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교실 문집
리카씨의 한국사회에 말걸기
박은주
게시일 2024.12.02  | 최종수정일 2025.01.15

리카 씨의 한국사회에 말 걸기
 
요다 리카 (자원활동가)
 
(1) 한국에서 오래 살다보면 제 머릿속에서 한국 사람에 대한 IMAGE가 그려진다. 우리나라 음식, 우리나라 사람, 우리 집, 우리 엄마, 우리나라 말 등 우리를 좋아하고 다른 세계와의 사이에 경계심을 긋는 것도 그 하나다.
우리나라 말?’ 우리는 제가 절대로 들어가지 못하는 공간이다. 앞으로 얼마나 오래 한국에서 살아도 아마 만일 한국에 귀화하게 되어도 우리안에는 나는 못 들어 갈 것 같다. 우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소외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APT에 살면서 느끼는 건데 인사를 잘 안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같은 APT 라인에 사는 사람들인데 내가 인사를 해도 그냥 웃고 라고 인사 대신에 가볍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나이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들 젊으실 때 많이 고생하시고 인사를 하는 습관이 없어서 그러시는지. 할아버지, 할머니 뿐 만 아니다. 아이들은 인사를 잘 하는데 놀랍게도 그 엄마들이 인사를 잘 안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인사를 해도 어색한지 3초 후에 오늘 덥네요~. 어디 갔다 오셨어요?” 하고 다른 이야기로 번지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의 특징이 또 하나 있다. 아무리 오래 사귄 친구라도 한국 사람들은 내가 하는 한국말에 틀린 것이 있어도 안 고쳐 준다. 그래서 나는 이상한 한국말을 오래오래 쓰고 있다. 내가 한국말로 이야기 할 때 마다 일일이 고쳐주면 대화가 잘 안되서 그러는지 틀린 것을 고쳐주면 내가 마음이 상할까봐 말을 안 하는지... 하여튼 그러한 마음이 착한 친구가 있으면 내 한국어 실력도 많이 늘어날 것 같다.
 
(2) 나는 지금까지 일산 주변에 사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항상 너무 바쁘 다. 하루에 보통 13시간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작은 방에서 살면서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한다. 자기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집에 못 갔던 미등록 근로자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항상 밝다. 내가 오히려 그들한테 힘을 얻을 정도다.
내가 만난 한 파키스탄 사람의 이야기다. 그는 다음 달에 직장을 그만둔다고 했다. 그는 거기거 4년 동안 계속 일해 왔는데 1번도 휴가를 안 받았다고 했다. 같이 일하는 한국인들에게는 휴가를 주는데 그 사람과 다른 외국인들에게는 휴가을 안주었던 것이다. ‘회사 사람들은 우리를 참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는 그렇게 말했다.
토요일도 한국 직원들은 외국인 직원들에게는 한 마디도 안하고 자기들만 먼저 퇴근한다고 했다. 4년이나 같이 같은 곳에서 일해 왔던 동료들인데 그 외국인들에게 섭섭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런 차별적인 대우를 받아서 그는 다른 직장에 옮기기로 정했다고 했다.
그가 하는 말대로 외국인 근로자들은 가난한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한국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들은 틀림없이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가난하지 않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학교 선생님, 목사, 음식점 주인, 상점주인들 각각 직업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다. 자기 일이 있어도 나라가 가난해서 충분한 수입을 못 받았기 때문에 한국에 일하러 온 것이다.
조금 용기를 가지고 그들에게 말을 걸면 어떨까? 한국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근로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들과 이야기를 하면 그들이 한국말을 얼마나 잘 하는지 아마 많이 놀라실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이 한국 사회가 국민과 이러한 외국인 근로자가 잘 어울리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곳이 됐으면 한다.
 
(3) 나는 지금 5학년 딸을 키운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한국 사람의 새로운 면을 봤다. 이번에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한국 엄마들에 대해서 쓸까 한다.
내 딸이 어린이 집에 다니고 있을 때였다. 어떤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내 딸이 이 어린이집에 2년이나 다녔으니까 이번에 딴 곳에 옮기려고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좀 놀랐다. 2년 동안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뜻인가 ?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자기 자식을 1, 2년후에 딴 유치원에 옮긴 엄마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내 딸을 4년 동안 같은 어린이집에 보냈다. 특별히 딴 곳에 옮길 이유가 없어서 그랬던 것이다.
감사한 것은 선생님들이 내 딸은 많이 예뻐해 주시고 친구도 많이 생기고 무엇보다도 한국말을 많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4년 동안 같은 어린이집에 보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가치가 있는 것인지 나는 딸의 졸업식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4넌 동안 이 어린이집에 따님을 보내주셔서 감사한다는 것이다. 이 졸업식 때문에 내 고향(일본)에서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부러 손녀를 위해 한국까지 와주셨는데 나는 내 부모님과 같이 이 상패를 보면서 튼 문화차이를 느꼈다.
자기 자식들이 다니는 학원을 자주 바꾸는 것도, 그리고 한 곳에서 오래오래 살지 않고 많이 이사를 하는 것도 내가 만난 많은 한국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점이다.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은 한곳에서 계속 머물지 않고 자주 환경을 바꾸는 습성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싫증을 잘 내는지 아니면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지. 가게 주인도 자주 바꾼다. 내 동네 상가도 얼마나 가게 주인이 바뀌었는지. 그렇게 직업을 자주 바꾸면 이 나라에서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라고 나는 걱정이 된다.
우리 APT에 매주 화요일에 알뜰시장이 여는데 내가 매주 생선을 사는 생선가게 주인이 지금 제철인 생선이 모른다고 해서 나는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생선가게 주인이 제철인 생선을 모르면서 생선을 팔고 있다니. 하는 김에 고백하지만 옛날에 어떤 생선가게 주인에게 신선한 꽁치를 가리는 방법을 가르쳐 드렸더니 그 아저씨는 나에게 많이 감사하고 있었다. 그런 것은 일본에서는 생선 전문가가 아니 평범한 가정주부조차 아는 것이다.
 
(4) “누나! 난 이번에 진짜 Nepal에 돌아가요!” 오래간만에 Nepal에서 온 한 근로자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는 그렇게 말했다. “정말요?”, “정말이에요! 나도 나이 들어서 장가가야 되니까.” 그는 한국에서 오래오래 살기를 원했다. 한국 여자와 결혼하고 서울에서 Nepal 음식점을 열고 한국에서 오래 사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하지만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성격이 밝고 낯가리지 않는 그는 내가 다니는 교회에 처음에 왔을 때 교회 사람들과 금방 친해졌다. 특히 목사님은 그를 많이 좋아하시고 예수님의 제자의 이름을 붙이시고 자기 아들처럼 항상 신경을 써주셨을 정도다.
그 동안에 그는 한국 여자를 만나고 그 중에서 몇 명 좋아하게 되었다. 그는 항상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사랑은 쉽게 국경을 넘어갈 줄 알았다. 하지는 그가 만난 한국 여자들은 냉정했다. 다른 아시아에서 온 남자는 연애의 대상으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Nepal 사람뿐만 아니다. 지금까지 나한테 한국 여자를 소개해 달라고 한 남자들이 또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역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그들이 한국 여자랑 사귀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이고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들이게 관심조차 안가진다. 만약에 그가 아시아 사람이 아니고 캐나다나 미국사람 그것도 백인이라면 어떨까? 기꺼이 달라질 것이 아닌가? 적어도 아시아 남자와는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 사람은 영어를 하는 외국인을 정중하게 대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내가 한국어를 잘못했을 때 우체국에 전화를 해본 적이 있다. 처음에 나는 서투른 한국어로 했더니 우체국 사람은 아주 귀찮게 또 불친절하게 내말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영어로 바꿔서 이야기 했더니 갑자기 태도가 바뀌고 친절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우리나라 최고!!’ 라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다면 우선 어떤 외국인이라도 잘 받아들이고 좋은 관계를 맺도록 하면 어떨까? “한국 사람은 왜 그래?” “한국에서 사는 게 정말 싫다!” 라는 외국인이 적어지도록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