입자는 자기 장사를 시작할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동산슈퍼’의 흔적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동산슈퍼’의 메인 상품이었던 담배를 슈퍼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문밖에 설치했던 알루미늄 담배 쇼케이스 역시 철거 대상이었다. 철거하는 도중 하나의 문서가 발견되었다. . 세입자는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이거 어떻게 할까요?” “버려~ 알아서 해~” 문서에는 할아버지가 자세히 기억하지 못하는 정보가 적혀있다. ‘1979. 7. 1’ 바로 이 날짜가 바로 동산슈퍼가 담배소매인으로 지정되어 영업을 시작한 날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소위 ‘담배권'은 매우 중요했다. 슈퍼에서 판매하는 대다수의 품목은 원한다면 누구나 소매인으로서 장사를 할 수 있었지만, 담배는 인근 50m 혹은 100m 라는 지정거리 안에서 소매를 할 수 있는 사람을 1인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흡연 권장(?) 사회였던 당시에 ‘담배권'은 슈퍼라는 이름을 내걸고 장사를 할 수 있는 일종의 자격증과 같았다. 정부는 지정거리 필요의 주된 명분에 대해 골목상권의 과다 경쟁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알고 보면 당시 국가적으로 담배 판매를 독점하고 관리하였던 전매청 관리상의 편의가 주된 이유일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건 ‘담배권'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많았고, ‘담배권'은 한정되었다. 전매청은 ‘담배권'의 공정한 분배를 위해 어느 해는 선착순으로 신고받기도 하고, 어느 해는 추첨하기도 했다. ‘담배권'을 얻는 데 실패한 사람들은 담배소매인 지정거리를 확대를 외쳤다. 그래야 ‘담배권'의 개수도 늘고 자신의 기회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2022년의 ‘동산슈퍼’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는 영업을 종료하는 마당에 의 처리 따위야 대수로운 일이 아니겠지만, 1979년의 ‘동산슈퍼’ 아저씨, 아줌마에게 이 문서는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이 문서를 시작으로 아저씨, 아줌마는 장사를 시작했고, 건물을 짓고, 자식들을 길러낼 수 있었다. 영업을 종료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1979년의 는 쓰임이 다한 문서일지 모르나, 아예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서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소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서를 획득한 세입자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 (1) 담배소매인지정서의 서식 1979년 당시 담배소매인지정서의 서식이 어떠하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웹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담배소매인지정서의 서식은 국가법령정보센터가 제공하는 1989년 담배사업법 시행규칙의 별지로 삽입된 담배소매인지정서의 서식이다. (1987년 전매청이 폐지되고 한국전매공사로 개편되었다가 1988년 한국담배인삼공사로 명칭을 전환하면서, 정부는 비로소 1989년 담배사업법이 제정하였다.) 1979년의 서식과 1989년의 서식은 대부분 차이가 없지만, 담배사업법이 제정되면서 1979년의 ‘위와 같이 담배소매인으로 지정함’의 문구가 ‘담배사업법 제16조 및 동법시행규칙 제11조제5항의 규정에 의하여 위와 같이 소매인으로 지정합니다.’로 변경되었다. 담배사업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별도의 볍률 규정 없이 담배 사업에 대한 규칙을 정하는 것은 전매청의 단독 권한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2) 담배소매인 지정기간 1979년, 담배사업법이 제정되어 있지 않았던 당시에서 담배소매인 지정기간이 5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의 관습이 남아있어 현재까지도 담배소매인 지정기간은 5년이다. (3) 1979년 당시 강서구 담배 관련 지정기관 문서가 훼손됨에 따라 마지막 하단의 텍스트가 잘 보이지 않지만, 어렷풋이 ‘영등OOOO 지정’라는 글씨가 보인다. 현행 법률의 지정기관이 행정구의 장임을 생각했을 때 훼손된 글씨를 ‘영등포구청장 지정'으로 추측할 수도 있지만, 이 부분은 확실하지 않다. 지금의 강서구는 1963년 김포군에서 서울 영등포구로 편입되었다가, 1977년 분리되어 신설되었기 때문이다. 소매소의 위치가 ‘강서구 방화동 615-54’라고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방화동이 강서구로 편입되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1979년 강서구의 담배권 관할은 아직 영등포구에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당시 강서구 담배 관련 지정기관이 행정구의 장이었었다면, 1979년의 지정기관의 장은 ‘강서구청장'이어야 하는데, 해당 문서에는 ‘영등OOOO 지정’로 적혀있기 때문이다. 세입자는 자신이 앞으로 장사를 할 자리의 과거 모습이 어떠하였는지를 궁금해하는 별난 사람이다. 세입자에게 ‘동산슈퍼’의 1979년 는 과거의 ‘동산슈퍼’의 모습을 더욱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열쇠와도 같았다. 세입자는 자신의 가게 어딘가에 과거 ‘동산슈퍼’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동산슈퍼'에서 사용했던 알루미늄 담배 쇼케이스를 재활용하여 디저트 패키지 쇼케이스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대다수 사람의 기억 속에서 ‘동산슈퍼’는 점점 사라지겠지만, 그래도 누군가 기억하고자 한다면 그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게끔 하고 싶었다. 다들 눈치를 채셨겠지만, 세입자는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사람은 ‘강서 아까비'라는 코너를 통해 강서구와 관련된 오래된 문서 및 사진 등을 수집하고, 기록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재해석하고자 한다. 동산슈퍼의 1979년 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사소해 보이지만 의외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많은 도움과 기증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