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신기촌 사람들
“진흥요업 후문으로 하나둘 생기게 된 게 신기시장이에요” _김종린
양지원
게시일 2021.11.02  | 최종수정일 2022.08.25

진흥요업 후문으로 하나둘
생기게 된 게 신기시장이에요
 




구술자 : 김종린 (신기시장 상인회 회장, 신기촌 일대 37년 거주)
 
+1차 인터뷰
- 채록일 : 2018년 7월 31일
- 채록장소 : 신기시장 상인회 사무실
- 채록자 : 박성희, 이의록, 유인숙
 
 
예전에 이 동네가 어땠는지 다 기억나세요?
여기가 옛날 화장터였고 중국 사람들이 이쪽에서 농사지었었고 그러던 지역이었죠. 진흥요업 다니는 사람들 상대로… 문학동, 선학동, 연수동 쪽이 농장이었어요. 그쪽 사람들이 푸성귀 같은 거 농사지은 거(가져다) 아주머니들이(팔았어요)…. 진흥요업 후문 신기시장 앞에까지 초소가 있었어요. 지금도 여기 파면 도자기 나와요. 그래서 진흥요업 후문으로 하나둘 생기게 된 게 신기시장이에요. 남부시장은 생긴 지 오래 안됐어요. 남부시장은 광성고등학교 이사장이 그 사람 땅이었어요. 거기 뻘밭이었는데 업자들 시켜 지어서 분양한 거예요. 남부시장이 제일 얼마 안됐어요. 신기시장 다음으로는 중앙시장이나 서부시장이 오래됐죠. 남부시장은 인위적으로 만든 시장이니까 이렇다 할 역사는 없고 지역적으로 상권이라는 게, 시장이 잘되면 그 지역이 살아요. 활성화가 되고. 비근한 예로 도화1동 제일시장 같은 경우 옛날엔 굉장히 컸었잖아요. 그랬는데 지금 그 시장이 죽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주안사거리까지 다 죽었잖아요. 주안사거리 그쪽이 옛날에는 메이커 매장이 다 있었어요. 책방 그런 것도 그렇고 거기가 중심지였었는데 지금은 한심스러울 정도예요. 거기 재향군인회 건물 있는데 그게 지금 보증금을 옛날에 7억 얼마를 받았는데 지금은 2억에 내놔도 안 나갈 정도예요. 그 정도로 다운이 된 거예요.
 
좀 지나야 될 것 같아요.
지나면 지날수록 안 될 것 같아요.
 
그래도 주안4동이 개발되면… 주안초등학교 부근 다 부셨거든요. 사람들이 그걸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역 상권이 살려면 시장이 일단 가치가 있어야 작은 상점들이 다 살더라구요. 그래서 우리 지역 자체로는 우리 시장이 중요하다고 봐야 돼요. 시장이 죽어가면 이 지역상권이 다 죽게 돼요.
 
제가 들은 얘긴데 실향민들이 중국에 있다가 박대통령 때인가 여기로 이주시켰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거는 이제 신기촌이란 어원이 그래서 나온 거예요. 새 신(新)자, 일어날 기(起)자, 새로 일어나라. 신기촌 하면 보통 주안3동, 주안7동, 주안8동을 가리키거든요. 여기가 맨 처음에 서부동이었어요. 서부동이었다가 주안3동이었다가 3동에서 7동이 분동되고 7동에서 8동이 분동 된 거예요. 커진 거지 이를테면… 그게 무슨 얘기냐면 옛날 서부동을 신기촌이라 그랬거든요. 저쪽 동인천 쪽 재개발 할 때하고 이 재개발 이주민들을 보낼 데가 없으니까 여기가 중국 사람들이 국유지를 무단 점유해서 농사를 지었으니까 그걸 내보내고 횟가루로 10평씩 잘라서 준 거예요. 그래서 여기가 전부 10평이에요. 그래서 옆집이 팔고 나갈 때 사면 20평이 된 거고 그래서 여기 전부 10평씩이에요.
 
처음 시작할 때 그렇게 시작한 거네요.
네, 10평으로 시작했어요.
 
그걸 아는 분이 별로 없으시더라구요.
여기 활성화사업 할 때 재개발 할 때 남구에서 제일 고민했던 부분이 여기가 10평씩이라 솔직히 10평이면 한식구가 살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고민 고민하다가 땅을 지금 집을 짓게 되면 길을 내놓고서 짓잖아요. 그런 거 없이 무조건 10평 다 지어라. 1층이고 2층이고 그렇 게 허가를 낸 거예요. 그래서 여기만 10평짜리들이 빼쭉 3층씩 올라 가고 그런 거예요. 그런 비하인드가 있네요. 여기 골목이 참 묘한 골목이에요. 이건 지금에 와서 재개발하기도 어렵고…….
 
선생님 이거를 기록해놓고 시장 인근에 이야기들이 많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여길 제일 먼저 해보려고 하는 거예요.
네, 좋네요.
 
저 골목으로 들어가면 저쪽에 한 동네 공간처럼 조그맣게 시장이있는데 거기는 뭐예요.
거기는 서부시장이에요. 거기도 꽤 오래됐어요.
 
안 보이는 것처럼 숨어있는 공간이어서, 우린 여기를 다 신기시장으로 생각하잖아요.
우리가 선도시장이 되면서 그 의미가 없어졌어요. 중앙시장 큰길을 중앙시장이라고 하는데 저 끄트머리…….
 
여기 전체를?
아니.
 
동그랗게 돼 있는 곳?
아니, 지금 현재 있는 게 내가 지금 설명한 중에서 지금 진흥요업이 이렇게 돼 있었어요. 여기 초소가 있었어요. 여기가 후문이었다고. 진흥도자기 망루가 있었어요.
 
진흥요업(중심으로) 주변 사람들 삶의 패턴이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사이렌(소리)도 나고…
그렇죠. 처음에는 진흥도자기였다가 진흥요업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망루가 있고 후문이어서 쭉 신기시장이 된 거예요. 그러다보니 여기까지 뻗쳐나갔죠. 그랬는데 여기는 여기서 안 받아줘서 서부시장이 된 거고 여기는 원래 넓은 길이라 중앙시장이라고 번영회가 있었는데 없어졌어요. 그래서 여기하고 여기는 신기시장으로 들어오겠다고 했고 남부시장은 신기시장으로 합친다고 그래서 이름을 신기시장이라고 하면 이 사람들도 자존심이 상하고 하니까…….
 
연합으로?
그건 가칭이고 지금은 이거예요. 
 
신기문화관광시장?
이거를 다 합친 거예요.
 
합의가 다 된 거예요?
합의가 된 거예요.
 
축하드립니다. 추진하느라 고생하셨잖아요.
합의만 됐어요. 서서히 (명칭을) 쓰고 있어요. 하루 이틀에 된 게 아니에요.
 
하실 일이 많으시죠. 여러 가지가 있어서 몇 년 전부터 이 얘기가 있었는데…….
그래서 신기문화관광시장이 된 거예요.
 
지속발전협의회 통해서 저희랑 같이 두 세명 정도 나와서 인터뷰하면서 녹취하면서 풀어서 전체편집을 할 거거든요. 지금 회장님이1차 인터뷰 대상이에요.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기억에 남아있거나 아니면 그때 시작해서 아들이든 누구든 2,3대 하신 분들이 있다거나 그러면 좀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우리 아들이 이어받은 거예요. 내가 36년을 했잖아요.
 
신기시장이 태어난 해가 몇 년도예요.
공식적으로는 75년도라고 하는데 실은 훨씬 이전이에요. 처음부터 시장하자 하고 한 게 아니고. 하다가 10년~20년 지나가지고 우리 번영회 만들자 해서 됐기 때문에 실제 시작은 10년 더 앞섰죠.
 
회장님이 산 증인이시네요. 
내가 이런 걸 잘 알고 있는 이유가 처음부터 번영회 일을 계속 봤어요. 총무도 여러 번 보고 모든 직책을 다 봤으니까. 들어오자마자 이사를 시키더라구. 그래서 모든 걸 다 봐왔기 때문에 지금은 하나둘 죽고 이사 가고 하다보니까 지금 몇 명 안 남았어요.
 
그래도 소개 시켜주세요.
그 분들은 논리적으로는 잘 모르지. 그냥 종사만 했으니까.
 
그 분들이 기억하는 기억의 편린들만 있어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니까…….
 
그 분들 소개시켜주시고 회장님 인터뷰하고 그 다음에 최근에 지금 현재 있는 분들 해서 (모으면) 재밌는 얘기들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이야기 나온 것 중에 괜찮은 것들로 내년에 극도 만들고,주안7동 마당극 하려고 노력했는데 안됐었잖아요. 좋은 소스가 있으면 동장님도 도와주시고 그러면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본인들 의견으로 나를 찾아온 거예요, 아니면 원장님이 나를 찾아가라고 했어요?
저희가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고 원장님도 그렇고 동장님이 꼭 형님(회장님)을 찾아뵈라고 했어요. 의형제를 맺었다고… 바쁘시고 해서 동장님을 (먼저) 뵀더니 여기로 바로 가라고 그래서 저희가 남부시장이랑 같이 있으니까 두 분 같이 만나라는데 그거보다는 회장님을 만나 뵙고 저희가 진행되는 거 공유 하고 회장님도 공식적으로 인터뷰를 한 번 하고, 회장님도 인터뷰 하고 골고루 해서……. 
나머지는 골고루 하시고 내가 필요한 협조할 부분만 얘기해줘요.
 
시작할 때부터 회장님은 쭉 형성과정을 큰 틀에서 하고, 회장님을 제일 먼저 해야 흐름을 잡을 수 있으니까… 회장님이 말씀 안 해주시면 다 사라지잖아요. 다 모르고 기록도 안되고요.
 옛날에 신동아 단지 10평짜리 뒤로는 신동아 단진데, 거기가 다 돌산이었잖아.
 
혹시 그 때 사진은 어디가면 구할 수 있는지? 
있는 데가 없을 걸.
 
집에 없나요?
없어요.
 
옛날에 시장에서 찍어놨던 개인사진 같은 거 있는지요?
그걸 찾아봐야 되는데 옛날에 시장에서 찍어놨던 사진.
 
번영회할 때 찍은 사진이나…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사진이나 이런 게 있는지…
그걸 자꾸 여기저기서 요구를 하는데…….
 
왜냐하면 기록으로 남겨야 해서… 이참에 제대로 남겨보겠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시장에 비치해놓으면 좋은 거고 저희한테도 남구에 시장이 많아서 해야 되는 일이고 구에서는 크게 하잖아요. 저희는 면밀히 작은 것을 담으려하거든요.
 
 
+ 2차 인터뷰
- 채록일 : 2018년 8월 14일
- 채록장소 : 신기시장 상인회 사무실
- 채록자 : 조영숙, 유인숙
 
학산문화원하고 지속협하고 남구의 역사나 문화 그런 쪽으로 해서 근대사 쪽 저본 작업을 하려고 해요. 역사, 생활면에서 같이 스토리를 만들어보고 콘텐츠 작업을 준비 중이에요.
전체적인 얘기는 알고 있어요.
 
실제 거주하는 분들 중에 인터뷰 하실 분들 소개 좀 받았으면 해서 왔고요. 가능하다면 열 분 정도 소개해주시면 좋고요. 다섯 분이나 여섯 분 정도 해주시면 그분이랑 인터뷰하고 그분들 통해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될 것 같아요. 오늘은 회장님이 전체적인 신기시장 역사나 이런 거 얘기해주시고 그 중에서 오래전부터 계셨던 분 추천해주시면 그분이랑 인터뷰 진행하려고 합니다.
신기시장 역사는 오래되지 않아서 간단해요. 신기시장 이루어진 자체가 철거민들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지금 현재는 주안7동인데 옛날엔 서부동이었어요. 서부동에서 주안3동 갈라지고 주안3동에서 주안7동, 8동 연이어 갈라졌죠. 원래 이 지역은 화장터가 있었고 이 쪽은 돌산 이쪽 중국인 밭이었어요. 68년도에 동구에서 신림동, 북성동, 만석동 철거민들이 이쪽으로 이주해왔어요. 그 때 저는 없었는데 바로 위 선배들이 그러더라고요. 구청에서 미군들이 쓰는 텐트 하나씩 지급하고 10평씩 획, 가로로 잘라줬다고, 그래서 이 주변 집들은 전부 10평씩이에요. 그래서 이름 자체도 신기촌이라는 이름이 새 신(新), 일어날 기(起)라고 해서 신기촌으로 명명된 거예요. 그래서 이지역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처음에 진흥도자기라고 처음에는 중앙도 자기였어요. 진흥도자기에서 진흥요업으로 회사가 커가면서 이름을 바꿨는데 그 당시 중앙도자기가 이 지역에서 가장 큰 회사였어요. 그래서 이 지역 사람들은 철거민 비롯해서 토착민들도 전부다 거기회사 다니는 사람들. 이쪽이 전부 뻘밭이고 논밭이었어요. 그러다가 진흥도자기 후문 앞으로 그 때 당시 5번 종점이 이 시장 한 가운데였어요. 가장 핵심이 버스 종점이 신기시장 한 가운데에 들어와서 버스가 다녔다는 자체로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어요. 진흥요업 후문에서 5번 버스 종점 끝까지. 문학 선학 이쪽 여기 전부 논밭이었으니까 농사짓는 사람들이 농사지은 거 뜯어다가 양쪽으로 놓고 팔기 시작한게 버스 종점과 맞물려 시장이 형성된 거예요. 그 때부터 시작했지만 정식으로 신기시장으로 등록된 게 75년도예요. 그 때 당시 하나 둘씩 가게가 생겨서 번영회가 조직돼서 75년도에 등록됐죠. 그 이외 시장이 활성화가 되어가면서 5번 버스 종점이 시티은행 앞으로 이사 갔다가 명보주유소 앞으로 이사 갔다가 지금은 인하대 후문으로 이사갔죠. 5번 버스 종점이 4~5번 밀려난 거죠. 시장이 발전되면서…그 버스 종점과 연결된 진흥도자기 후문이 이 지역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자연 형성된 거죠.
 
이사장님은 여기 얼마나 사셨어요?
37년째 살고 있어요. 시장이 들어온 게 37년 됐어요. 37년 전 시장형성되면서 우 리 아들이 37인데 낳자마자 시장에 들어와서 그러니까 우리 아들 나이가 이 시장 나이에요.
 
인터뷰에 응해주실 분들 오래 거주 하신 분들이나 시장 상인이 아니셔도 주변에 거주하셨던 원주민도 좋구요.
참피온 체육사를 소개해야겠구나. 초창기에 통장을 하고 구의원을 했으니까 잘 알지. 중앙로로 쭉 내려가면 참피온 체육사가 있어요. 큰 길 바로 앞에 가면 계실 거예요. 그분한테 얘기하면 이 동네 초창기 분들 잘 알아요. 전화 해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