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적인 서양 교육을 받은 한국인은 ‘시간은 돈이다.’라고 말한다. 돈의 가치를 잘 알기에 마치 돈을 아끼듯 시간도 그만큼 귀중하여 잘 활용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 미얀마(불교)에서 시간은 중생의 삶을 갉아먹는 것으로 말한다. 인간은 시간에 의해 조금씩 갉아 먹혀 이 세상에서 결국 죽어야만 한다. 이렇게 죽어 사라져버리는 시공간 속에서...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차 세상을 고통으로 몰아가며 성공하는 것이 과연 어떤 가치가 있을까? 삶에서 정말 간직해야만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죽음은 매 순간 우리에게 경고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죽음’을 보기 쉽지 않아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가끔 장례식장에서나 냉동 처리된 깨끗한 시체를 통해 죽음을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미얀마의 마을에서 시체는 무더운 날씨로 금방 부패해 얼굴은 검푸르게 부풀어 오르고 시체 특유의 냄새가 주위를 가득 채운다. 사실 많은 경우 한국이었다면 의학의 힘으로 죽지 않았을 사람이 많다. 안타깝지만 특히 어린이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양곤제1어린이병원을 담당하는 사원에 머물렀을 때, 거의 매일 장례법회에 참석했던 적이 있다. 그 해는 비가 무척 많이 왔고 너무 습한 날씨 탓에 어린이병원에서 죽는 환자가 부쩍 늘었다. 도시 빈민들의 영양과 위생 상태가 안 좋으니 아이들은 특히 병에 쉽게 걸리고 만다. 도시 빈민가의 아이 중에는 불법조직에 팔려 앵벌이로 살아가기도 하지만, 시궁창 위 움막에 살며 부모와 함께 쓰레기를 뒤지고 비를 맞으며 꽃을 팔거나 구걸하는 아이도 있다.
동화 ‘성냥팔이 소녀’의 죽음이 문득 떠오른다. 안데르센이 이야기를 쓸 당시만 해도 덴마크는 알콜중독자 아버지의 학대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 아이가 죽는 사건은 빈번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후 덴마크의 사회복지는 200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정부와 국민 모두의 치열하고 끊임없는 타협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전 사회적 합의 과정이 없다면 한 개인의 힘으로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추위와 굶주림 속에 죽어가는 소녀에게 성냥 한 통 사주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미얀마 사람들이 서로 돕고 나누는 전통이 있을지라도 현대의 빈곤 문제는 기존 마을 공동체나 종교적 신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사진 : 양곤 어린이병원에서 질병으로 죽은 아이와 - 장례 공양 법회 후에 바로 옆 화장터에서 화장을 한다.
설상가상으로 현재 미얀마의 정치 상황은 비극의 연속이다. 지방에서는 시민군이 정부군의 초소와 부대를 공격하여 무기를 탈취하고, 군부는 그 보복으로 마을을 폭격하고 불태워버리는 일이 매주 반복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어린이와 여성은 너무나 쉽게 희생 당한다. 비탄에 빠진 청년들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며 혁명 완수의 그날까지 싸우다 죽겠다고 맹세한다. 반대로 군인과 가족은 시민군에 대한 증오를 키워가며 군부에 대한 충성심은 더욱 견고해져 간다.
인류 역사에서 인간의 탐욕과 분노와 무지는 무한 반복되며, 특히 전쟁 상황에서는 극단으로 치달아 인간성을 잃고 도덕과 양심의 가치는 사라져 버린다. 또한 무력에 의한 정의 실현과 평화는 오래지 않아 또다른 폭력과 증오를 불러옴을 본다. 그렇다면 식민지 시대부터 쌓여온 민족갈등과 종교갈등이 내재된 미얀마에, 과연 혁명이 성공한다고 자유와 평화가 찾아올까? 살생을 위한 무기 지원이 미얀마의 행복을 위한 일일까?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민족 간 끊임없는 보복 학살의 비극이 미얀마의 미래 모습이 되지는 않을까?
인류에게 전쟁과 죽음의 두려움은 일상이며 평화는 매우 드문 귀한 가치이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인간은 결국 죽어 역사를 이루는 하나의 디딤돌이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은 우리가 어떻게 살다가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선택할 기회를 준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분노의 힘으로 살다가 죽는 삶과, 세상에 대한 자비심(자애와 연민)으로 살다가 죽는 삶 중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무엇이 더 가치로운 삶이고 죽음인지 우리의 양심은 이미 알고 있다. 아주 짧은 기간일지라도 평화의 가치는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크다. 그렇기에 세상에 대한 사랑과 연민심을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역사의 한줄기 흐름도 만들어야 한다. 인류가 끝없는 전쟁과 증오의 역사를 반복할지라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만이라도 세상에 대한 사랑과 연민심으로 가치로운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기를 기원해 본다.
| 미얀마이해
이야기 스님의 미얀마 이야기 1 URL 복사 통계 본문 기타 기능 본보기 10여 년 전 미얀마에서 버마족 지역 운동가와 친해져 그에게서 미얀마어를 배웠다. 그는 미얀마인이 싫어하는 사람들에 대해 순위를 매겨 말했다. 1위는 미얀마 뱀파이어(국민의 피를 빨아먹으며 사는 군부), 2위는 깔려 사람(서쪽 민족인 인도인과 무슬림), 3위는 중국인, 4위는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한국인을 싫어하는 것은 그의 주관도 많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20여 년 전 외국인에게 배타적이었던 한국에서 힘들게 일했고 급여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얀마에 돌아와 보니 한국 사업가들은 미얀마 뱀파이어와 결탁하여 돈을 벌고 있었고, 미얀마의 미래라 말하는 청소년들은 버마(미얀마)의 역사와 전통은 하나도 모르면서 케이팝에만 영혼을 판 케이팝(K-pop) 귀신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미얀마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라는 한국이 되었다. 2021년 쿠데타 이후 세계의 무관심 속에 유일하게 한국이 물심양면으로 미얀마의 민주화를 적극 지지해 준 것에 많은 미얀마인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전에는 역사도 정치도 모두 무관심했던 청년들도 한국의 민주화 역사를 배웠다. 민주주의를 위해 수많은 청년이 목숨을 바쳤던 역사를 알게 되고 또한 국민의 힘으로 잘못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할 수 있다는 실제 사례를 보면서, 미얀마도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을 국민의 힘으로 다시 세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아마도 과거 단기간에 군부에 의해 진압되었던 과거 민중항쟁과 다르게 현재 2년이 넘도록 투쟁을 이어가는 미얀마 청년들의 모습에는 한국이란 본보기가 실재하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그런데 과연 한국이 미얀마의 본보기가 될 수 있을까? 미얀마와 한국의 경제 수준도 환경도 문화도 역사도 너무나 다른데도? 2021년 2월 쿠데타 초기에 한국어를 공부하던 제자들이, 군중으로 가득 찬 공연장의 열기를 느끼러 가듯, 들떠서 쿠데타 반대 시위에 참여하러 갔다. 당시 나는 희망에 들뜬 미얀마 청년들과 달리 혼자서만 심장의 통증을 느끼며 괴로워했다.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며 죽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신통력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미얀마의 역사에서 군부가 시위를 진압하는 방식은 최루탄이 아닌 실탄으로 학살하는 것이란 것을 1988년에도, 1997년에도, 그리고 2017년에는 현 쿠데타의 장본인이 직접 지휘한 로힝야 학살 과정에서도 반복하여 보여줬기 때문이다. 또한 인류 역사는 내전으로 군부와 시민 군 간에 끊임없는 살인과 보복과 집단 학살의 반복을 보여줬으니까. 점점 지옥으로 향하는 미얀마의 미래에 그나마 희망을 본다면 세계 제일의 기부 국가답게 미얀마인들은 기부를 장려하고 함께하고 나아가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관습이 있다는 것이다. 대다수 미얀마인은 어려서부터 부모와 함께 승려, 어른,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시하고 나누고 기부하면서 자라나기에 어디를 가든 기부는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한마디로 엄마 뱃속에서부터 경험하는 기부행위는 나이 들어 임종 무렵 마지막 기부를 하며 죽음을 준비한다. 그런 기부 문화 덕에 아무 일면식도 없는 시위 참가자 파업 동참자 부상자 희생자 시민 군과 그 가족들에게 쿠데타 초기부터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많은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 이전에는 주로 불교 사원이 모금과 분배의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각 지역 민족 모임마다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 조직들이 인간의 탐욕이 어떻게 세상을 고통으로 몰아가고, 반대로 탐욕을 떠난 보시 나눔 기부가 어떻게 세상의 고통을 줄여나가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반면 내전이란 불행의 시기에는 원수도 사랑하라는 종교적 자비심은 분노와 증오라는 비극 앞에 가르침을 줄 수 없게 되었다. 인류의 증오와 무지한 살생의 업은 언제 멈추게 될까? 부처님께서는 증오(원한)는 오로지 증오(원한)를 버림에 의해서만 멈출 수 있으며 그것은 아주 오래된 진리임을 말씀하셨지만, 이미 잔인하게 죽어간 동료들을 보며 피 끓어오른 미얀마의 청년들은 아마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현재의 비극은 또 다른 비극을 가져올 것이다. 승리란 또 다른 싸움의 시작임을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배웠기에, 소승불교의 승려로서 더 이상 투쟁과 승리를 말하지 않으며 대신 멈춤을 말하고 현재를 지켜내고 미래를 보호하는 법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침묵 속에 고통 바다를 헤쳐 나가야만 하는 이들에 대해 연민의 기도를 할 뿐이다. 고통받는 모든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 평안하여지이다. 위험 처한 모든 중생이 위험에서 벗어나 평안하여지이다. 슬퍼하는 모든 중생이 슬픔에서 벗어나 평안하여지이다. 쌀은 한국인과 미얀마인들이 보낸 기부금으로, 사가 잉 차웅우 지역에 있는 시민 보호 단체가 사서 나눠주었다. (위 사진에 앉아 있는 스님의 마을도 절도 다 불탔고, 군부를 피해서 다니고 있다.) 글쓴이 – 디라 비구. 한국에서 대승불교도로서 사회활동을 함. 2008년에 미얀마로 가서 수행을 하다 출가하여 소승불교도가 됨. 2021년 미얀마 쿠데타로 귀국하여 대구의 미얀마 사원에서 미얀마인을 돕고 있음. 2023년부터 다시 수행승의 길로 가고자 하나씩 사회활동을 줄이고 있음. 머리카락이 하얘진 할아버지가 되면 이야기꾼으로서 사람들을 만나고자 별명을 이야기 스님으로 지음. <참고> 아시아의친구들 미얀마 연대활동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얀마 국경 지역 방문, 미얀마 활동가 국내 초청 아시아 인권 포럼 개최, 미얀마 공동체 지원 및 캠페인, 한국에 거중하는 미얀마 노동자들을 위한 한국어교재 개발, "주민이 주민에게" 컴퓨터 보내기 운동, 긴급모금 등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획연재는 쿠데타 이해 미얀마 주민과 현실을 지속적으로 이해하려는 의지의 일환으로 시작했습니다. 미얀마 후원계좌: 270101-04-071141 (국민은행, 아시아의친구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