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나무야] 7. 미완은 반성이자 새로운 시작입니다

미완은 반성이자 새로운 시작입니다
모악산의 미륵

모악산의 길고 부드러운 능선은 언제보아도 그 푸근함이 어머니의 품 같았습니다.
교도소의 하루가 저무는 시각에 우리는 곧잘 창가에 다가가 모악산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한가닥 위로를 얻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주교도소에서 바라보던 모악은 어머니를 등뒤에서 보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말했습니다.
'등'은 거부의 의미가 아니다. 좌절의 밑바닥에 사는 사람을 모악이 거부할 리가 없다고.
그렇습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등에 업히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이제 어머니의 앞가슴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눈발이 시작되는 밤길을 달려와 금산사입구의 여관에 들었습니다.
밤새 눈이 내리면 내일 아침에는 하얗게 눈덮인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세상을 보게 되리라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눈뜨자마자 창문을 열었습니다. 서해안 쪽으로는 10센치가 넘는 눈이 내렸다는데 땅도 채 덮지 못할 정도의 적은 눈밖에 내리지 않았습니다.
'미완의 강설'이었습니다.

미완의 부처인 미륵의 고장 모악산 금산사의 아침은 이렇게 미완성의 의미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미륵불은 석가가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마저 구제하기위하여 오는 부처입니다.
석가의 완성을 위하여 오는 부처이며 반드시 와야할 부처 당래불(當來佛)입니다.
등뒤에서 볼 때와는 달리 모악산은 나즈막한 산봉우리들을 많이 품고 있었습니다.
산이 높아 엄뫼가 아니라 암탉이 병아리들을 날개밑에 거두듯이 많은 권속을 거느리고 있어서 모악이었습니다. 진표율사(眞表律師)가 패망한 백제유민들의 비통함을 거두어 그 좌절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구원의 미륵불을 바로 이곳 금산사에 세운 까닭을 알 것같았습니다. 나는 미륵의 얼굴을 보기 위하여 이곳을 찾아온 셈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연면히 이어져 미륵의 모습이 자못 궁금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미륵상을 마주 대하고 나서 갖게 되는 느낌은 나의 기대와는 매우 빗나간 것이었습니다. 그 당황스러움은 나 스스로도 놀라을 정도였습니다.
36척 높이의 거대한 미륵장륙상(彌勒丈六像)은 물론이고 좌우의 보살상까지 모두 금빛으로 화려하게 개금(改金)이 되어 있었습니다. 철불이나 석불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지만 내가 가졌던 미륵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큰 거리감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미륵이 고난받는 중생의 부처라면 현란한 금동여래상과는 분명 다른 것이어야 했습니다. 금동여래상에 대하여 도전적일 정도로 청년적 진취성과 민중적 단순의지가 표상화되어 있으리란 기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미륵전을 나와 절마당의 잔설을 비추는 아침햇살에 눈감고 생각하였습니다.
금산사의 미륵을 찾아간다는 나에게 당신이 당부하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통일신라가 백제땅에다 거대한 미륵입상을 세운 이유에 대하여 주목하고 주의하라던 당신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것은 백제땅의 모든 미륵들은 빠짐없이 이 미륵장륙상 앞에 와서 절하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편으로는 패망한 백제인의 부흥의지를 결집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민중적 미륵신앙을 체제내로 수렴하려는 통일신라의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아닌가에 대해서도 의심하라던 당신의 충고가 떠올랐습니다.
나로서는 개금된 미륵상에서 미륵이 실현하리하던‘인간이 타인에게 인간적인 세상’을 읽어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용화세계'(龍華世界)의 이상이 고작 고봉쌀밥이라는 풍요의 세계였던가.
57억년후에 출현하리라던 미륵을 현재로 앞당겨왔던 그 환상의 치열성을 읽어낼 수가 없었습니다. 천불산 계곡에 천불천탑을 세워 새세상을 띄우기 위하여 도끼로 돌을 찍어 만든 운주사(運舟寺)미륵에서 분출되는 자력신앙의 힘이 없었습니다.

나의 미륵 여행은 역시 미완의 여행으로 끝난 느낌이었습니다.
민중의 미적 정서가 상투화(常套化)되어버리는 것만큼 절망적인 것은 없습니다.
소망의 세계마저 제도화되어버린다면 미륵은 영원히 미완인 것으로 완성되어버릴 것같은 생각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최후의 그린벨트가 바로 '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침햇살을 등에 지고 금산사를 나오면서 모악산의 그 눈부신 능선을 다시 돌아보는 순간 나의 이러한 생각이 참으로 단견이었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떠한 것도 내부로 깊숙히 안아들여 자기 것으로 육화(肉化)시키는 그 우람한 역량에 대한 신뢰가 내게 부족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백제땅은 비록 미륵이 좌절한 땅이지만 그 곳은 동시에 희망의 땅이라던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였습니다. 생각하면 우리의 역사는 한마디로 미륵의 좌절로 점철된 역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륵화신(化身)임을 자처했던 궁예와 견훤이 비록 모든 패배자가 뒤집어 쓰지 않을 수 없는 엄청난 오명에도 불구하고, 고대사를 청산하고 중세사의 전기를 만들어내었다는 당신의 긍정적 평가마저도 잊을 뻔 하였습니다.
묘청, 신돈, 녹두장군에 이르기까지 미완성은 또다른 미완성으로 이어져 역사가 되는 지도 모를 일입니다.

금산사를 돌아나오는 나의 '등'을 모악산의 아침햇살이 따뜻이 품어주었습니다.
세상의 지도에 유토피아라는 땅이 그려져 있지 않다면 지도를 들여다볼 가치가 없다는 시귀가 나의 마음을 감싸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미완의 의미를 어떻게 읽고 어떻게 천착해갈 것인가 하는 과제라고 생각됩니다.
미완은 반성이며 가능성이며 청년이며 새로운 시작이며 그러기에 '과학'이기 때문입니다.
역경(易經) 64괘는 미완의 괘인 '미제'(未濟)괘로 끝나고 있습니다.
괘사(掛辭)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린 여우가 시내를 거의 다 건넜을 때 그만 꼬리를 적시고 말았다.”

돌베개

신영복 1996.09.12
  • 형태분류
    • 도서/간행물류 > 나무야 나무야
  • 출처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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